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9(D+34)_태국/치앙마이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황금빛 향연에 지친 아이를 위해 오늘은 특별히 동굴사원을 준비했다. 요즘 각종 전염병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는 박쥐가 서식하고 있어서 그렇지 아들은 지난 어떤 사원보다도 만족해했다. 동굴 사원에는 박쥐 외에도 닭과 개 등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함께 뛰어놀고 있었는데 자연친화적이라는 말은 이런데 쓰라고 있는 듯했다. 그 후에 찾은 예술가 마을은 마침 월요일이라 휴무였고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조금은 심심하게 마무리했다.
아쉬움이 남은 우리는 저녁을 먹고 님만의 번화가를 두리번거렸다. 원님만이라는 복합 문화공간을 발견하고 입구로 들어서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 진입로 초입에 행위 예술을 하시는 예술가 한 분이 그럴듯한 분장을 하고 석상처럼 서 계셨다. 옆에 가서 사진이나 한 장 찍으라는 나의 말에 아들은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했는지 예술가의 선글라스 낀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미동도 없었고 아이가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조각상이라 철썩 같이 믿던 그가 움직였다. 아이는 엊그제 만난 개떼를 본 마냥 화들짝 뒤로 물러섰다. 눈 맞춤을 막아주던 선글라스가 없었다면 조금 일찍 알아차렸으려나.
살아가다 보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곤 한다. 그런데 이 순간의 반응은 일상에서와 여행 나왔을 때 많이 다르다. 우선 일상에서는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과의 눈 맞춤은 피하고 보는 것 같다.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를 줄이기 위함일까. 거기까지도 괜찮다. 별 문제될 건 없으니. 그런데 조금 거친 사내들은 시비가 붙기 시작한다. 한 동안 바라보다 서로 눈을 피하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감정싸움으로 이어진다. '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느냐',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라'라는 표현을 아주 맛깔나게 뱉어낸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 육두문자가 섞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아무튼 일상에서의 눈 맞춤은 일반적으로 아름답게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여행에서 만나는 이들과의 눈 맞춤은 다른 상황이 연출된다. 지금까지 경험을 종합해 보면 90% 이상 활짝 웃는다. 기분 좋을 때는 처음 보는 사람끼리 인사도 나누고 안부도 묻는다. 그러다 종종 짧은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데 이게 가능하다. 잘 못 알아들어도 그냥 그렇게 하고 지나간다. 지난 한 달 동안의 여행에서도 여러 번 경험한 일이다. 나는 많이 겪은 일이라 편하게 인사하고 지나치는데 그때마다 아들은 의아한 모양이다. 누구와 인사를 했느냐, 왜 혼자 웃느냐, 질문이 많다. 그에게 낯선 사람과 나누는 웃음의 교류는 매우 생소했을 것이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면밀히 검토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여행이라는 특수성이 개인에게 주는 여유 같은 것 아닐까.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웃고 떠들던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경계의 눈빛으로 돌변하곤 했다. 나와 함께 마주 보며 웃던 이들도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면 그러려나. 국가별 문화의 차이까지 조사할 방도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들은 한국에 돌아가서도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웃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낯선 이에게 먼저 웃음을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큰 마음의 여유에서 올 수 있는 행위인지 이해하는 여정이 되길 바란다. 그걸 깨닫는 순간 여행길에서건, 일상에서건 아들은 미소를 보일 수 있을 테고 그가 마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