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는 이유

20260410(D+94)_인도/뭄바이

by 박대희

한번 사는 인생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아직 여생이 많이 남았으리라 추정되니 '무언가를 하고 싶다'가 맞겠다. 고교시절이었는지 아니면 대학에 들어간 후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추운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할머니께서 폐지를 잔뜩 실은 짐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을 봤다. 왜소한 몸의 할머니에게 당신 몸집의 수 배는 되어 보이는 짐수레가 버거워 보였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할머니를 계속 따라가며 수레를 밀어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내가 사회에 나가면 저런 분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이다.


조금 더 철이 든 후에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도 빈자는 있고 그들을 모두 구제할 방법 따위는 세상에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걸 깨닫자 세상이 슬퍼 보였다. 모두가 행복할 수 없는 세상이 야속하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의미 있는 무언가'가 무엇일지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세상이 고통의 바다라면, 그리고 사람들이 평생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잠시나마 몸을 건져 쉴 수 있는 조각배 정도는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조각배는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큰돈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저 능력이 된다면 노트북 하나, 그 마저도 어렵다면 연필과 종이만 있어도 이 험한 세상에 작은 조각배 한 척 정도 정도는 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뭄바이는 지난 한 달간 지나온 인도와는 조금 달랐다. 빅토리아 양식의 고딕 건축물이 높다랗게 솟은 거리는 어느 유럽도시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릭샤가 사라진 도로도 한층 세련되게 느껴졌다. 덕분에 택시비는 올라갔지만 전철이 잘 깔려있어 굳이 택시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대낮의 더위는 우리를 지치게 했으나 그때마다 쉴 수 있는 카페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 뭄바이의 환상을 깨고 다시 우리를 인도로 돌려놓은 곳이 바로 도비 가트였다.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방문하여 이슈가 되었던 세계 최대의 빨래터가 그곳이다. 이곳은 여전히 재래식으로 빨래를 하고 있었고 역시 재래식으로 빨래를 말리고 있었다. 도비 가트로 들어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가 계속되었는데 흙먼지를 뒤집어쓰지 않고는 진입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먼지 속에서 각종 노점상이 장사를 하고 있었으며 웃통을 벗은 젊은이들은 도비 가트를 가이드해 주겠다며 끊이지 않고 호객 행위를 해왔다. 오수 처리가 잘 되지 않아 길거리를 가득 채운 악취는 아들의 헛구역질을 불러왔고 결국 코를 막고 걷게 했다. 이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도 있으니 유별나게 행동하지 말라고 나무랐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자이푸르에서 만난 릭샤 드라이버와의 대화가 스친 건 도비 가트 주변을 완전히 벗어났을 때였다. 내가 인도는 정말 크고 볼 것이 많은 나라라고 추켜올렸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너희는 땅은 작지만 돈 걱정은 안 하잖아. 우리는 땅은 엄청 넓은데 매일 돈 걱정을 하고 살아."


우리라고 어디 돈 걱정이 없겠는가. 나만해도 하루 쓴 여행 경비를 정리할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쉰다. 그렇다고 릭샤 드라이버의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인도에서 만난 가난한 이들의 행색은 이방인인 내가 보기에도 절망적이었고 과연 삶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비 가트 주변 사람들의 생활도 풍족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노동은 그 자체로 신성하겠으나 세탁기 없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고 공용 세탁시설도 흔해 빠진 요즘 세상에 큰 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도비 가트의 뒤편으로는 하늘을 뚫을 듯한 고층 아파트가 우뚝 솟아있었는데 이는 도비 가트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그들의 가난을 더 부각하는 듯했다.


도비 가트를 찾기 전 고딕 건물들 틈에 자리 잡은 스타벅스에 들렀다. 해리포터와 연계 마케팅 중인지 넓은 매장의 한쪽 벽에는 9와 3/4 승강장으로 통하는 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연일지 몰라도 해리포터에는 빨래터의 이름과 같은 집요정 도비가 등장한다. 도비는 나쁜 주인 때문에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힘들어하다가 결국 해리포터에 의해 해방되고 자유의 몸이 된다. 조앤 롤링은 그녀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집요정 도비를 해방시켰지만 그녀가 만든 이야기는 하루 종일 빨래에 매진한 누군가를 잠시나마 해방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 아는가 내가 쓴 글 역시 괴로움이 가득한 인생을 사는 이들을 쉬게 하고 웃게 할지.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꿈은 늘 크게 갖아야 하는 법이니까. 지금은 그저 쓸 뿐이다. 내가 띄운 조각배 위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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