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나는 새는

20260215(D+40)_스리랑카/담불라

by 박대희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늘 새벽 6시 전에 집을 나섰다. 결혼 후 거처를 수원으로 옮긴 후에는 출근 시간을 더 당겼는데 그러자면 5시도 전에 눈을 떠야 했다. 그렇게 까지 일찍 일어난 이유는 간단했다. 첫 번째는 지옥철 회피. 사람 많은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에게 지옥철은 그 무엇보다도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나의 통근 시간에 전철에는 거의 아무도 없다시피 했고 때로는 부족한 잠을 청하고, 때로는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회사로 향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 사실상 나만의 시간은 지극히 제한된다. 근무 시간에는 회사 일을 봐야 했고 퇴근 후에는 돌아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때때로 만들어진 저녁 약속에 참석해야 했다. 그러자니 아침 시간이 아니면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든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내가 얻어가는 것도 적지 않았다.


스리랑카가 내 여행에 포함된 이유는 명확했다. 나는 시기리야가 보고 싶었다. 스리랑카에는 그 외에도 많은 볼거리가 있었지만 그 모든 것 중 하나를 골라서 봐야 한다면 그것은 시기리야였다. 이건 아마도 세계의 불가사의를 찾아다니던 젊은 시절의 버릇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테다. 시기리야를 둘러보는 것은 현재 우리 여행의 흐름을 보더라도 매우 시의적절했다. 안 그래도 사원에 지친 아들에게 다른 자극을 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왕 이곳을 볼 생각이라면 근사한 일출로 시작하고 싶었다. 아들은 일찍 일어나는 것을 꺼려했지만 대낮에 등산하려면 많이 더울 것 같다고 은근한 협박을 가했다. 이미 전날 석굴사원을 오르며 지친 아이에게 작전은 적절했고 아이는 결국 새벽 출발에 동의했다.


일출을 배경으로 한 시기리야를 보려면 역설적으로 시기리야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야 한다. 시기리야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피두랑갈라가 그곳이다. 나는 어젯밤 툭툭을 예약했고 새벽 4시 반 호텔을 빠져나왔다. 30분가량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데 뚫려 있는 양면을 통해 불어 들어오는 새벽바람이 차가웠다. 여전히 빛 하나 없을 때 피두랑갈라에 도착했다. 시기리야도 피두랑갈라도 밀림에 우뚝 솟은 언덕이다 보니 30분 정도는 등산을 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시야가 좁아진 새벽 산행은 밝아진 후의 그것보다 어렵지만 여행 떠나오기 전 많은 연습을 한 아들에게 괴로울 정도는 아니었다. 꼭대기로 향하는 길이 좁고 험해 방문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졌다. 덕분에 산행이 지연되긴 했지만 해가 뜨기 전에 정상에 오르는 것에 무리는 없었다.


피두랑갈라 정상의 넓은 바위에 앉아 일출을 기다렸지만 결과적으로 해는 보지 못했다. 어제부터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이 오늘도 흩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출 관람을 포기해야 했지만 이른 아침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출을 기다리며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스리랑카에서 흔치 않은 경우였지만 워낙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기회가 된 것 같았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이었는데 한 친구는 취업을 했고, 다른 한 친구는 준비 중이라 했다. 두 친구 모두 영상을 전공하여 포트폴리오도 준비할 겸 여행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답게 그들은 일반 촬영과 함께 드론 촬영도 병행하고 있었고 고맙게도 나와 아들의 드론 영상도 만들어 보내주었다. 오늘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무슨 재주로 시기리야를 배경으로 한 드론 영상을 손에 쥘 수 있었겠는가. 부지런함은 때로는 생각지도 않았던 형태의 보답으로 돌아오곤 한다.


아들의 이른 아침도 그에게는 꽤 괜찮은 거래였다. 그는 오전 중에 끝나버린 일정 덕에 오후 내내 숙소에서 핸드폰 게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들은 여행 한 달이 지나는 시점에 조금 지쳤는지 요즘 부쩍 에어컨이 나오는 숙소를 갈구하는 중이다. 사원이고 뭐고 그냥 들어앉아 쉬고 싶다는 건데 내가 그렇게 두지 않으니 그도 하루하루가 고단할 것이다. 어제의 종교 논쟁도 그런 배경에서 촉발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당당하게 숙소에서 빈둥거릴 수 있었다. 사흘 후면 우리는 해이튼이라는 곳으로 가서 스리랑카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한다. 아담스피크라는 곳에 오를 예정인데 이 때도 역시 오르는 시점의 선택지가 생긴다. 아마도 아들은 다시 새벽 산행을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 새벽 산행의 고단함보다 돌아온 후의 달콤한 오후가 그에게는 더 매력적인 유혹일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난 결과가 설사 편안하게 즐기는 핸드폰 게임이라 할지라도, 서둘러 맞이한 아침의 기억이 긍정적으로 각인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