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1(D+36)_스리랑카/콜롬보
스리랑카의 첫날은 혼란스러웠던 지난밤의 연속이었다. 우선 사람들은 너무 잘 웃거나 혹은 전혀 웃질 않았다. 너무 잘 웃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부담감이, 전혀 웃지 않는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들었다. 교통은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어차피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모두 무단횡단이 아니면 길을 건널 수 없는 교통 상황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베트남에서 태국까지 넘어오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스리랑카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대부분 꺼져있었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차는 좀처럼 속도를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위생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길에는 까마귀와 비둘기가 어울려 놀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쥐와 다람쥐가 어깨를 나란히 뛰어다녔다. 가끔은 조류와 설치류의 작은 파티도 열렸는데 사람들이 던져 준 과자를 함께 주워 먹는 쥐와 까마귀는 기괴해 보였다. 쥐를 너무 싫어하지만 그것도 자주 보니 그럭저럭 적응이 되었다. 나는 상의에 새똥을 맞았고 내가 새똥 맞을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던 아이는 한참 웃고 난 후에야 본인의 핸드폰에도 새똥이 떨어졌음을 인지했다.
그래도 오늘의 최고는 세탁대란이었다. 여행을 길게 하면 세탁은 때때로 다가오는 과제 같은 것이다. 집에서야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옷감에 맞게 말리면 되지만 여행지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처음 몇 차례 건조기가 가능한 옷과 그렇지 않은 옷을 나눠 세탁을 맡겨 보았지만 도저히 안 되겠어서 옷감이 상하는 것 따위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행히 아직 못 입을 정도로 줄어들지 않았으니 그걸로 대만족이다. 한국에서는 심심하면 보이던 코인 세탁실이 동남아 어디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억지로 찾으면 찾겠지만 숙소에서 가까운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것이 호텔 세탁 서비스인데 두 가지 케이스가 있다. 하나는 세탁물의 개수에 따라 가격을 책정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전체 무게를 다는 방법이다. 실질적으로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전자는 올려 볼 수 없는 가격이고 그나마 후자가 채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세탁 방법이라 하겠다.
그런데 보통은 고급 호텔에서 개수를 따져 가격을 책정한다. 이 전에 묵었던 치앙마이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할 때는 이해를 했다. 거기는 묻기도 전에 그렇게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는 왜 개수를 따지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누가 봐도 뭉텅이로 세탁을 해 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도 안 해준다니 도리가 없었다. 구글맵과 포털사이트를 번갈아 뒤져 세탁소를 한 곳 찾았다. 그리고 표기된 채팅앱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세탁물 맡기려 하는데 가능할까요?"
"그럼요. 저희는 kg 당으로 금액을 받고 있습니다."
"좋네요. 12시 전에 맡기면 오늘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좀 어렵습니다. 내일까지는 가능합니다."
"아, 혹시 내일 언제쯤 가능할까요? 제가 내일 콜롬보를 떠나서요."
"저희가 8시 30분에 문을 여는데, 그때까지는 찾아가실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네, 그럼 12시 전까지 방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일반적인 소비자와 서비스 공급 업체의 대화였다. 나는 어제, 오늘의 대혼돈 속에서 그래도 세탁물은 처리했다고 안도하며 약속된 시간에 맞춰 세탁소를 찾았다. 그런데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는단다. 나는 다시 채팅을 시작했다.
"저 지금 세탁소 앞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오늘 영업 안 하시나요?"
"안타깝게도 오늘은 쉽니다."
도대체 이 대화가 이해가 되는가? 업체 직원이 썼던 부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Sadly", 누가 슬프다는 얘긴가. 30도가 넘는 더위에 4kg 가까운 세탁물을 들고 찾아왔더니 영업을 안 한다니. 찾아오라던 사람과 영업을 안 한다는 사람이 같은 사람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후에 나는 다시 4~5 곳의 세탁소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조건에 맞는 업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이 오후 8시까지 찾으러 오라 하여 찾아갔을 때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음은 그냥 애교로 넘기겠다.
여행을 시작하고 방문한 5번째 나라다. 앞선 4개의 나라에서 한 번도 겪지 않은 일이 만 하루 만에 2가지나 발생했다. 어제 새벽의 숙박대란, 오늘 오후의 세탁대란. 내일은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너무 설레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글감을 몰아주고자 하는 스리랑카 외교부의 친절이라면 이제 그만 사양해도 될 성싶다. 공교롭게 내일은 아누라다푸라로 이동한다. 교통대란의 전조일까. 오후 4시 30분 티켓을 예약했는데 오늘 오후에 연락이 오더니 6시까지 오란다. 마음대로다. 그렇게 6시에 출발하면 아누라다푸라의 숙소에는 또 자정 가까이 되어 도착한다. 어제의 악몽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번 숙소 주인장과는 이야기가 되어 그가 안심하라 했지만 나는 스리랑카를 떠날 때까지 그 무엇도 안심할 수 없을 것 같다.
여행 준비할 때 어디선가 본 듯하다. 스리랑카는 착한 인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했다. 도대체 인도가 어떻다는 건지 상상할 수 없다. 물론 나는 이제 스리랑카에 하루 있었을 뿐이고 모든 것을 일반화할 수 없다. 게다가 이곳은 '깍쟁이'가 많은 수도 한복판이니 지방으로 내려가면 순박한 이들을 만날지도 모른다. 아무튼 덕분에 인도 여행 연습은 충분히 하고 있다. 콜롬보 시가지를 이리저리 걷다가 저녁 무렵 갈레페이스 해변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너무 멀어 보이진 않지만 그 바다 건너에 다음 국가인 인도가 있다. 기다려라, 인도야. 스리랑카로 단련된 우리가 곧 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