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여고

12

"떠나버릴까?"

이 모든 것을 다 떠나고 싶다.

토요일까지.

재희가 혜경이와 만나기로 되어 있는 토요일 저녁까지.

어디 가서 숨어 있을까.

나는 진지하게 윤우에게 말했다.

"그럴래?"

윤우가 내 손을 잡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 뒷감당은?

우리 그러면 가출 청소년 되는 거야.

돌아오면 부모님이 걱정하시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해결하려고 하는 이 일의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는 그런 생각에 더 괴롭겠지.

윤우는 내 눈을 보고 내 생각을 이미 읽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네 스타일 아니잖아. 여장부 김소영."

그랬다.

과거의 나는 그랬다.

초등학교 때 나는 나보다 덩치 큰 아이와도 죽어라 싸웠고

나름 정의의 가치를 수호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내내 그런 나 자신을 숨겨왔다.

그리고 다시 혜경이와 윤우를 만나가면서 예전의 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도망이라니.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건 다시 예전의 답답한 나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건 원하지 않아.

나는 도리질을 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을 편히 가지자.

난 내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드디어 도착한 학교.

"나 그럼 학교 잘 다녀올게. 너는 어디 있으려고?"

"내 걱정은 하지 마.

공부 열심히 하고 와."

윤우는 싱긋 웃으며 뒤돌아섰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왜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는 걸까.

나도 그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오늘이 있기에 마음을 다잡고 반으로 향했다.

학교에 일찍 도착해서인지 교실은 한산했다.

혜경이는 와있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 졸려서 책상에 이마를 갖다댔다.

지난밤은 너무나 길었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윤우와의 거사도 포함해서.

'어제 남친하고 좋았나 보네.'

갑자기 날아온 쪽지에 잠이 깼다.

혜경이였다.

나는 뭐라고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배신자.

셔틀 버스 갈 때 깨워주기만 했더라도 이렇게 일이 꼬이지는 않았을 텐데.

이게 뭐야. 씻지도 못하고.

하지만 그랬더라면 윤우와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건 사실이잖아.

도대체 이 아이는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걸까.

정말 알고서 이러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무 말이나 던지는 걸까.

나는 아직도 혜경이란 아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정말 자신이 이야기하는 대로 선의의 피해자인지,

아니면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는 아이인지.

이 모든 것은 내 능력밖의 일이었다.

난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

토요일에 지들끼리 치고박고 죽건 어떻게 되건 상관하지 말자.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막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치 사건을 방관하는 듯한, 방관자가 된 기분이랄까.

그건 내가 아니지.

아이들이 속속들이 반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침 자습 시간이 시작되었다.

집중하자. 집중.

공부에 집중하자.

나는 나 자신에게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하자.

내가 여기서 뭔가를 생각한다고 해서 일이 풀리는 건 아니니까.

나는 내 자신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너무나 졸렸다.

어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이었다.

천하의 김소영이 자습시간에 졸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마이갓.

안돼.

집중하자. 집중해.

하지만 스스로에게 그렇게 이야기할수록 더욱 고개는 책상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무지 수업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수업 시간 내내 눈을 부릅뜨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다가 독일어 시간에 드디어 사단이 났다.

졸고 있는 내 얼굴 위로 무언가가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분필.

독일어 쌤이 내 얼굴에 분필을 던진 것이었다.

별안간 화가 났다.

"이거 인격 모독 아니에요?"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아니. 존 것은 물론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학생 얼굴에 분필을 던져?

이건 아니지.

독일어 샘의 당황해하는 표정.

그 모습을 보자 그제야 '내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럼 학생이 수업시간에 조는 건 선생님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 아닌가?"

선생님이 점잖게 말했다.

할말이 없었다.

아이들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나와 선생님의 논쟁을 기다렸다.

"제가 잠을 잔 건 불가항력적인 일이지 절대 선생님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말대꾸를 했다.

"오호. 그래?"

선생님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왜 불가항력적인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지난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마이갓.

내 무덤 내가 판 건가.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밤새 독서실에서 공부하느라 그래요. 저하고 같은 독서실 다니거든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얘 공부밖에 모른다는 걸."

혜경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부에 대한 팁을 하나 주자면, 내신 공부는 수업 시간에 해야 한다. 이런 독일어 과목은 내신에 포함되는 거지 수능에 포함되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끝내야 한단 말야. 괜히 다른 공부한답시고 이런 독일어 따위 신경 안쓰다가 내신 망가지는 거야.

너희도 알지?

대학 때 내신 반영이 점점 커진다는 거."

아. 네네.

다행히 선생님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물어오지 않았다.

선생님의 잔소리로 독일어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제 반 전체 아이들이 나와 혜경이가 같은 독서실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꽤나 친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이다.

모두들 나와 혜경이가 꽤나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전혀 아닌데.

재희는 오전 수업 시간 내내 조용했다.

재희 쪽을 쳐다보아도 별다른 정황이 포착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뿐.

정면 충돌.

어쩔 수 없어.

난 혜경이에게 쪽지를 보냈다.

'점심 시간 음악실로 오기 바람.'

그리고 같은 쪽지를 재희에게 보냈다.

'점심 시간 음악실로 오기 바람.'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나는 음악실로 올라가 아이들을 기다렸다.

음악실은 한 명의 아이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사건으로 죽은 후로 엉망이었다.

왠지 으스스했다.

얼른 누군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혜경이, 재희 둘다 오지 않았다.

오마이갓.

이것들이 나를 엿먹이려는 건가.

둘이 짜고 나를 골탕먹이려는 수작인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재희가 나타났다.

"왜? 무슨 일이야?"

재희는 태연하게 물었다.

"혜경이 불렀어."

"뭐?"

재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나 간다. 토요일 약속이나 잘 지켜."

하지만 그때 혜경이가 뒷문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마주쳤다.

"푸핫."

갑자기 혜경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야. 김소영.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신성한 학교에서."

"너희야말로."

갑자기 마음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이 두 명 때문에 마음 고생해 온 것을 생각하면 이 둘을 잡아 족쳐도 모자랐다.

윤우까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너희야말로.

야. 이재희. 너 나가지 마.

이혜경. 너도 여기로 와.

둘다."

나는 사자후를 질렀다.

내 안에 이런 사자후가 숨어있을지 나 자신도 몰랐다.

"너희들 대체 뭐냐.

왜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야.

야. 이재희. 나 혜경이한테 이야기했어.

토요일날 네가 나 데리고 나오라고 협박했다고."

의외로 재희가 아무 말이 없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럼 그때 보면 되겠네.

왜 지금 불러서 일을 만들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

혜경이가 덧붙였다.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둘의 관계는.

"이제 너는 빠져. 여기서."

재희가 말했다.

"그래. 가서 니 남친하고 실컷 놀아."

혜경이가 비아냥댔다.

갑자기 화가 치솟았다.

"너네는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여?

이것들이.

너네야말로 왜 이러는 건데.

죽음의 놀이라는 게 뭐며

재희 너는 왜 혜경이를 죽이겠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혜경이 너는 왜 재희가 범인이고 너는 선의의 피해자라고 하는 거냐고.

이게 다 뭐냐고.

그래. 너네 말대로 죽고 죽이면 끝나는 거야?

죽고 사는 게 그렇게 단순해?

남은 사람은 생각도 안 해?"

난 마구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음악실이라 방음이 잘 되어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누군가가 뛰어 왔을 만큼의 큰 소리였다.

"푸하하하."

재희와 혜경이는 마구 웃었다.

뭐지.

기분나쁜 저 웃음 소리는.

둘은 정신 나갈 정도로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웃는 걸 마쳤다.

"너는 몰라. 김소영.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를 거야.

죽는 거?

죽고 사는 거?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혜경이와 재희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저들도 서로가 같은 말을 할지는 몰랐는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는 이란성 쌍둥이야."

이 말조차도 똑같이 내뱉는 혜경이와 재희.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뭐지?

혜경이는 이제 체념하는 듯 말을 꺼냈다.

"아이 씨.

다 들켰네.

그래. 우리는 서로가 무슨 생각하는지 대충 알아.

그리고 같은 고아원에서 자랐고.

하지만 철저히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했지.

우리가 쌍둥이라는 거라는 걸."

"아니, 왜?"

나는 되물었다.

"재밌잖아."

재희가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혜경이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똑같이 웃음을 터뜨리는 재희.

그 둘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한동안 푸하하 웃어댔다.

하지만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뭐지.

무슨 생각인거지.

너희 둘, 지금까지 어떤 일을 꾸며온 거니.

나는 속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다 상관없고 왜 서로가 서로를 우리학교에서 일어난 살인하고 실종사건의 배후라고 하는지가 궁금해."

"왜 우리가 너한테 그걸 이야기해야 하는데?"

역시 동시에 대답하는 두 아이.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아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대신 토요일 너네 둘이 만나서 붙으려는 거

안하겠다고 약속해."

다시 미친 듯 푸하하하 웃는 두 명.

"으이구. 순진하긴."

두 명은 똑같이 각자 팔짱을 꼈다.

얼굴만 다를 뿐이지 행동은 똑같았다.

아. 소름 돋아.

"넌 이제 빠지라고. 그럼 됐잖아.

너하고 이제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재희가 말했다.

"아니. 나하고 상관있어."

"뭐가?"

재희가 물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하게 보여서 의아해 보였다.

아니, 정말 모른단 말인가.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게.

순간, 아까 혜경이가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다.

죽고 사는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 죽고 사는 건, 아무것도 아닌지도 모른다.

혹시.

혹시.

말로만 듣던 싸이코 패쓰?

"너, 너희들. 도덕 시간에 뭐 배웠어.

사. 사람의 목숨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 바꿀 수가 없, 없다고."

아니. 왜 이렇게 말을 더듬는 거야.

하지만 싸늘한 두 명의 싸패 여자아이들 앞에 서니 갑자기 몸이 굳는 거 같았다.

"웃기지 마.

너 사실은 무섭지?

우리가 너한테 해코지 할까봐."

푸하하하 웃는 혜경이.

그리고 따라 웃는 재희.

뭐야. 이것들.

갑자기 속에서 오기가 솟아났다.

"이것들이. 사람 갖고 노나.

너네 지금까지 뭔 짓 한 거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방음이 잘 되어서 밖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참으로 다행히.

"나 아니야."

동시에 이야기하는 두 명.

아오, 승질나. 진짜.

그때 점심 시간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제 오교시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늦으면 안 돼.

교련시간이야.

조금이라도 늦으면 끝장이야.

우리 셋은 우당탕탕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아오. 시발.

교련쌤이 미리 와 있는 거 아닌가.

1분 늦었을 뿐인데.

뒷문으로 가지런히 들어서는 우리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런, 죽었다.

교련은 몽둥이를 집어들었다.

"자. 나와."

한명씩.

우리는 앞으로 나가서 교복치마가 풀썩거리도록 허벅지에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

아오. 시발.

멍들겠네.

절뚝거리며 겨우 자리로 돌아갔다.

머리속은 혼란스러웠다.

이런,

두 명이 이란성 쌍둥이라고.

말도 안 돼.

혹시 두 명은 공범?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초등학교 때 알던 쌍둥이는 정말 닮은 점이 많았었다.

그때 나는 반장이었고

그 쌍둥이들에게 공부를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산수를 할 때

틀리는 문제가 거의 똑같았다.

생각하는 뇌 구조가 비슷함에 틀림없었다.

선천적으로.

그럼,

두 명 다 싸패라면?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 거지?

아. 혼란스러워.

하지만 답이 보이는 듯했다.

왠지 두 명이 작당해서 이 모든 일을 꾸민듯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전한 직감이었지만.

아직은 아무런 물증도 없지만 말이다.

오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이제 종례 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교탁 앞에 섰다.

이제 터질 것처럼 배가 탱탱했다.

언제라도 아이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배가 부풀어져 있었다.

"자. 오늘도 공부 열심히 했죠?

이제 선생님은 아이 낳으러 병원에 들어가요.

내일부터 새로운 선생님이 올 거에요.

대신에."

아이들은 순간 술렁거렸다.

"기간제 선생님이 오시는 건가요?"

반장이 물었다.

푸훗.

선생님은 작게 웃었다.

"미리 알려주면 재미 없잖아.

자, 반장은 선생님 없는 동안 애들 잘 관리하고. 그럼 건강하게 잘 지내고 방학 끝나고 보자. 얘들아."

반장이 일어섰다.

선생님께 종례 인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앞문이 열린 것은.

앞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바로 윤우였다.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저 훈남 누구야?"

"와. 겁나 잘생김. 그런데 여기에 막 들어와도 되는 거야?"

옷은 다 구겨져 있었지만 왠지 윤우 뒤에서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는 왜.

선생님도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누구세요?"

사복입은 윤우에게 일단 존대를 하는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소영이 남자친구입니다."

악!

순간 여자아이들이 반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말도 안 돼!

김소영?

김소영 남친이라고?

선생님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물었다.

"소영이 남친이 학교에는 왜?

이렇게 마음대로 들어와도 되는 건가?

들어와도 된다고 생각하나?"

선생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선생님.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저희는 아직 학생입니다.

소영이에게 도저히 학생으로서 풀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해서 어른인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려 이렇게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소영이가 직접 선생님께 말씀드리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

제가 이렇게 와서 실례를 무릎쓰고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마이갓!

이윤우.

너 대체 뭐하려는 거야.

하지만 윤우가 자신이 내 남친임을 밝힌 후부터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는 게 제 정신이 아니었다.

얼굴이 발개졌다.

아이들이 온통 내 얼굴을 쳐다보며 "오~ 김소영!" 이 말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혜경이와 재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래요? 이름이 어떻게 되죠?"

"이윤우입니다. 현제 거제도에 있는 사령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영이가 곤란한 일에 처해 있어 돕기 위해 잠깐 와 있습니다."

단정하게 이야기하는 윤우.

참, 믿음이 가게 말을 잘 한단 말이야.

"그래서, 그 일이라는 게 뭔가?"

"선생님께 단독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영이와 함께.

종례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선생님을 뵙기 위해서."

선생님은 막 학교를 떠나려는 시점에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부른 배를 쓰다듬었다.

마지막 날에 잘못 걸려들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다르게 바꾸셨는지

밝은 톤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그럼 수업 끝나고 윤우라고 했나? 윤우 학생과 김소영은 선생님을 따라오도록."

오마이갓.

이렇게 단독행동 하기 있음?

나는 속으로 윤우에게 따졌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머리를 굴렸을 윤우를.

어떻게 하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렇게 직접 학교에 나타났다는 것을.

"오, 김소영. 능력자."

"범생인줄 알았더니. 대박."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윤우가 무슨 말을 하러 온 건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훈남 윤우가 학교에 등장해서 그동안 별 존재감이 없는 내 남자친구라고 그러니까 그 사실이

놀라운 거였다.

으이구. 다들 내가 못산다.

"가능하다면 지금 선생님과 함께 동행해도 될까요? 소영이와 함께요."

윤우가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소영이 짐싸서 앞으로 나와."

나는 주섬주섬 짐을 쌌다.

마음 속으로는 윤우가 저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이해하고 있었다.

도무지 나도 풀 수 없는 그런 문제였으니까.

"그럼 종례는 여기서 마치도록 할게요.

자. 소영이는 윤우와 함께 날 따라오고."

아이들이 '오~' 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나와 윤우는 선생님 뒤를 따라갔다.

복도를 윤우와 함께 걷고 있자니 기분이 오묘했다.

복도를 지나는 아이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들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뭐 잘못한 것도 없지만

왠지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렇게 당도한 교무실.

"괜찮으시면 다른 곳에서 말씀 나눌 수 있을까요?"

윤우가 물었다.

"상담실같은 곳에서요. 비밀리에 말씀드려야 할 내용들이어서요."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왠 봉변인가.

학교 마지막 날에,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유심히.

내가 누구인가.

천하의 모범생 아닌가.

"그럴래? 소영아?"

선생님은 내게 친절히 말을 걸어왔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저희 셋만 이야기하는 게."

나는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고개를 들고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마음 속에서 결연한 의지 같은 게 피어올랐다.

"그래. 말하고 싶은 거 있으면 편하게 이야기해."

선생님은 이제 퇴근 따위는 체념했다는 듯이 나에게 자상하게 이야기했다.

역시 선생님은 달라.

내일이면 학교 안 나올 사람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시다니.

나는 약간 감동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혜경이와 친해지게 된 것.

혜경이와 친해지면서 알게된 사실들.

음악실에서 한 아이가 죽어나가며 혜경이가 언급했던 이너서클.

미술 선생님과 철학 선생님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어진 진희의 죽음.

선생님은 여기에서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진희가 우리 반의 오락부장이어서 더 믿기 힘든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뭔가를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희 집에 찾아갔어요."

"진희 집에?"

선생님은 놀라며 되물었다.

"네. 그리고 그걸 보았어요."

"뭘?"

"육각무늬.

죽은 아이들은 모두 육각무늬로 이어져 있었어요.

그들은 육각무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의 소지품에.

방 안에.

그 아이 뿐 아니라 그동안 실종된 모든 아이들은 육각무늬를 가지고 있었어요."

"뭐?"

선생님은 놀라서 되물었다.

"그게 다가 아니에요. 유일하게 육각무늬를 한 명 더 가지고 있던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는."

나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약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는 누군데?"

선생님이 급하게 물었다.

"재희에요."

"재희? 우리반 이재희?

죽은 진희 친구 재희?"

"네. 그 아이 교복에 육각무늬가 새겨져 있었어요.

저는 뭔가를 직감했어요.

그래서 그 아이를 따라갔는데.

그 아이는 제가 자신을 따라오는 걸 이미 알고 있더라구요.

그렇게 도착한 허름한 집에서 누가 발견되었는지 아세요?"

"누구? 얼른 말해봐."

"처음 우리 학교에서 실종되었던 1학년 아이. 그 아이가 거기에 있었어요."

"거기가 어디야. 당장 말해."

선생님은 급하게 이야기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갈 기세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모든 죽음과 실종사건의 배후에는 바로 혜경이가 있다는 거에요.

혜경이가 조작해서 이 모든 게 일어났다고.

그러면서 자신이 혜경이를 죽이겠다고 하더라구요.

바로 이번주 토요일에."

선생님의 안색은 창백했다.

마치 못 들은 걸 들은 듯이.

나는 비로소 선생님의 아이가 걱정되었다.

혹시 잘못되는 거 아냐?

그래도 해야할 말은 해야 했다.

"그런데 혜경이 말은 전혀 달라요.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재희가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 둘은 이란성 쌍둥이였어요."

후.

끝났다.

내가 해야할 말은 다 끝났다.

방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몰라서 남자친구인 윤우에게 연락했더니 윤우가 당장 달려와 주었어요.

그리고 선생님에게 말씀드리는 거에요.

선생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거라는 것을 믿고요.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선생님은 가만히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랬구나.

소영이 네가 마음 고생이 심했겠구나."

내 손에 와 닿는 선생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따스했다.

"이제 어른들에게 맡기렴.

선생님이 다 알아보고 처리할게."

"저희는 선생님만 믿어요."

나와 윤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끝이다.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알아서 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당연하지.

모범생 소영이가 하는 말을 선생님이 왜 안 믿겠어.

그 놈들 아주 뭘 하고 다니는지 혼구멍을 내줘야겠다.

너희들은 걱정말고 가 봐."

"감사합니다. 선생님."

가만히 듣고 있던 윤우가 선생님에게 말했다.

우린는 선생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휴. 이제 끝이다.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신다니."

"그래. 맘고생 많았어. 소영아."

"그건 그렇고 아까 그렇게 등장한 거, 완전 깜짝 놀랐잖아."

"어쩔 수 없었어. 널 지키기 위해."

"이젠 괜찮겠지.

윤우, 너 이제 집으로 돌아가."

나는 윤우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벌써 집을 나온지 삼일이었다.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부모님은 윤우를 믿으시겠지만 속으로 걱정이 많으시겠지.

하지만 내심 윤우가 내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

"걱정 마.

완전히 끝날 때까지 네 곁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완전히 끝나고서도 함께 할 거니까."

윤우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공부해야지.

얼른 공부하러 가.

내 걱정은 말고."

윤우의 얼굴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

마음이 따스해졌다.

"그래. 나 그럼 자율학습하러 갈게.

끝나고 연락할게."

그렇게 윤우는 학교를 떠났다.

나는 교실로 돌아갔다.

이런.

혜경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담임 선생님하고 면담이라도 하러 갔나.

보이면 보이는 대로,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이래저래 걱정을 끼치는 아이.

이혜경.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아이.

에라 모르겠다. 공부나 하자.

나머지는 담임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독서실에 갈 때까지 혜경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와 윤우는 같이 셔틀버스에 올랐다.

"이 아이는?"

셔틀버스 아저씨가 물었다.

"오늘부터 독서실 같이 다니는 친구에요. 같이 가서 등록할 거에요."

난 아저씨에게 말했다.

통로를 지나가자 우리를 보는 아이들이 모두 놀라는 듯했다.

상관없었다.

시온이.

시온이가 내게 눈으로 인사를 해왔다.

그러면서 내게 몰래 엄지척을 해왔다.

짜식.

나와 윤우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독서실에서 윤우는 일주일권을 끊었다.

와.

윤우와 같이 공부할 수 있다니.

이런 꿈같은 일이.

과연 공부가 될까.

내 옆에 앉은 윤우가 의식되어 솔직히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혜경이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집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탈 때까지.

"나 집으로 갈게.

여기 내 담요 있으니까 덮고 자."

나는 윤우에게 이야기했다.

"그래. 그럼 내일 봐."

윤우는 내게 찡긋 눈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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