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원숭이

20260408(D+92)_인도/아우랑가바드

by 박대희

아우랑가바드에서의 일정은 사실상 어제 끝났다. 뭄바이로 가는 기차는 오늘, 정확히 이야기하면 내일 새벽 3시에 아우랑가바드를 떠난다. 엘로라와 아잔타를 모두 둘러본 우리는 하루를 보낼 무언가가 더 필요했다. 열심히 알아보다가 결정한 곳은 '빈자의 타지마할'이라 불리는 비비 카 마크바라였다. 죽은 아내를 위해 타지마할을 지은 샤자한의 아들이 역시 자신의 아내가 먼저 떠나자 건설한 영묘다. 아버지는 아그라 포트에 가둬두고 마지막을 맞게 하더니 로맨티시즘은 흉내 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모든 모방품이 그렇듯 원조의 감동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예산이 부족해 대리석 대신 시멘트 등 잡다한 재료를 섞은 통에 빈자의 타지마할로 불린다나.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점은 원조에 비해 현저히 적은 관광객이었다. 덕분에 특별한 일정이 없던 우리가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한가하게 비비 카 마크바라를 거니는 우리가 현지인들의 눈에도 한결 접근하기 쉬워 보였던 것 같다. 인도에서 함께 사진 찍자는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독 그런 제안을 많이 접했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자 하는지 속내까지야 정확히 모르지만 함께 촬영을 한 후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 나쁜 감정은 아닌 듯하다. 그렇게 감사 인사를 받고 나면 괜히 인기 스타라도 된냥 우쭐해진다. 한국이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습이 누군가에게 보일까 조심스럽겠지만 이곳은 우리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는 이가 없으니 잠깐 들떠도 괜찮다.


페루를 여행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쿠스코에 위치한 유적을 돌아볼 때였는데 수학여행을 온 것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적이 있다. 또 페트라의 알카즈네 앞에서는 요르단의 초등학생 친구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곁을 내줘야 했다. 처음에는 다른 나라 관광객을 번거롭게 한다고 생각했는지 달려드는 아이들을 자제시키던 선생님마저도 나중에 사진을 확인해 보니 스리슬쩍 앵글에 들어와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주 보지 못하는 외국인을 봐도 사진 찍자며 살갑게 다가서지 못하는데 페루나 요르단, 인도 사람들의 정서는 우리와 조금 다른 듯하다. 타국에서 겪는 이런 식의 접근이 불쾌하거나 번거롭지 않다. 스타가 된 기분을 만끽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별에 사는 다른 민족과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기회는 내 여행을 한 껏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새록새록 솟아나는 인류애는 덤이다.


잠깐이지만 스타병만 앓다 하루가 갔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빈자의 타지마할 이후 여전히 시간이 남아 흐르던 우리는 늘 그렇듯 시원한 카페로 숨어들었다. 빵도 먹고 음료도 마시고 핸드폰도 두드리며 시간을 보내던 우리 주위로 서너 명의 젊은 남성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이 양반들이 돌아가며 우리 옆자리에 앉더니만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설마 했는데 나를 향하고 있는 렌즈와 눈이 마주친 후에는 의심이 확신으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문제는 일으키고 싶지 않아 뭐라 하지 않고 빤히 렌즈를 주시했다. 그제야 그들도 민망했는지 슬금슬금 거리를 뒀고 그 후로는 그들의 핸드폰이 우리를 쫓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인기 스타였는데 채 몇 시간도 흐르지 않아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오늘 많은 카메라에 노출됐다. 때로는 스타 같은 기분으로 찍혔고 또 때로는 원숭이 같은 기분이 들어 불쾌했다. 우리를 찍은 그들의 핸드폰에 우리의 모습이 담긴 것은 같지만 그 과정은 천양지차였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으니 아주 다양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부탁할 일이 생긴다. 가끔은 그 과정이 정직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얻을지 모르겠으나 그런 우연이 계속될 리 없다. 아들에게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앞뒤 사정을 정확히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을 거야. 물론 진심 어린 요청이 거절당해 민망하고 겸연쩍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런 경험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네 발목을 잡지는 않겠지. 반대로 남들을 속이고 네가 원하는 것을 얻는 상황도 생길 텐데 운이 좋아 몇 번은 성공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모습이 쌓여 평판이 될 테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너를 경계하게 될 것이며 정작 중요할 때 넌 신뢰를 얻지 못해 난처한 상황을 맞게 될 거야.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아도 대부분 알아. 그냥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 모르는 척하는 거지. 우리가 그들이 사진 찍는 것을 알고 있었듯이 말이야."


오늘 카페에서 만난 이들이 우리를 찍은 것이 아니라면 좋겠다. 한 달이 넘는 인도 생활에 젖어 스타병에 걸려버린 우리가 잔뜩 오해한 것이라면 조금 창피하긴 하지만 차라리 기분은 나을 것 같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진짜 몰래 우리를 찍었다면 내가 비록 다른 나라의 어른이지만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같이 찍읍시다.'라고 점잖게 타이를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랬다면 지금 느끼는 찜찜한 기분을 조금은 털어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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