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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의눈 Aug 07. 2023

팀장님은 와이프가 다섯 명

편한 관계에는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

마케팅팀의 성비는 5:1. 그중 1이 팀장님이다.
일부러 여자만 뽑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런 성비가 되어버렸다.

우리 팀장님은 꼭 여고의 남자 담임선생님 같다.
"지수랑 안보현 사귄다는데?!"
"어제 내 알고리즘에 뜬 강아지인데 너무 귀엽죠"
여고생(?)들의 관심사와 딱 맞는 화젯거리를 내밀며 먼저 수다의 장을 열고, 점심시간 올리브영 구경도 자연스럽게 함께한다. 가끔 여자들끼리 시간 보내라며 슬쩍 빠져주시기도 한다.

"이번 생에는 남자팀원이랑 일할 복이 없나 봐요 하하"
팀장님은 이 업계에 몸 담은 이후로는 늘 여자들과 함께 일해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여자직원들이랑 일하는 게 익숙하고 편하시겠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냥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우리 회사에는 남자팀장님에 여자 팀원들로만 구성된 팀이 하나 더 있다. 영업 2팀 팀장님은 말수가 적고 표정변화도 거의 없는 분이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 팀장님께 개인상담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상담 내용인즉슨, 여자팀원들과 함께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 과묵한 사람이 본인에게 하소연하러 올 정도면 오죽 힘들었겠냐며 팀장님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전 같으면 그냥 남일로 치부하고 넘겼겠지만 초보 과장으로서 '중간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괜히 질문을 던져보았다.

"팀장님은.. 저희랑 일하면서 힘든 점 없으시죠?"
"나는 그냥 뭐.. 회사에서 와이프 다섯 명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아내에게 어떤 식으로 말했을 때 서운해하는지, 어떤 말이 동기부여를 하는지 학습한 것을 토대로 우리와 대화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는 옛말을 마음에 새기고, 최대한 팀원들의 의견을 수용하고자 노력한다고 하셨다.

나는 조금 놀랐다.

우리가 팀장님을 편하게 생각하는 만큼 팀장님도 우리를 마냥 편하게 여기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편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팀장님이 많이 노력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다.

우리 팀장님도 영업 2팀 팀장님과의 상담 시간에 우리는 몰랐던 나름의 고충을 토로했을지도 모른다. 나와 팀원들이 팀장님을 편하게 생각해서 했던 행동들이 어쩌면 팀장님께는 너무 격의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이 '분위기 좋은 팀'을 유지하려면 팀장님이 노력하시는 만큼 나도 노력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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