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2(D+37)_스리랑카/콜롬보
콜롬보를 떠나는 날이다. 이제 이곳은 스리랑카를 떠날 때 다시 들르게 된다. 우리는 중부를 휘돌고 다시 돌아와 인도행 비행기를 탈 것이다. 버스 시간은 티켓을 구매했을 때 봤던 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뒤로 밀렸다. 그래도 먼저 얘기해 줬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버스 시간까지 한참 남아 유서 깊다는 강가라마야 사원에 들렀다. 세계 각국의 불상을 모아 놓았다고 하는데 모아 놓은 것은 불상뿐만이 아니었다. 자동차며, 카메라며, 낡은 손목시계들까지 질서 없이(내가 질서를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진열장에 들어차 있었다. 심지어 우리의 거북선과 일본의 피카추도 먼지가 쌓인 채 진열되어 있었다. 불상이 많아서 그렇지 만물상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 뒤에 찾은 시마 사원도 강한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다. 스리랑카의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현대식 사찰이라 하는데 나의 안목이 미치지 못한 듯하다.
그렇게 콜롬보 일정을 모두 마치고 터미널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짐을 싣고 앉자마자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한국 사람이에요?' 스리랑카에 와서 놀랄 일이 많았지만 이때만큼 놀란 적은 없는 것 같다. 누가 봐도 완벽한 스리랑카 사람이었는데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우리나라 말이었다. 조금은 어눌했지만 나의 영어보다 수천 배는 나아 보였다. 대화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택시 기사의 이름은 스미라 씨, 나이는 이제 37살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19살에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아이를 낳기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온 시간을 제외하면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에서 일을 했단다. 그의 회사는 그가 입사할 당시 전 직원이 5명이었는데 그가 떠나올 때 500명이 되었다고 한다. 거의 개국공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뼈다귀해장국을 좋아한다며 연신 군침을 삼켰다. 거기에 소주도 꼭 필요하다 했다. 영락없는 한국사람이었다. 뼈다귀해장국을 못 먹은 지 시간이 꽤 흘렀다며 아쉬워했다. 콜롬보에 한국 식당이 없냐는 질문에 몇 곳 있다 대답했지만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이었다. 때는 저녁 시간이었는데 정해진 일정이 없다면 저녁이라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금 맛이 떨어져도 뼈다귀해장국과 함께 소주 한잔 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이 황당한 곳의 여행 정보도 조금 얻고 말이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조심스러운 질문도 던졌다. 나쁜 일들을 당한 적은 없냐고. 그는 본인을 포함해 친구들 누구도 그런 적 없다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했다. 스미라 씨가 만난 한국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사장님과 그의 가족들도 모두 본인에게 잘해줬고 그래서 그는 언제나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택시 운전은 아르바이트처럼 하고 있는 거란다. 내가 던진 질문이지만 그런 대답이 돌아오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때로는 언론에 보도되고, 때로는 개그 프로에서 희화화된 모습이 적어도 그에게는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기 직전, 우리의 차선 앞으로 오토바이 하나가 급하게 치고 들어왔다. 그는 온화한 질책을 쏟아냈다. 문득 궁금했다. 한국 욕도 할 줄 아냐 물었다. 너무 잘한단다. 하루에도 험한 말을 수차례 하는데 아무도 못 알아 들어서 너무 좋단다. 지금도 그 욕이 발사될 시점이었지만 뒤에 어린이가 타고 있어서 참았단다. 아비 된 사람이 수양이 부족해 지금 하려던 욕을 아들 앞에서 툭툭 내뱉으니 아들도 이미 알고 있다고 이야기해 줬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욕을 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 같았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순간 터미널에 도착했고 우리는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스미라 씨 덕에 콜롬보의 기억을 조금이나마 씻어내고 떠나나 했다. 하지만 이곳은 스리랑카였다. 내가 타야 되는 버스가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안내가 없기에 물어 물어 찾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천만 다행히 주차되어 있는 우리 버스를 발견했다. 짐을 싣고 화장실에 들렀을 때는 내부자들의 이병헌 님을 보는 듯한 양반이 돈을 거둬가고 있었다. 인당 40루피니까 200원 정도. 그래도 영화 속에서는 좋은 음악도 틀어주고 안마도 해주는데 이 양반은 험한 인상만 쓰고 앉아있다. 현지인들이 모두 그의 손에 돈을 쥐어주니 이방인이 별 수 있는가. 강탈당하는 느낌이지만 지저분한 화장실을 쓰고 80루피까지 얹어 주고야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그래도 그때 화장실을 갔기에 망정이지 이 버스는 5시간 반을 달리는 동안 단 한 차례도 휴게소에 들르지 않았다.) 자정이 다 되어서 이름도 어려운 아누라다푸라에 도착했다. 우리의 스리랑카는 더 깊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