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장과 제천대성

20260213(D+38)_스리랑카/아누라다푸라

by 박대희

콜롬보에서 5시간을 달려 애써 북쪽으로 올라온 이유는 간단했다. 스리랑카 불교의 시작점이라는 미힌탈레 유적지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인도 황제의 아들이었던 마힌다가 승려가 되어 아버지의 명을 받고 스리랑카로 파견된다. 당시 스리랑카는 인도 황제의 친구 데바남피야티샤 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친구 아들의 설법을 듣고 불교를 받아들였다는 역사가 전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처음 만난 곳이 미힌탈레이며 이곳은 지금도 많은 스리랑카 불자들의 순례지로 여겨진다. 이곳은 300m 정도 되는 언덕에 자리했는데 무더운 날씨에 오르자면 땀이 제법 흐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등산하다 보면 신발을 벗고 산을 오르내리시는 분들을 종종 뵀다. 건강을 위해 그러시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먼 이국 땅에 와서 내가 그렇게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사원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처음에는 재미있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언제 맨발로 산을 오르겠는가. 게다가 여긴 모두가 벗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일 일도 없다. 오히려 스리랑카 분들은 맨발의 이방인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웃음을 보내주셨다.


평평한 계단을 오르는 것 까지도 큰 문제없었다. 하지만 계단이 끝나는 시점에 서면 세 곳의 작은 언덕이 다시 등장하는데 모두 둘러보려면 각각 오르내려야 한다. 높은 언덕은 아니니 체력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발 없이 돌산을 오른다는 것이 쉽지 않다. 우선 신발의 마찰력과 맨 발바닥의 마찰력이 다르다. 자신 있게 딛던 발걸음이 어쩔 수 없이 주춤거리게 된다. 미끄러지진 않을까 싶은 마음에 보폭도 좁아진다. 특히 내려올 때는 걱정이 더 많아진다. 그래도 마찰력은 조심해서 걸으면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달궈질 대로 달궈진 돌들이었다.


중국 영화에 보면 소림사 승려들이 뜨겁게 달궈진 모래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며 손바닥을 단련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들은 무술가니 그렇다 치자. 우리는 전혀 의사가 없는 여행자임에도 부득불 손바닥도 아닌 발바닥을 단련하게 된 것이다. 평지는 그나마 낫다. 요리조리 요령도 피우고 너무 뜨거우면 그늘 쪽도 밟고 하면서 뜨거움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오도 가도 못하는 돌산에서는 방법이 없다. 게다가 가파르고 비좁은 곳은 꼼짝없이 강하게 딛고 서 있어야 하는데 여간 뜨거운 게 아니다. 미힌탈레 이후에도 몇 곳의 사원을 더 들렀는데 모두 맨발이 되어야 했다. 결국 마지막 사원을 돌아 나왔을 때는 발바닥이 조금 벗겨져 있었다. 아들은 자신의 발은 멀쩡하다며 내 눈앞에 발바닥을 들이밀었다. 소림사에 보내버릴까 잠깐 생각했다.


그래도 뜨거운 한 걸음, 한 걸음에 재미를 준 건 원숭이 떼였다. 앙코르와트 이후 다시 만난 이 친구들은 훨씬 더 공격적이고 영악한 녀석들이었다. 그들은 미힌탈레를 방문한 사람들의 소지품을 마치 제 것인 양 강탈해 갔는데 주 공격대상은 꽃과 음료수였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제단 앞에 올리기 위해 꽃을 많이 갖고 방문했는데 원숭이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인지 그렇게 꽃을 빼앗아 들고 도망갔다. 조용한 사원에서는 듣기 어려운 여성들의 비명 소리가 종종 터져 나온 이유도 모두 이 원숭이들 때문이었다. 아들은 마시던 음료수를 빼앗겼다. 본인은 줬다 하는데 터무니없는 얘기다 멀쩡한 음료수를 왜 원숭이에게 주겠는가. 아비 마실 것도 없는데 말이다. 개떼를 보고 도망가고 원숭이에게 음료수를 헌납하는 것을 보면 아직 아들은 발바닥만 강한 모양이다.


원숭이들은 길가는 사람의 소지품을 빼앗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았는지 매점 지붕 위에 잠복하다 손님이 물건을 넘겨받을 때를 노렸다. 인간이 어찌 원숭이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들은 번개처럼 나무 위로 뛰어 올라갔고 매점 주인은 돌을 들고 쫓아왔지만 타깃이 사라지자 던져보지도 못했다. 그런 녀석들의 재간을 보고 있자니 서유기의 주인공이 왜 원숭이로 낙점되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서유기 초반, 손오공은 제천대성으로 임명되는데 그건 사실 하늘에는 있지도 않은 직함이란다. 그런데 손오공이 너무 협박하고 날뛰니 하늘나라의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옥황상제가 그냥 원하는 직함을 줬다는 이야기다. 한낱 인간이 보기에도 저리 얄미운데 옥황상제는 어찌 참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까부니 결국 부처님께 벌을 받게 됐지만 말이다.


철사장과 제천대성은 모두 먼 기억 속의 이야기들인데 스리랑카에서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하루 종일 발바닥은 뜨거웠고 원숭이가 천지사방으로 날뛰어 정신없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정말 불교가 번성하던 어느 시대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아들도 오늘 경험은 지루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돈된 사원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 보다야 아이의 입장에서는 원숭이라도 날아다니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서역으로 가던 삼장법사만 원숭이의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늘 나에게 원숭이들은 손오공이었고, 제천대성이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