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7(D+91)_인도/아우랑가바드
고지 중독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였는지 정확지 않지만 아마도 요르단 페트라를 방문했을 때였던 것 같다. 시크가 끝나는 길에 살짝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알카즈네의 모습은 황홀했다. 우리나라 밖으로 나가서 무엇인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들게 해 준 것이 바로 알카즈네였다. 그런 알카즈네를 바닥에서만 올려다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래에서 보는 모습은 그것대로 웅장하고 아름다웠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다양한 알카즈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지금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소까지 안내가 잘 되어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원하는 곳에 닿을지 몰라 알카즈네 주변의 위로 오르는 길은 모조리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첫날은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조망 포인트를 찾는데 실패했고 두 번째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목적지에 이를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어찌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아들과 요르단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아마도 나는 다시 그곳에 올라 알카즈네를 내려다볼 듯하다.
어제 방문했던 엘로라 석굴에서도 나의 고지 중독 증세는 여지없이 나타났다. 엘로라 석굴의 주연 격인 16번 석굴에 가까워질 무렵 일단의 무리가 석굴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관광객을 위해 정비된 길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지만 내려오는 이가 있으니 나는 역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오르는 길에 관리인으로 보이는 이를 지나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막으려 들지 않았고 당연히 정상적인 관광 루트라 생각했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걷자 16번 석굴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나는 16번 석굴의 정수리를 눈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렇게 구경과 촬영에 열중하던 중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위험하니 내려오라는 신호였다. 산을 통째로 깎아 만든 사원이니 사원의 가장 안쪽 끝은 수직으로 잘려나간 암벽이었고 당연히 일자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였다. 그래서인지 원래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던 모양이지만 몰랐으니 어쩌겠는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으나 얻을 것은 모두 얻은 뒤였다.
아잔타는 엘로라와 달리 U자형으로 굽이쳐 흐르는 강가 절벽에 위치해 있다. 단순히 석굴이 위치한 곳만 본다면 뒤는 물이고 앞은 깎아지는 절벽이니 엘로라 보다는 아잔타가 작업하기 훨씬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그 이유 때문인지 나는 시작부터 아잔타가 엘로보다 마음에 들었다. 시련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작품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나는 석공들의 땀이 서린 이 U자형 계곡을 한눈에 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절벽 반대편 전망대에 올라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지만 10시가 넘어서자 태양은 높은 곳에 위치했고 덩달아 기온도 오르기 시작했다. 전망대에 이르는 길은 석굴군으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되돌아 나와 완전히 새로운 길로 편도 2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했다. 아들은 갈림길에 도착하자마자 가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나 역시 삐질삐질 흐르는 땀에 잠시 고민했지만 고지 중독자인 나는 결국 전망대로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른 아침부터 적지 않은 사람이 아잔타 석굴에 들어서고 있었지만 전망대를 찾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덕분에 한적한 곳에서 여유롭게 석굴들을 조망할 수 있었다. 늘 그렇지만 어렵사리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오르는 번거로움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거대한 절벽을 수놓은 29개의 석굴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그 모습은 석굴 앞을 가까이 지나면서는 도저히 접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촬영 기술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조금 더 절벽 끝에 설 수 있는 과감함이 부족했는지(고지에는 중독되어 있지만 고소공포증이 있음은 아이러니하다.) 사진에 담긴 U자형 계곡은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카메라 따위가 감히 따라오지 못할 건강한 두 눈이 있었다. 사진이 만족시켜주지 못한 만큼 눈과 마음에 그 모습을 가득 담고 아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 내려왔다.
높은 곳에 올라야 볼 수 있는 무언가는 꼭 높은 곳에 오르지 않아도 볼 수 있다. 페트라, 엘로라, 아잔타 모두 굳이 올라가지 않아도 남들만큼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높은 곳까지 오르는 수고와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은 옵션이라는 이야기다. 추가 비용 대신 땀을 바쳐야 하는데 모든 여행 상품이 그렇듯 옵션 상품은 말 그대로 선택사항이다. 누군가는 택하고 누군가는 거부한다. 여행지까지 와서 고단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함께 움직이는 다른 이들을 끌고 올라갈 이유도 없다. 오늘 내가 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 선택은 아들의 몫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역시 아들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아빠의 마음으로 돌아오면 함께 오르고 싶은 욕심은 늘 존재한다. 땀 흘려 오른 뒤에 만나는 장면은 대부분 감동적이고 그 모습을 같이 여행하고 있는 아들과 느끼고 싶은 건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지 않을까. 아들은 안나푸르나 정도 이름값을 해야 함께 오를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끝내고 나면 본인도 자부심을 느끼고 남들에게 자랑도 할 수 있지만 아잔타 맞은편의 야트막한 언덕배기야 그 누가 알아주겠는가. 그러니 고단함을 버리고 편안함을 취하려 하는 마음이 생겼을 수도 있을 듯하다. 앞으로도 고지가 있는 여행지가 나오면 나는 계속 오르려 할 테고 아이는 계속 머무르려 할 테니 우리의 여정이 어찌 흘러갈지 알 수없다. 그럼에도 아들 역시 어디선가 대단한 영감을 받아 고지 중독에 걸렸으면 하는 나의 작은 소망이 이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