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1(D+95)_인도/뭄바이
400일 가까운 일정 중 35일을 인도에 머물렀다. 전체 일정의 1/10에 가까운 기간이다. 얼마 전 한 선배가 물었다. 세계일주 하는 것 아니었냐며 인도에서 특별히 오래 머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선배의 질문에는 워낙 땅덩어리도 큰 데다가 여행 초반이라 의욕도 앞섰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렇게 답하고 난 후에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이유가 더 떠올랐다. 우선 내가 가보지 않은 나라였다는 점이 영향을 준 듯싶다. 아들 입장에서는 준비된 여행지가 대부분 처음 방문하는 곳일 테니 이왕이면 내가 경험하지 않은 곳에 시간을 더 들여도 괜찮겠다는 욕심을 부렸었다. 그리고 인도 여행을 견디고 나면 남은 일정도 조금은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품었었다. 이유야 무엇이 되었든 오늘 아침 뭄바이 공항을 떠나면서 길었던 인도여행을 마쳤다.
인도 여행을 길게 끌고 간 것에 대한 득과 실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알 수 있겠지만 당장 지금은 후회한다. 긴 여행에 적응하기도 전에 너무 급하게 페이스를 올린 느낌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떠도는 삶에 익숙해질 즈음 인도를 방문했다면 지난 한 달 넘게 받았던 스트레스보다는 조금 덜 괴롭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한다. 아들을 향한 죄책감도 나의 후회에 한몫을 했다. 그 역시 이런 여행이 처음일진대 초반에 너무 높은 난도의 문제를 던지고 풀어보라 한 것 같다. 그럼에도 아들이 꾸역꾸역 잘 풀어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오랫동안 준비한 프로젝트를 얼마 진행시켜보지도 못하고 마감할 뻔했다. 그런 측면에서는 이 험한 곳을 잘 견뎌준 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희생한 것이 많았던 만큼 얻어가는 것이라도 명확했으면 좋았으련만 아직은 크게 마음에 와닿는 것이 없다. 30일 넘게 몸을 맡긴 곳을 너무 괴물처럼 묘사한 듯하여 인도에서 남기는 마지막 글은 좋은 기억들을 집대성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2시간 가까이 고민한 끝에 내가 가진 좋은 기억들만으로는 한 편의 글로 엮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류의 찬란한 유산보다는 참을 수 없이 지저분했던 도시 곳곳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고 친절하고 고마웠던 이들보다는 염치없고 뻔뻔했던 인간들이 여전히 마음속을 어지럽히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지나온 모든 곳에서 느꼈고 힘겨웠던 매 순간마다 긴 여행을 버텨낼 인내심도 무럭무럭 자랐지만 한 달 넘는 인도생활과 맞바꿀 정도의 가치였나 싶은 의문은 든다. 인도에 다녀온 이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인생의 큰 깨달음 같은 것이라도 느꼈다면 좋았으련만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이곳에서의 기억이 언제, 어떻게 우리의 삶에 의미를 더할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어제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는 기어이 사기까지 당했다. 청구서를 받아 이용 내역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후 별생각 없이 카드 영수증을 받지 않았는데 숙소에 돌아와서 핸드폰에 찍힌 결제 금액을 보니 자그마치 6만 원 돈이 더 결제되어 있었다. 사기를 당했음을 인지한 때가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다음날 이른 아침 공항으로 떠나야 하는 나로서는 사기꾼들에게 환불을 요구할 방법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식당 리뷰에 청구서와 카드 결제 내역을 첨부하고 연락을 요청했지만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그들에게는 어떤 연락도 없다. 끝까지 확인하지 않은 나의 부주의함을 탓해야지 어쩌겠는가. 쉽지 않던 나라를 떠나는 출국세 정도로 생각하고 잊으려 하는데 쉽지는 않다.
이제 다시 오지 않을 땅을 떠난다. 그리고 여행 95일 만에 아시아 대륙도 함께 벗어난다. 인도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엉망진창이라는 정보라도 얻을 수 있었지만 당장 내일부터 밟게 될 아프리카 대륙은 정보 자체가 부족했다. 모든 것이 생경한 말 그대로 미지의 세계다. 그럼에도 스리랑카에서 인도로 들어갈 때의 초조함과 불안감보다는 덜하다. 그러고 보면 아프리카는 우리가 머무는 내내 인도의 덕을 조금 볼 것 같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가든지 여간하면 '확실히 인도보다 낫다'는 평을 듣게 될 테다. 만약 그런 말을 쉽게 꺼낼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아프리카에서의 두 달도 우리에게는 꽤 고난의 여정이 될 듯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