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3(D+97)_마다가스카르/안타나나리보
아들은 하룻밤 새 숙소에서 만난 형과 도타운 친분을 쌓았다. 새벽녘에 형과 함께 운동을 다녀온 이후 오늘은 숙소에서 형과 놀면 안 되겠냐며 하루 휴가를 요청해 왔다. 그 친구도 마다가스카르라는 나라에서 외국 친구들과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심 같은 모국어를 쓰는 또래가 필요했었던 모양이다. '형이 시간이 돼야 너랑 놀지'라고 아들의 제안을 에둘러 거절한 나의 반응에 본인도 오늘 시간이 많다며 걱정 말라는 듯이 끼어들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아들 나이대의 자식을 키우고 있는 지인들에게 여행지 곳곳에서 만나 함께 여행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실질적으로 쉽지 않은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혹시 이루어진다면 오랫동안 친구들과 떨어져야 하는 아들에게 좋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아직 한 건의 해외 접선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지 못한 '형'의 등장은 아들에게는 꽤나 신나는 이벤트였던 것 같다. 아빠 곁에만 붙어 100일 가까이 험지를 지나온 아들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아 그러라 했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하고 부자는 두 번째로 떨어졌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이틀째 아들이 아프다며 숙소에 있겠다고 했던 그날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들과의 분리는 옆에서 챙겨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에 대한 걱정을 수반하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해지기도 한다. 게다가 캄보디아에서는 아픈 아들을 떼어 놨던 것이고 오늘은 신난 아들을 떼어놓는 것이니 마음이 훨씬 더 편했다. 아들의 새로 생긴 친구 덕에 숙소 차를 이용하여 안타나나리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까지 올라갔고 그곳에서 헤어졌다. 나는 언덕 위의 궁전을 둘러보고 걸어서 언덕을 내려가 도시 구경을 할 생각이었고 아이들은 다시 차를 태고 내려가 치킨을 사다 놓고 모바일 게임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궁전을 돌아보고 내리막을 걷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여왕의 궁전'으로 대표되는 언덕 위의 왕궁단지를 둘러본 후 언덕길을 내려갈 때까지는 과연 이곳이 세계 최빈국의 지위를 경쟁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인가 의심이 들었다. 거리는 깨끗했고 사람들은 편안해 보였다. 학교 수업이 끝날 무렵이었는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삼삼오오 깔깔거리며 골목길을 걷고 있었고 건장한 젊은이들은 언덕길을 뛰어서 오르내리며 달리기에 집중했다. 100년 가까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탓에 거리 양편으로 유럽풍의 건물들이 스쳤고 그럴싸한 성당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의리의리하게 지어진 축구장은 도시의 전체적인 수준에 비해 너무 심하게 힘을 준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할 정도였다. 유럽의 어느 도시 같았다 하면 조금 과하지만 그렇다고 가난에 찌든 나라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언덕을 완전히 내려와 도시 남쪽에 위치한 아노지 호수를 둘러볼 때까지는 그랬다.
호수에서 숙소까지는 시장길을 지나야 했다. 그리고 불과 몇 걸음 사이에 완전히 다른 곳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노점상들이 넓은 길 양쪽에 가득 늘어서 있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판매하는 물건들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과연 쓸 수 있는 물건인가 의심이 들었다. 길거리 음식들은 인도의 그것 못지않게 비위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고 낮은 우리 안에 갇혀있던 칠면조는 도대체 어떻게 가지고 가라는 것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신발은 파는 것인지 버린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으며 볼펜을 파는 이는 어떤 볼펜이 쓸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려는 듯 종이를 펼쳐놓은 채 쉬지 않고 선을 그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늘어선 노점상들 사이를 낡을 대로 낡아 검은 연기를 내뿜는 차들과 인간이 끌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거대한 달구지('수레'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거대했다.)들이 분주하게 오갔고 다시 그 틈을 사람들이 비집고 이동하고 있었다.
시장에서 한 블록 더 안으로 들어서자 시장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의 사람들은 포장되지 않아 흙먼지가 날리는 거리를 찢어지기 직전의 신발이나, 그마저도 없는 이는 맨발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나마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보이는 것은 사람 한 명 들어가기 힘들어 보이는 구멍가게나 노천 빨래터 정도였으며 대부분은 지나는 행인들에게 구걸하는 것으로 연명하는 듯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거주 환경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거리 곳곳은 쓰레기로 가득 메워져 있었고 썩은 물은 흐르지도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웅덩이를 채우고 있어 걷는 내내 악취가 끊이지 않았다. 언덕을 내려온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고 나는 뭄바이의 도비 가트에서 느낀 감정을 또다시 되살려야 했다.
빈민촌을 관통하는 작은 천을 지날 때였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이래 항상 함께했던 파란 하늘이 멀리 펼쳐졌고 하늘의 심심함을 덜기 위해 하얀 구름이 동동 떠 있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광경은 잘 흐르지 않아 잔잔한 천에 그대로 투영되어 데칼코마니처럼 상하 반전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대로 그림이었지만 가까이서 본 모습은 부조화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시냇가에 버려진 쓰레기들은 물에 젖어 이미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자정 작용을 포기한 냇물은 불투명한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푸른 하늘은 스위스나 캐나다에서 봤던 모습이었고 썩은 물과 쓰레기 가득한 시냇가는 인도의 어느 곳을 닮아있었다. 이 두 장면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기괴한 일이었다. 푸른 하늘이 진주 목걸이라면 검은 천은 돼지 목 같았다.
의도한 바 아니지만 요 며칠 가는 곳마다 빈부격차를 격렬히 느끼고 있다. 내가 살아온 삶과 너무 달라 눈길을 잡아끌지만 바라본 곳의 모습은 이내 시선을 피하게 한다. 내 한 몸 추스르고, 아들 하나 챙기기 쉽지 않은 여행길에 빈부격차를 안타까워할 여유가 없음에도 너무 확연히 드러나는 대비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곳을 지나고 나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내일은 바오바브나무를 보기 위해 안타나나리보를 떠난다. 이동 시간만 17시간. 또 한 번 이동에 지칠 것이고 이동 후에 만나는 절경에 반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 장면들의 기억은 또 서서히 잊혀 갈 것이다. 그러나 한 여행자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의 삶은 계속된다. 자신의 입을 가리키며 맨발로 따라오던 맑은 눈의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 안타깝지만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