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3(D+76)_네팔/카트만두
여행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의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우리 일정이 그랬다. 오전에 찾은 부다나트 스투파까지는 머릿속에 떠올렸던 모습 그대로였다. 네팔에서 가장 큰 스투파였고 스투파에 달린 지혜의 눈도 스투파의 규모만큼이나 거대했다. 지혜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부처님의 눈이라고 하던데 저 정도 크기라면 정말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투파를 한 바퀴 돌고 주변의 상점들도 구경하고 그렇게 수월하게 첫 번째 일정이 흘러갔다.
문제는 두 번째로 찾아간 파슈파티나트 힌두 사원이었다. 진입로부터 심상치 않았다. 한동안 사라졌던 소들이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를 것처럼 어슬렁거리는 이 소들도 본인들이 어느 곳에서 안전한지 아는 것일까. 그들은 마치 누가 안내라도 하는 듯이 힌두 사원 근처만 가면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저 돌아다니기만 했으면 좋았을 이 소들 중 한 마리는 우리 앞에서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다. 가만히 걷는 것이 심심했는지 움직이며 변을 보기 시작한 것인데 그 배설물의 일부가 아들과 내 다리를 강타했다. 방사에 의해 곧장 날아든 것인지 아니면 엉덩이에 묻은 것을 꼬리로 쳐내 해를 가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 바지에 묻은 흔적은 분명 녀석의 변이었다. 그야말로 큰 변이 아닐 수 없었다.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우리 앞을 갑자기 늘어난 걸인들이 막아섰다. 네팔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는데 이곳에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한 발 딛기가 어려울 정도로 돈을 요구해 왔다. 개중에 몇몇은 깡통 가득 들어찬 지폐를 들고 위세를 뽐내고 있었는데 아들은 그 모습을 보더니 우리도 여기서 돈이나 벌어보지 않겠냐며 조소 섞인 말을 던졌다.
소와 걸인을 피해 겨우 도착한 입구에서 경찰인지 관리인인지 모를 사람들이 막아섰다. 힌두교도가 아니면 메인 템플에는 접근할 수가 없단다. 순간적으로 이마에 빨간 문양이라도 찍고 돌아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출입을 금하는 곳이 태반인데 도대체 인당 만원이라는 거금을 왜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출입을 금하고 있는 맞은편의 화장장을 가리키며 저 쪽으로 가보라 했다. 화장장 앞에는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다. 이름하여 바그마티 강으로 인도의 갠지스강과 합류한다 했다. 그래서 이곳도 바라나시와 마찬가지로 화장 문화가 발달했고 바그마티 강도 갠지스강 못지않게 지저분했다. 시체를 태우는 연기는 사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까지 피어올랐고 아들은 그 연기를 참아내기가 힘들어 보였다.
마치 신이 던진 모의고사 같았다. 내일 인도로 가니 미리 준비하라는 뜻이었을까. 어제 돌아본 카트만두와 파슈파티나트는 완전 다른 곳이었고 네팔 보다는 인도에 훨씬 가까웠다. 안 그래도 내일 인도로 가는 것 때문에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서있는 아들은 하루 일찍 찾아온 작은 인도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곳을 빠져나갈 때까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숙소로 돌아온 후에도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 좋아하는 한식으로 저녁을 대접했음에도 몇 숟가락 뜨지 않고 식사를 마쳤다. 모의고사를 망친 후유증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인도라는 곳을 한 번 겪어봤으니 두 번째는 조금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모르고 당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곳인지 알면서 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를 때 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을 듯하다.
점심을 먹고 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 노점상에서 팔찌 하나를 샀다. 야크 뼈를 깎아 만든(진짜 야크 뼈인지 알 방도는 없다) 해골 팔찌다. 어릴 적에 인사동에서 비슷한 모양의 팔찌를 하나 사서 간직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이 괜찮아 장만했다. 나는 종교가 없어 기댈 곳이 마땅치 않으니 샤머니즘에 의지해보기로 했다. 아빠가 하나 집어드니 아들도 가만있기 심심했던 모양이다. 해골은 모양이 기괴해서 싫었던 것 같고 잘 다듬은 둥근 광석들을 엮어 만든 것으로 챙겼다. 이제 우리는 무사안녕의 염원을 담은 팔찌를 차고 다시 인도로 돌아간다. 모의고사 성적은 엉망이었지만 실전만큼은 훌륭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