가베나루

극장 안 홀은 한산하다.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잡담하는 연인들,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 열 명 정도 있을 뿐이다. 총총 걸음으로 홀을 가로질러 ‘가베나루’로 향한다. 탁 트인 유리창 너머로 머그잔들을 에스프레소 머신 위에 뒤집어 올려놓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이름은 김연희. 언제나처럼 포니테일을 하고 가게 이름이 프린트 된 갈색 앞치마를 입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청량한 벨소리가 울린다. 그녀는 고개를 든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볼이 발그레해진다. 내게 조금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한다.


다소곳이 눈을 내리깔고 그라인더를 작동시키는 그녀의 모습은 부드럽게 옷을 벗는 양순한 여자를 연상시킨다. 어둠 속에서 사각거리며 부드럽게 옷을 벗는 여자. 발치에 떨어지는 옷 조각들. 부드러운 몸. 살결. 체취. 향. 기억.


그녀는 곧 물어올 것이다. “에스프레소 드릴까요?” 그녀가 내 음료를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 또한 조금은 수줍게 응답할 것이다. “네.”


그녀는 진심을 다해 커피를 만든다. 커피에 마음을 담기는 쉽지 않다. 연희의 커피에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말이 서툰 나로서는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다. 커피를 매개로 그녀와 이야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라떼하고 모카는 어떻게 다른 거에요? 그녀는 신이 나서 내게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인터넷에서 보니까 커피 종류마다 어울리는 커피 잔이 따로 있다던데 정말이에요?


자리에 돌아와 신문을 뒤적이고 있을 때였다. 옆 테이블에 앉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휴식 시간인지 앞치마를 벗고 있었다. “이게 아까 손님이 여쭈어보신 그 음료에요. 한 번 드셔보세요.”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띠며 음료를 건네고 곧 자리로 돌아갔다. 카페 비엔나. 사실 나의 직업은 바리스타이다. 그녀는 아직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그녀와 말하는 기회를 얻기 위해 지금까지 커피에 대해 숱하게 물어왔던 것이다.


그녀를 보며 '안착'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그녀를 통해 처음으로 소박한 일상, 자신의 일에 마음을 다하는 작고 소박한 그 일상을 접했는지도 모른다. 그 날 이후로 이 집의 단골이 되었다.


나 좀 도와줘. 늘 어딘가로 숨어버리려는 나는 그래, 나야. 하지만, 달라지고 싶어. 달라지고 싶어. 너와 함께라면 달라질 수 있을 거 같아.


“와, 지금껏 제가 먹어본 카페 비엔나 중에 최고에요. 에스프레소 한 잔 주시겠어요?”

그녀가 놀란 듯이 날 쳐다본다. “또?” 하는 표정이다.


커피의 심장. 에스프레소.


살짝 입술을 크레마로 적시고 조금 음미하며 목 안으로 흘려보내. 몸이 커피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도록. 그리고 조금씩 커피가 목에 들어갈 거야. 그러다 보면 몸이 더워질 거야. 액체가 목을 타고 위장으로 향할 거야. 비로소 내 심장이 조금씩 뛸 거야.


그럼 언젠가는 네게 말을 걸 수도 있겠지.


“제가 만든 커피 한 잔 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