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뺨 맞고 뉴델리에서 화 풀기

20260325(D+78)_인도/뉴델리

by 박대희

인도에서 우리처럼 누가 봐도 타지 사람은 거리에 발을 딛는 순간 진이 빠지기 시작한다. 호텔 밖만 나서도 지나가는 릭샤꾼들이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달려든다. 행선지까지의 요금이라도 미리 알아놨다면 붙어볼 만하지만 깜빡하고 그냥 밖으로 나섰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무기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스마트폰의 데이터 통신까지 원활치 않은 경우라면 그날 일정은 거기서부터 꼬여버린다. 우리가 오늘 그랬다. 당연히 스마트폰이 작동할 것으로 생각하고 호텔을 나왔는데 아들과 내 핸드폰은 약속한 것처럼 먹통이었다. 그 사이 적지 않은 릭샤꾼들이 몰려들었고 그때부터 나는 그들을 피하느라 어디로 걷는지도 알 수 없었다. 릭샤꾼 외에 말을 걸어온 몇몇 사람들은 진심으로 호의를 갖고 도우려던 이들 같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마저 경계하고 차갑게 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전철을 타기로 했고 어렵사리 전철역에 당도했다.


인도에서의 전철은 릭샤에 비해 크게 장점을 갖지 못한다. 우리처럼 둘이 다니면 여간한 거리는 릭샤와 전철의 금액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물론 릭샤가 비싸지만 전철과의 차액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기에 가급적이면 릭샤를 타고 움직였다. 릭샤는 부르는 자리에서 타서 원하는 곳 앞에 내려주기 때문에 전철보다 훨씬 편리했다. 그렇게 릭샤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가 전철을 탄 것부터가 문제였다. 첫 번째 행선지는 올드 델리(이하 델리) 지역에 위치한 레드 포트였다. 하차한 정거장에서 레드 포트까지는 큰길을 따라가는 방법과 골목길을 관통하여 가는 방법이 있었는데 나는 목적지에 빨리 당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골목길로 들어섰다. 바라나시 못지않은 좁은 골목길에서 아들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였다. 그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그는 레드 포트까지 가는 길 내내 나의 신경을 건드렸고 레드 포트에 도착해서는 나 역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냉전에 돌입한 결과, 레드 포트는 각각 따로 구경해야 했다. 나는 아들에게 너와 같이 볼 수 없으니 혼자 보고 나오라 했다. 그리고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정말로 혼자 보러 들어가 버렸다. 그런 말은 잘도 듣는다. 나는 엇갈릴 수 있으니 도리 없이 입구에서 기다려야 했고 그가 돌아보고 나온 뒤에야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시간 낭비였지만 심술이 난 부자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다음 목적지인 자마 마스지드까지 가는 길 역시 말없이 걸었다. 인도에서 가장 큰 모스크라 했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했겠는가. 꽤 비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자마 마스지드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빠져나왔다. 우리는 다시 전철을 타고 인디언 게이트가 있는 뉴델리 지역으로 자리를 옮겼고 카페에 앉아 시원한 음료로 목을 축인 후에야 각자의 화를 삭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인디아게이트에 가기 위해 카페에서 나온 시각은 오후 5시 반경이었다. 뉴델리의 거리는 델리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물론 델리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해도 저물고 더위도 가신 데다가 길까지 좋아지니 함께 걷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부부 사이의 싸움도 칼로 물 베기라 하는데 부자간의 다툼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언제 싸웠냐는 듯이 다시 이런저런 농담들이 오갔다.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 사이에 넌지시 한 마디만 보탰다. 감정 조절에 능숙해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오늘의 다툼을 우리의 성격 탓으로 돌리기에는 다소 억울함이 있다. 따지고 보면 결국 모두 인도 탓이다. 릭샤꾼들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도시 전역에서 데이터 통신이 원활했다면, 좁은 골목길이 더 깨끗했고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조금 더 예의가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새로운' 델리가 조금 나아 '오래된' 델리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해 줬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돌아오는 길에 숙소 바로 옆 '빅보스'라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 나는 저번처럼 완전히 밀어버렸고 아들은 폼을 잡아야 하는 사춘기였기에 이런저런 주문을 했다. 이름은 멋졌지만 이발사의 실력은 상호에 못 미치는 듯 보였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아들의 머리는 대만에서 자른 결과에 한참 부족했지만 그는 그때만큼 분노하지 않았다. 델리의 교훈이 그를 한층 성숙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끝끝내 인도의 장점을 찾아야 한다면 그건 나도 모르는 새 조금씩 늘고 있는 인내심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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