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 가는 길

20260216(D+41)_스리랑카/캔디

by 박대희

이름만으로 괜한 기대를 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회사 다닐 때의 일이다. 내가 다니던 리조트 회사는 본사에서 하는 일과 각 지방 사업본부에서 하는 일이 달랐다. 본사에서 영업을 해서 단체 고객을 현장으로 보내면 현장에서는 이 고객들이 문제없이 단체 행사를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행사장의 배치도 해당 업무 중 하나였는데 아무래도 힘이 수반되는 일이다 보니 남자 직원이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사 직원은 단체 행사를 유치한 후 내 일이 끝난 마냥 서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사업본부로 지원을 가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앞서 말한 직원과 협업을 하게 된다. 신입 사원 시절, 그러니까 이름만으로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던 때에 한 사업본부로 출장을 가게 됐다. 출장 전 확인한 사업본부 직원의 아리따운 이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말이다. 나는 당연히 '그녀'라 확신했고 마치 군대에서 PX 아주머니를 보고도 열광하던 것처럼 이 남초 직군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리라 생각했었다. 잔뜩 기대를 안고 현장에서 만난 '그녀'는, 아니 '그'는 아주 수더분하게 생긴 인상 좋은 남자 직원이었고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눈 후 말없이 열심히 책걸상을 날랐다. 그와는 지금도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지만 당시의 첫 만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람의 편견이 이렇게 무섭다. 이름 석자로 완전히 다른 세계를 꿈꿨으니 말이다. 우리가 오늘 도착한 캔디가 그렇다. 담불라에서 버스에 오르기 전, 이 달콤한 이름 석자에 아들은 마치 휴양지에라도 가는 듯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도시 역시 유네스코에서 신성 도시로 정한 곳이고 많은 불교 유적을 간직한 곳이다. 설명을 해줘도 아들은 거부하고 싶은 것인지 끝내 캔디에 대한 환상을 깨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도착하자마자 흩어질 꿈이니 잠시라도 행복하도록 더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캔디에 대한 환상은 찬란한 불교 유적을 돌아볼 때까지 계속되지 않았다. 캔디 가는 길은 악몽 같았다.


콜롬보에서 아누라다푸라에 도착한 이후 나는 스리랑카 일정을 대대적으로 손봤다. 그 과정에서 하루 숙박비를 포기해야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작은 손실이라 판단했다. 이유는 스리랑카의 도로 사정이 내가 상상한 것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200km를 이동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6시간이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쉬엄쉬엄 달려도 3시간 반, 조금 서두르면 3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내가 원래 세웠던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이동만 하다 끝날 판이었다. 아이의 체력 등 다방면으로 고려할 때 여러모로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적절했고 지금도 며칠 전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늘 출발한 담불라에서 캔디까지는 70km가 조금 넘는 거리지만 내가 차에 앉아 있었던 시간은 정확히 4시간 반이었다. 시간당 15km를 조금 더 간 셈이다. 사정을 들여다보면 더 답답하다. 우리가 차에 탄 시각은 아침 9시. 우리 차량은 담불라 인근 주변을 탈탈 털어 4명의 외국 관광객을 더 태웠고 그 과정에서 2시간이 소요됐다. 그리고 그 2시간이 흐른 후, 그러니까 11시에 나는 다시 내가 처음 차를 탔던 위치에 서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를 마지막에 태우면 되는 것 아닌가. 호텔에서 아침잠이라도 더 자게 내버려 두지 왜 9시부터 우리를 태우고 다른 승객들을 태우러 돌아다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튼 우리는 마치 차장이라도 된 양 다른 승객들이 탈 때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눠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진짜로' 출발하게 된 우리 차는 가는 내내 창문을 열고 달렸다. 담불라를 빠져나가 지방도로를 달릴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스팔트를 점령한 코끼리도 신기했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가 가까워지자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스리랑카의 버스와 트럭은 오래된 것들이 많은데 이들은 한 번 출발할 때마다, 혹은 차에 힘을 가할 때마다 시커먼 매연을 뿜어댄다. 이 기분 나쁜 가스는 시각적, 후각적으로 굉장한 압박을 가해왔다. 에어컨이 제 성능을 못하니 창문을 닫자는 이야기도 쉽사리 꺼내지 못한다. 기사 아저씨는 아마도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창문을 닫고 달리다 열사로 생기는 문제를 감내할 것인지, 아니면 문을 열고 달리다 발생하는 호흡기 문제를 감내할 것인지. 그는 후자를 선택한 듯했고 본인 역시 연신 콜록거리며 핸들을 돌렸다.


도시로 접어든 후,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오늘 지나온 모든 길이 왕복 2차선 도로였지만 그래도 도시 밖에서는 3차선처럼 달렸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툭툭과 오토바이, 부쩍 많아진 교통량은 더 이상 중앙선의 침범을 통한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꽉 막힌 도로에 서 있을 때가 많았고 우리 차 앞에 버스라도 자리할 때면 앞서 말한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우리의 기관지를 공략해 들어왔다. 내릴 때가 되자 호텔 앞까지 데려다주겠다던 계약 당시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당당히 추가 요금을 요구하길래 우선 내렸다. 승객의 돈을 더 뜯어내려는 술수도 얄미웠지만 그 차에 계속 타고 있다가는 정말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정신 차릴 정도로 쉬었다. 그리고 캔디 산책이라도 할 마음으로 밖으로 나왔는데 달콤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우선 우리가 지나온 도시보다 선선했다. 남쪽으로 한 참을 내려왔는데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알 수가 없다. 매캐한 대기는 차 안이나 밖이나 여전했지만 그래도 차 밖에서의 매연은 여러 명이 나눠 마시는 느낌이라 억울하지 않았다. 오묘한 빛깔의 노을도 우리를 환영했고 밤이 되자 우짖던 엄청난 새떼들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여행은 나쁜 기억들을 쉬이 잊게 한다. 캔디로 향하던 길의 공포를 뒤로하고 우리는 또 앞으로 나아갈 기운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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