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을 읊기 시작한 서당 개

20260327(D+80)_인도/아그라

by 박대희

1년에 지구 한 바퀴를 돌아보려 했다. 지금까지 일곱 나라를 거쳐왔으니 하나의 국가에 머문 시간은 평균 열하루 정도. 한 국가에 대해 깊이 알고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화폐와 대중교통 체계 정도가 익숙해질 때 즈음이면 다른 나라로 옮겨가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처지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여러 나라를 스쳐가고 있다. 그럼에도 영토가 큰 나라들은 오래 머물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보름 이상 머물렀고 인도는 남은 일정을 포함하면 한 달이 넘어간다. 이후에 만나게 될 터키나, 미국, 캐나다도 체류 시간이 열흘은 훌쩍 넘어갈 예정이다. 이런 나라들은 아무래도 조금 더 그들의 생활이나 문화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인도 여행을 한 달 넘게 계획한 것이 잘한 일인지는 추후에 평가받기로 하겠다. 물론 지금은 큰 후회 속에 지내고 있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것은 나쁜 것들이 희석되기도 하고 때때로 아름답게 미화되는 경우도 있으니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모르겠다. 사후 평가야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이 험난한 곳에서 나와 아들은 지금 한 달 가까이 머무르고 있다. 대부분이 고통스러웠고 아주 잠깐씩 즐거웠지만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이들의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도 문화에 적응한다는 것이 다른 문화권에서 긍정적일 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지만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요악임에 틀림없다.


오늘 아침 우리는 뉴델리를 떠나 아그라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해야 했다. 열차 탑승시각은 새벽 6시였고 5시 20분경에 뉴델리 역에 도착했다. 그간 버스 이동은 대부분 실패했지만 목적지에 늦게 도착할지언정 기차는 항상 원하는 장소까지 이동시켜 주었다. 그래서 오늘도 기차를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인도에서의 여정이 늘 그렇듯 일은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인도는 비행기를 포함한 기차, 전철을 탑승할 때는 물론, 유명 관광지나 쇼핑몰에 입장할 때도 꼭 짐 검사를 한다. 과거에 있었던 파키스탄의 테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처럼 짐이 많은 사람들은 꽤나 번거로운 과정이다. 오늘도 아들과 나의 거대한 짐을 내려놓고 짐 검사를 받으려던 순간, 검사를 주관하던 사람이 난데 없이 기차 티켓을 요구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기차를 탔지만 한 번도 없었던 절차였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전자 티켓을 보여주니, 그는 다시 여권을 요구했고 셜록 홈스라도 되는 것처럼 티켓과 여권을 번갈아 관찰하던 그는 큰 결단을 내린 듯 우리에게 명령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티켓은 일반 티켓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 가능한 실물 티켓으로 바꿔서 다시 여기로 돌아와야 해."


나는 인도에서 터무니없는 얘기를 들으면 줄곧 못 알아듣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그럼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귀찮다는 듯 포기했고 우리의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 이 아저씨는 그렇게 대충 넘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내가 계속 못 알아듣는 시늉을 하자 갑자기 따라오라더니 역 밖으로 나가는 것 아닌가. 그리고 역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릭샤 드라이버들에게 일일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얘네들 지금 티켓이 없어서 받아와야 하는데 왕복 얼마면 되겠어?"


도대체 그 흥정을 왜 짐 검사하는 아저씨가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드라이버들이 부르는 릭샤 값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액수였다. 200km 떨어진 아그라까지 가는 기차표가 3만 원이 안 됐는데 1.5km 떨어져 있는 티켓 발행 창구까지 왕복하는데 어떤 이는 3만 원을 요구했고, 또 어떤 이는 5만 원을 요구했다. 짐 검사 아저씨는 길 잃은 외국인을 구해준 영웅이라도 된 양 3만 원을 부른 드라이버에게 우리를 인계했고 우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 드라이버의 릭샤에 타고 있었다. 나는 왕복 3km에 투자해야 할 3만 원도 아까웠지만 무엇보다 30분 만에 돌아와서 기차를 놓치지 않고 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난 인도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고 아들에게 내리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흥분한 아저씨가 지키는 곳이 아닌 다른 입구를 통해 우리가 타야 할 기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으로 접근했다. 그 과정에서 혹시 우리를 릭샤 드라이버에게 넘긴 아저씨를 다시 만날까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서 우리를 다시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플랫폼에 들어서자 마침 기차가 진입하고 있었고 주저 없이 올라탔다. 6시가 되어 기차는 출발했다. 그리고 출발한 지 15분이 지나자 승무원이 승차권을 검사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늘 그랬듯 전자 티켓을 내밀었고 아무 문제 없이 우리의 기차 여행은 승인되었다. 나는 3만 원도 아꼈고 예정된 시각에 기차도 탈 수 있었다.


무엇이 합법적인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짐 검사를 하던 아저씨의 방식이 정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인도를 여행하는 내내 과정보다 결과가 중시되는 경우를 수차례 봐왔고 그들이 하는 방식을 잠시 따라 해 본 것뿐이다. 우리말로 소위 '개 구멍'이라는 것을 통해 플랫폼에 접근했고 걸리지 않게 탑승했으니 이제 알 바 아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 방식이 몸에 익으면 또 다른 문화권에서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된다. 우선은 이곳을 빠져나가야 되니 급하면 인도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내가 꺼내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임에는 틀림없다.


도착 시간은 여느 때와 같이 늦어졌지만 무탈하게 아그라에 도착했다. 아그라에 들른 유일한 이유, 타지마할은 금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타지마할은 '개구멍'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내일 보기로 한다. 솔직히 말하면 오늘 같은 기분이라면 세계적인 문화유산 타지마할을 보지 못해도 그만이다. 그동안 수없이 두드려 맞다가 이제 겨우 한 대 때린 느낌이랄까. 그들은 맞은 지도 모를 것이고 관심도 없을 테니 그저 나만의 일시적인 자아도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지금 엄청난 승리감에 빠져있고 대단한 희열을 느끼고 있다. 인도에 들어온 지 3주가 되어가니 드디어 서당 개가 풍월을 읊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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