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

20260326(D+79)_인도/뉴델리

by 박대희

늘 기회만 되면 족쇄처럼 달려 있는 모바일 폰을 떼어내고 싶었다. 몇 가지 기능 외에는 손에 쥐어져 있으니 사용하는 것이지 꼭 필요해서 사용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다 보니 내 멋대로 '그 녀석'을 던져 버릴 수 없었다. 몇몇 예민한 선배들의 전화나 메신저라도 못 받는 날에는 하루 종일 난리가 났다. 사람이 어떻게 한 치의 오차 없이 '그 녀석'의 떨림에 반응해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관료제 사회에서 윗사람의 말은 늘 그대로 법이었다.


현실에서 '그 녀석'을 벗어날 수 없으니 상품으로라도 만들어보고자 회사에 몇 차례 제안했었다. 나는 리조트 회사에 다녔는데 입실하는 순간 모든 디지털 기기를 프런트에 반납하는 것이 상품의 핵심이었다. 지금은 이미 여기저기서 실행에 옮긴 듯 하지만 내가 디지털 디톡스 얘기를 처음 꺼냈을 무렵에는 미국의 한 법인 외에는 누구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이 제안마저도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당했다. 반려당한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제안했지만 결과는 늘 마찬가지였다.


회사를 나왔지만 나는 여전히 '그 녀석'을 들고 다닌다. 게다가 세계 여행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모든 짐을 잃어버려도 끝까지 지켜야 할 중요 품목 1호가 되어버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귀찮은 '그 녀석'을 저 멀리 치워버리고 싶지만 나와 얽혀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과연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지금 그런 고민을 할 때는 아니다. 당장은 소중한 문명의 이기를 적재적소에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사용할지를 고민할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부족한 이 부분은 아들이 잘 메워주고 있다.


오늘 오전에 찾은 곳은 악셔드햄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힌두 사원이었다.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사원의 화려한 지붕과 40m 가까운 동상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나는 입구에 도착하기 전부터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이 웅장한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지 연구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나와 아들은 입구에서 '그 녀석'은 물론 디지털카메라와 보조 배터리,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모두 다 반납한 뒤에야 겨우 사원 안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사원은 지금까지 인도에서 방문한 어떤 장소보다 깨끗했다. 게다가 화려한 조각들과 아름다운 건물들이 어우러져 내가 어제까지 돌아봤던 인도가 맞나 싶은 기분을 들게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신발을 벗고 돌아다녀야 했지만 오늘만큼은 어떤 저항감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눈으로 좋은 곳을 둘러보는 내내 마음 한편에는 '그 녀석'이 있었다면 어떤 사진을 찍었을지 머릿속에 그렸다. 의미 없는 상상이었지만 일종의 금단 현상 같았다. 멋진 장소를 지날 때면 '그 녀석'이 쥐어져 있지 않은 내 손이 어색했고 있지도 않은 '그 녀석'의 프레임 안에서 신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전 구경은 한 시간 남짓 진행되었다. 다시 돌아 나와 우리의 모든 디지털 기기를 돌려받고서야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통제구역 밖에서 보이는 신전의 일부라도 남기느라 '그 녀석'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했다. 매일 같이 새로운 곳을 만나고 있고 그때마다 SNS에 소개를 해야 하니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 버릇을 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 역시 '그 녀석'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용한 지 벌써 15년이 넘어가는데 어찌 자유롭겠는가. 객실 예약도, 기차 예약도, SNS 소개도, 길을 찾을 필요도 없어지면 나는 나의 의지대로 '그 녀석'을 끊어낼 수 있을까. 오늘 고작 1시간의 이별에서 느낀 대로라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자발적인 디지털 디톡스는 그야말로 과대망상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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