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수도인가요?

20260324(D+77)_인도/뉴델리

by 박대희

이미 인도를 한 번 경험한 우리에게 수도로 입국한다고 해서 큰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수도니까'라는 일말의 희망 같은 것을 안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우선 입국 수속. 지난 한 달간 세 번의 입출국 수속이 있었다. 첸나이 공항에서 처음 입국을 했고, 소나울리에서 첫 번째 출국을 했다. 그리고 오늘 델리로 다시 입국하는데, 첸나이에서 제 돈 다 주고 받은 비자가 한 번도 무난하게 통과된 적이 없다. 소나울리에서 나갈 때도, 오늘 델리에서 재입국할 때도 입출국 수속을 관리하는 직원들은 내가 받은 비자 외에 다른 서류들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그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쑥덕거리는데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내가 끼어들어 전후 상황에 대해 설명이라도 할라 치면 꽤나 근엄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입에다 갖다 댄다. 공항 밖에만 나서면 말을 못 붙여 안달인 인도인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는데 공항 안에서는 온갖 폼을 잡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좋을지 혼란스럽다. 중요한 건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외국인 비자에 대해 조금 더 잘 아는 사람이 등장해서 통과를 시켜준다는 것이다. 이건 직원 교육의 문제 아닌가. 자기 일도 잘 모르면 위세라도 떨지 말던가.


그렇게 겨우 공항 밖을 나서면 여지없이 릭샤나 택시꾼('꾼'이라는 표현 말고는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들이 몰려든다. 이미 예약 앱으로 가격을 알아보았지만 무어라 이야기하는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 가격이 비슷하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알아본 금액은 숙소까지 500루피 내외. 그런데 이 양반들이 그럴듯한 거리 산정표 같은 것을 내밀며 제안하는 금액은 3800루피였다. 자그마치 8배에 가깝다. 헛웃음을 지으며 예약앱 화면을 보여줬더니 앱으로 예약된 택시를 타려면 20분을 걸어야 하는데 본인 택시는 지금 바로 이 앞에 있단다. 하루 이틀 속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그들을 지나쳐 걸었고 2분 만에 예약한 택시가 기다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합리적 가격에 숙소에 도착했다고 승리감에 도취될 여유도 없었다. 이번에는 숙소에서 문제가 터졌다. 우리가 예약한 정보가 없단다. 환장할 노릇이다. 예약 정보를 넘겨주니 고개만 까닥까닥거리고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사장으로 보이는 이가 나타나서(오늘 만난 사람 중 유일하게 좋은 사람이었다.) 방이 있으면 그냥 주면 되지 않느냐 말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직원은 객실을 배정했고 우리가 입실하려던 찰나 결제는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우리는 이미 결제를 다 했다 하니 그때부터 또 한동안 쑥덕쑥덕이다. 영수증까지 보여줬지만 뭐가 못 미더운지 쉽게 키를 내놓지 않는다. 역시 사장이 넉넉한 웃음으로 키를 건넨 다음에야 사흘을 묵을 객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객실을 나섰는데 그제야 우리 정보를 찾았단다. 그들은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숙박 명부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그걸로 예약까지 관리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예약 누락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요즘 세상에 수기 관리라니. 정보를 찾았다고 신나서 떠드는 직원에게 가벼운 웃음을 안겨주고 돌아섰다. 릭샤 여행은 늘 거칠었고 심지어 저녁 먹고 돌아오는 길에 릭샤를 운전했던 기사는 운전 중에 담배까지 피워댔다. 뒤에 아이까지 있는데 말이다. 차가 정차했을 때 그 복잡한 도로에서 구걸을 하는 아이들도 인도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였다. 신호가 바뀌면 자동차고 릭샤고 오토바이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옆을 빠르게 스쳐간다. 아이들의 안전 따위는 애초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처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숙소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선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남인도에서 선택적 냉수마찰을 했지만 이번에는 내 의사와 무관하게 그냥 냉수마찰을 해야 했다. 수건은 인도의 어느 숙소나 깨끗하지 않았지만 축축한 것은 또 처음이었다. 그들에게 빳빳하게 마른 수건을 다시 갖다 달라고 하기에는 또 너무 많은 소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대충 물기만 닦고 침대에 누웠는데 내 몸이 침대에 다 들어가지 않는다. 침대 끝에 발목이 달랑거리는 모습을 보니 프로크루스테스가 침대에 맞춰 몸을 잘라 버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어떻게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래도 두 번째 입국이라고 이번에는 해 볼만하다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몇 시간 만에 내가 인도 앞에서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항상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고 잠시라도 방심하면 까불지 말라며 채찍질하는 것 같았다. 아직 2주 가까이 시간이 남았다. 또 무슨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하루하루가 두렵지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그리고 혹시나 잊었을까 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해 둔다. 오늘 하루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이곳은 인도 정치, 행정의 중심지 '수도' 뉴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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