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8(D+81)_인도/아그라
대학 시절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찾아다니는데 열을 올린 기억이 있다. 7대 불가사의는 분류 방법에 따라 다시 고대 세계와 현대 세계의 것들로 나뉘어 총 14개를 일컫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는 상당 부분 소실 되어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많지만 현대 세계의 것들은 보유하고 있는 나라에서 열심히 관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 세계의 불가사의 중 요르단의 페트라와 페루의 마추픽추,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은 틈날 때마다 열심히 계획을 세워 찾아보았고 나머지 4개는 지금껏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인도의 타지마할이다.
떠오르는 태양 빛을 받은 타지마할의 모습은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었던 모습 그대로였고 실제로 보고 있자니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늘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과 달랐던 점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생각처럼 고요하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랄까. 이른 아침이라면 조금은 조용히 타지마할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나의 바람은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다투는 사람들의 흥분된 목소리에 쉽게 사그라들었다. 그럼에도 새벽녘의 타지마할 답사는 성공적이었고 아들과 나 모두 만족스러운 마음을 안고 현장을 떠날 수 있었다.
타지마할을 그릴 때 항상 함께 따라오던 것이 아그라라는 도시였다. 타지마할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일지 모르지만 아그라는 ‘인도스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나의 막연한 상상이었다. 아그라는 늘 깨끗하고 조용할 것 같았으며 관광객이 많아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타지마할 구경을 빼고 생각하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로 지친 여행자에게는 편안한 휴식을 제공할 것이라 믿었었다.
타지마할이 내 상상과 대부분 일치했다면 아그라는 대부분 엇갈렸다. 우선 인도의 여느 도시처럼 지저분했다. 특히 운이 없었던 건지 모르지만 우리가 묵은 숙소는 지금껏 거쳐온 대부분의 숙소와 비교한다 해도 최하위권에 속할 정도로 위생이 엉망이었다. 어젯밤은 날아다니는 모기 덕에 거의 한잠도 자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욕실이고 방이고 가리지 않고 등장한 바퀴벌레 떼가 온통 내 신경을 긁어대고 있다. 물론 살아있는 녀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침대고 테이블이고 작은 틈이라도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사체를 찾아볼 수 있다.
거리는 시끄럽고 편의시설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거리의 경적소리야 이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크게 부담스럽지 않지만 새벽까지 짖어대는 건 참기 어렵다. 유명 관광지 앞에서 펼쳐지는 호객 행위도 번잡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수많은 릭샤 드라이버와, 수많은 기념품상 주인, 또 수많은 가이드 호소인까지. 한 직종을 쳐내기도 쉽지 않은데 동시 다발적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세 개의 직종을 모두 방어하자니 정신이 있을 리 없다. 도로는 심심치 않게 파여 있고 물이나 음료수 따위를 사려해도 쉽게 마트가 보이지 않는다. 입에 맞는 음식점 같은 것은 기대할 수도 없다.
지금도 아들과 나는 모기와 바퀴벌레를 때려잡느라 여념이 없다. 당장 내일 새벽에 떠날 때까지 이 방안에 머물러야 하기에 잘 수 있는 상태는 만들어야 한다. 내가 머무는 공간을 위해 무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숙소 앞 도로를 지나는 경적 소리에는 우리가 대항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다. 그토록 기대했던 타지마할의 여운을 즐길 틈도 없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인도의 그림자가 우리를 덮쳤으니 아쉬울 뿐이다. 과연 미래의 어느 날 아들과 내가 오늘의 추억을 떠올리는 날이 온다면 그때 우리는 아름다웠던 타지마할과 힘겨웠던 아그라의 생활 중 어떤 것을 먼저 이야기할까. 장담할 수 없지만 높은 확률로 후자가 아닐까 싶다. 이제 남은 인도의 도시는 총 5곳. 그들 중 어딘가는 인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바꿔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