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음 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학교로 입성.
선생님은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이제 난 편하게 학교를 다녀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뒷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김소영!"
갑자기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이건 누구 목소리지?
철학 선생님?
오마이갓!
왜 철학 선생님이 저기 앉아 있지?
"당장 교무실로 와."
뭐지.
이 불호령은.
당황스럽네.
그러고 보니 반 분위기가 어딘가 이상했다.
아이들이 모두 미친 듯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부를 하고 있는 척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모두 책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당장 따라와. 김소영."
선생님이 날 데리고 간 곳은 교무실이었다.
오마이갓!
모든 선생님들이 나와 철학샘을 쳐다보고 있는 것 아닌가.
"너 요새 뭘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냐."
"네?"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너 요새 남친 생겼다고 학교 막 휘젓고 다녀도 되는 거야?
성적 좀 봐.
너 떨어진 성적 좀 보라고."
뭐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담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당연하지.
이제 육아휴직 들어갈 거라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철학이 임시 담임?
"너, 이상한 소리 하고 다니지 말고 공부나 집중해.
연고대 간다는 애가 남친생긴 뒤로 이상하게 물이 들어서
날라리가 다 됐네."
"아니, 뭐라구요?"
순간 화가 끓어 올랐다.
"아니. 선생님.
선생님이면 이렇게 막말해도 됩니까?"
쯧쯧,
여기저기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교무부장 교련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네가 어제 담임선생님한테 말했다는 거.
그거 다 교무회의에서 논의했다.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와서 남친까지 끌어들이고.
네가 지금까지 사고 한 번 친 적 없는 모범생이라 이번만 봐주는 거야.
안그랬으면 이걸 확."
교련은 손바닥으로 허공을 확 쳤다.
숨이 턱 막혔다.
믿고 담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은 게 잘못이지.
나와 윤우는 너무 순진했어.
어른들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
"자. 다들 그만하세요."
이건 누구?
교장 선생님?
우리 학교는 카톨릭 여자고등학교였기 때문에 교장 선생님은 수녀님이셨다.
"그동안 학교에 사건 사고가 너무 많았지. 그래서 착한 소영이가 잠깐 비뚤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곧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선생님은 믿어요."
아. 믿을 수가 없어.
터덜터덜, 나는 반을 나왔다.
세상이 달라보였다.
뭔가가 달라질 거라고 믿었던 우리가 순진했지.
어른들은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면 사건이 해결될 걸로 믿었던 건 내 착각이었다.
터덜터덜 나는 교무실을 걸어나왔다.
사전에 철학이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낀다.
나만의 느낌일까.
나는 더 이상 모범생 김소영이 아닌 것이다.
노는 애.
남자 친구나 학교에 끌어들이는 문제아.
졸지에 나는 날라리로 등극한 그런 느낌이었다.
이것은 단지 느낌만이 아니었다.
오마이갓.
천하의 모범생 내가 그만 교과서를 챙기지 않은 것이다.
사회과부도.
말하자면 지도책.
그 지도책을 깜박하고 독서실에 두고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다.
"지도책 안 가지고 온 사람 다 복도로 나가.
너희들은 수업 받을 자격이 없어."
지리 선생님은 차갑게 말했다.
이런 적은 내 사전에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은 수업 시간 내내 복도에 서 있어야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동안 사건 해결한답시고 공부에 소홀하긴 했구나.
나를 포함한 네 명은 복도에 줄지어 섰다.
지나가던 선생님들은 '쯧쯧' 혀를 차며 지나갔다.
교련은 괜히 교과서로 머리를 한대씩 치고 갔다.
"시발."
옆에 있던 서영이가 나지막히 욕을 뱉었다.
서영이는 늘 부스스한 머리에 교복 단추도 너덜너덜한 상태로 학교에 오는 아이이다.
그리고 학교에 와서는 늘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잔다.
한마디로 학교에서도 아예 포기한 아이.
그런 서영이와 같은 신세라니.
아. 인생.
나이 열여덟에 이런 쓴맛을.
휴. 한숨이 나왔다.
지겨워.
한시간 동안 서 있자니 지겨웠다.
얼른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딩동댕.
드디어 종이 울리고 나는 지리 선생님이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래야 교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소영. 따라와."
지리 선생님은 줄지어 있는 우리에게 오더니 날 지목했다.
별 수 없이 난 선생님을 따라갔다.
또다시 이어지는 일장 연설.
소영아. 너 이러면 안 된다. 예전에 너는 모범생이었잖니.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니.
남자친구는 대학가서 사귀면 된다.
아오. 지겨워.
나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리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얼른 끝내주세요. 그놈의 잔소리.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의 잔소리를 무마하기 위해 알겠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란 사실을.
선생님들의 말이 한낱 잔소리로 들린다는 자체가 내가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란 사실을 보여주는 거였다.
예전의 나였다면 진심으로 뉘우치거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왜 학교에서는 혜경이와 재희에 대해 아무런 것도 알아보지 않은 걸까.
그냥 내 말을 아예 담임은 전달 조차 하지 않은 걸까.
하지만 교련은 분명 교무회의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것을 안건으로 삼아 회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뭔가 있다.
학교에서 혜경이와 재희를 감싸는.
"넌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지리 선생님이 쐐기를 박았다.
"싫어요."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나도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뭐, 싫어?"
지리 선생님의 말소리가 커졌다.
오마이갓.
김소영.
너 지금 왜 이렇게 반항하는 거니.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나긴 싫었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재희와 혜경이에 대해 알아보셨나요?
그 둘은 이란성 쌍둥이이고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겠다고 지금 공표까지 한 상태입니다.
그것도 이번주 토요일 저녁에요.
하지만 왜 학교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죠?
정말 사건이 일어나면 어쩌려구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면요."
나도 모르겠지만 내 입에서는 말이 술술 나왔다.
그 때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혜경이는,
혜경이는, 성심원에서
내가
입양한 아이란다."
오마이갓.
이것은 누구의 목소리?
바로 교장 선생님 아닌가.
"됐니?"
교장 선생님이 물었다.
"혜경이는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네가 혜경이에 대해서 막말하는 걸 더 이상은 두고볼 수가 없다. 여기서 멈춰."
교장 선생님의 강경한 목소리.
그랬구나.
혜경이를 입양한 사람이 교장 선생님이었구나.
"혜경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세요?"
나는 교장선생님에게 물었다.
"혜경이는. 혜경이는. 성심원에서 봉사활동을 할 뿐 아니라 각종 사회기관에서 봉사활동을 밥먹듯이 하는 훌륭한 아이야.
네가 혜경이를 모독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럼, 혜경이와 재희가 이란성 쌍둥이라는 것도 아세요?"
"그걸 왜 모르겠니. 재희를 입양한 분도 아주 훌륭한 분이시란다. 너, 더 이상 학교 내에 두명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내면 그때는 이 사건을 공식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내 말 뜻 알아듣겠지?"
휴.
할 수 없지.
이 목소리를 들려줄 수밖에.
나는 나가려는 교장 선생님을 향해 말했다.
"죽음의 놀이. 그들은 죽음의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핸드폰으로 어제 음악실에서 녹음했던 그들의 음성을 들려주었다.
-죽음의 놀이라는 게 뭐며
재희 너는 왜 혜경이를 죽이겠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혜경이 너는 왜 재희가 범인이고 너는 선의의 피해자라고 하는 거냐고.
이게 다 뭐냐고.
그래. 너네 말대로 죽고 죽이면 끝나는 거야?
죽고 사는 게 그렇게 단순해?
남은 사람은 생각도 안 해?"-
핸드폰에서 내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몰라. 김소영.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를 거야.
죽는 거?
죽고 사는 거?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마치 한 사람인 듯 말하는 두 명의 목소리.
-다 상관없고 왜 서로가 서로를 우리학교에서 일어난 살인하고 실종사건의 배후라고 하는지가 궁금해.-
-왜 우리가 너한테 그걸 이야기해야 하는데?-
역시 동시에 대답하는 두 아이.
-아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대신 토요일 너네 둘이 만나서 붙으려는 거
안하겠다고 약속해.-
다시 미친 듯 푸하하하 웃는 두 명.
-으이구. 순진하긴.-
-넌 이제 빠지라고. 그럼 됐잖아.
너하고 이제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재희의 목소리.
-아니. 나하고 상관있어.-
-뭐가?-
-너, 너희들. 도덕 시간에 뭐 배웠어.
사. 사람의 목숨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 바꿀 수가 없, 없다고.-
-웃기지 마.
너 사실은 무섭지?
우리가 너한테 해코지 할까봐.-
혜경의 목소리.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
나는 정지버튼을 눌렀다.
"이래도, 가만있으시겠습니까? 교장선생님! 혜경이가 착하기만 한 아이라고 아직도 생각하시나요?"
교무실은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모두들 아무 말이 없었다.
주도권은
나에게 넘어왔다.
모두가 이 녹음 파일을 들은 이상 두 명의 관계에 대해 이상하다고 느끼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바로 연루된 거야.
철학.
철학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들 장난입니다.
재희와 혜경이가 장난으로 말하는 걸 소영이가 일부러 나쁜 목적으로 녹음한 거라구요."
그럼 그렇지,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지.
"나쁜 목적이요?
저 그런 거 하나도 없어요.
그저 토요일에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고
학교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의 배후에 둘이 어떻게 연루된 건지 그걸 어른들이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난 큰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선생님들. 더 이상 저와 윤우의 손에서 해결하기가 어려워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던 거였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다시 흐르는 정적.
"알았다."
무거운 정적을 깬 건 교장선생님이었다.
"소영이는 이제 교실에 가보도록 해."
마침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은폐하려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건을 공론화시켰다는 데서 오는 쾌감이었다.
이제 모두 녹음 파일을 들은 이상 뭔가 진전이 되겠지.
교무실의 모든 선생님들이 그 파일을 들었으니
빼도박도 못하겠지.
파일은 내 방 컴퓨터에 이미 옮겨져 있다.
어젯밤 집에 가자마자 핸드폰과 컴퓨터를 연결하고 나는 녹음 파일을 컴퓨터에 옮겨놓았었다.
역시, 용의주도해 김소영. 잘했어.
오늘이 벌써 화요일.
토요일이 점차 다가워온다.
그 전에 풀어야 한다.
엉킨 실타래를.
어쩌면 교장 선생님은 혜경이를 끝까지 보호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혜경이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면 입양자인 자신의 명예에 직격탄을 입을 테니까.
나에게도 약점은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이 둘이 어떻게 사건과 짜여졌는지에 대한.
단 하나 있다면 육각무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