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놈 위에 나는 놈

20260414(D+98)_마다가스카르/모론다바

by 박대희

낮 12시 안타나나리보에서 모론다바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아들과 단 둘이었다면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버스 체계에 익숙해지느라 정신없었겠지만 다행히 안타나나리보에서 우리는 한인 숙소에 묵고 있었고 그곳 직원분이 탑승까지 친절히 알려주셨다. 아프리카의 버스들이 대부분 그렇듯 짐을 차 꼭대기에 올린 후 우리는 16인승 승합차에 탑승했다. 우리가 예매한 버스는 아프리카에서 프리미엄이라 불리는 종이었지만 프리미엄의 좌석마저도 내 몸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봐도 양 무릎은 앞 좌석에 닿았다. 가랑이를 벌려 다리를 복도 쪽으로 내미는 방식으로 오른쪽 무릎은 겨우 살릴 수 있었지만 좌측에 아들이 앉아있는 구조상 왼 무릎은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왼 무릎의 희생을 발판으로 긴 여정을 시작했다.


도시 경계를 벗어날 때까지는 그럭저럭 길 같은 길이 이어졌다. 조금 좁긴 했어도 차량이 속도를 높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창 밖으로 지나가던 건물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벌판이 채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는 달라졌다. 대부분의 길은 비포장 도로였는데 심심하면 공사하시는 분들이 'STOP' 사인물을 들어대는 바람에 차가 전진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흙먼지였다. 조금 과하게 얘기하면 안치라베까지 향하는 약 여섯 시간 동안 또렷하게 앞이 보인 시간은 절반인 세 시간도 못 되었던 것 같다. 당연히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버스는 문을 열고 달려야 했고 그 먼지는 모조리 버스 안으로 차고 들어왔는데 이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던 드라이버만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고 승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코와 입을 막느라 고생이었다.


어렵사리 도착한 안치라베 이후에는 흙먼지 이슈는 사라졌다. 하지만 새로운 난적이 나타났으니 바로 '반포장' 도로였다. 비포장 도로 보다야 차라리 반이라도 포장된 게 나은 것 아니냐 물을 수 있지만 내가 겪은 도로를 '반포장'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다면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안치라베부터 모론다바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심심하면 등장하는 거대한 웅덩이 덕에 차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조금 달리다 보면 구멍을 피하느라 유연하지 않은 동체가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고 그럴 때면 안에 있는 승객들의 속도 뒤틀렸다. 답답한 마음에 지도를 계속 들여다봐도 움직이지 않는 '내 위치'를 보고 절망할 뿐이었다. 애써 눈을 붙이려 해 봐도 잠들만하면 뒤뚱 거리고 잠들만하면 덜컹 거리는 버스 안에서 얕은 잠 마저 사치였다. 까만 밤과 헤드라이트가 만들어 내는 음영을 졸린 눈으로 바라보자니 때때로 웅덩이가 거대한 싱크홀처럼 보여 절벽으로 떨어지는 3D 영화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 몸도 흔들렸으니 4D라 해야 하나.


이런 길을 이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렸다. 휴식이라고는 저녁 먹으라고 내어 준 20분과 화장실 가라고 호의로 베푼 두어 번의 5분 남짓이 전부였다. 게다가 그들이 내려준 화장실이라는 곳은 그야말로 대자연이었는데 이곳에서 남자고 여자고 모두 풀숲으로 들어가는 방법 외에는 해결하고 싶은 무언가를 처리할 도리가 없었다. 또한 내 뒷좌석의 아이 엄마는 터무니없이 긴 이동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에게 모유를 주기 시작했는데 창 밖에서는 한 여성이 하의를 내리고 있고 뒷 좌석에서는 다른 여성이 상의를 들추고 있으니 무릎이 끼어 조금이라도 몸을 편하게 해 보고자 꿈틀거리던 나는 시선 둘 곳이 없어 그 마저도 편히 할 수 없었다. 우리 버스 안은 또 하나의 대자연이었고 그 자체로 아프리카였다.


안치라베에서 떨어진 해가 모론다바에 다다를 무렵 다시 떠올랐다. 아프리카에서의 첫 일몰과 일출은 좁아터진 버스 안에서 보게 된 것은 애석한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들판 위로 붉게 떠오르는 태양은 지난밤의 악몽을 씻어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여전히 힘든 몸과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어둠이 물러가니 조금 나았다. 게다가 모론다바에 가까워질 즈음부터는 흙먼지도 '반포장' 도로도 사라져 버스는 속도를 유지하며 달릴 수 있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마저도 반가웠다. 그리고 버스는 안타나나리보를 출발한 지 21시간 만에 바오바브나무를 만날 수 있는 모론다바에 우리를 내려줬다.


여행을 시작하고 수많은 장거리 이동을 했다. 특히 바라나시에서 포카라까지 이동한 25시간의 대장정은 지금도 훈장처럼 우리 마음에 남아있다. 그래서 모론다바행 버스도 별 어려움 없을 것이라 자신했었다. 하지만 늘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는 법이다. 버스가 전체 여정의 중간쯤 지날 무렵 아들이 나에게 물었다.


"포카라 갈 때랑 지금이랑 어떤 게 더 힘들어?"

"나야 포카라 갈 때가 힘들지. 이건 그냥 타고 있으면 끝나지만 그때는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출국하고 입국하고 또 버스 타고 할 게 많았잖아.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했어."

"그래? 난 이게 더 힘든 거 같은데."


대화 이후 버스는 10시간 이상을 더 달렸고 나는 아들이 옳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작부터 구겨졌던 다리는 하차 후에도 한참이 고통스러웠고 특별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나는 비로소 '전동 로데오', '전동 말타기' 같은 기구가 왜 운동이 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이겨냈고 포카라행 훈장 옆에 모론다바행 훈장을 하나 더 차게 되었다. 남은 여정에 이 보다 더한 장거리 이동이 없었으면 하지만 당장 내일모레 돌아가는 길부터 걱정이다. 물론 다른 곳에 들러야 해서 조금 다르겠지만 끔찍한 도로 사정을 목격한 내 입장에서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무서운 것이 사실이다. 주도로가 그 모양인데 어차피 이 땅의 어디인들 다르겠는가. 그럼에도 마다가스카르에 눌러앉을 수 없으니 우린 예정대로 움직여야 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것은 알았으니 나는 놈 위에는 부디 아무도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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