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두 명과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전화 통화 이야기가 나왔다. 한 명이 자기는 업무 중에 제일 어려운 게 전화받는 거라고 했다.
요즘 '전화받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밥을 먹는데, 대뜸 내 칭찬이 시작되었다.
"과장님 전화받는 목소리가 너무 좋으신 것 같아요"
"저도 그 생각했어요! 딱 커리어우먼 같고.. 멋있어요"
"아휴, 그게 뭐가 멋있어요~ 그냥 하는 거지"
나는 민망한 나머지 손사래를 치며 얼른 다른 대화주제로 넘어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목소리가 나쁘진 않나 보네? 그런데 이 친구들이 내가 전화받는 것까지 다 듣고 있었단 말이야? 다른 팀 사람이랑 통화하면서 회사 욕도 간간히 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들었으려나..'
생각해 보니 나 또한 신입시절에 수화기를 들기가 참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 일을 배웠던 곳은 대행사여서 클라이언트에게 전화가 오는 일이 많았다. 선배가 자리를 비운 틈에 전화벨이 울리면 내가 당겨 받아야 하는데 '혹시 모르는 걸 물어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제발 전화가 오지 않기를 바라곤 했다.
"대리님, ㅇㅇㅇ님이 전화 주셨어요"
"ㅇㅇㅇ님? 어느 회사 ㅇㅇㅇ래요?"
"앗.. 그것까지는 못 여쭤봤는데.. 죄송합니다..."
왜 나는 소속까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으이구!! 하며 혼자 머리를 쥐어뜯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거는 건 가히 공포에 가까웠다.
모니터에 메모장을 띄워놓고 꼭 전달해야 하는 말, 상대방이 물어볼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까지 정리한 뒤에야 겨우 수화기를 들 용기가 생겼다.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통화가 끝나더라도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지금은 외부인과 통화할 일도 거의 없고, 내선전화로 타 팀에게 업무 문의를 하거나 일정 확인을 하는 정도다. 직접 찾아가기는 귀찮고, 인트라넷에서 텍스트로 이야기하기에는 애매한 내용일 때 수화기를 든다.
업무 일정 체크를 위해 디자인팀에 전화를 하려다가 문득 점심시간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마 후배님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전화받기가 어려워요~'라고 말했던 오늘을 떠올리며 피식 웃게 될 것이다.
"흠흠!"
그래도 이왕이면 내가 통화하는 모습이 그 친구들에게 계속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괜히 목소리를 한번 가다듬고 수화기를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