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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D+35)_스리랑카/콜롬보

by 박대희

여행 전부터 가장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던 스리랑카부터 케냐까지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기간은 약 120일 정도.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지금껏 한 번도 닿아보지 못한 곳들의 연속이다. 게다가 다녀온 사람 모두 입을 모아 여행 난도가 높다고 외치는 곳 아닌가.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이동했다. 방콕에서 다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완전히 바뀐 탑승 대기자들의 면면에 괜히 움츠려 들었다.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낯선 모습의 엄습이 주는 긴장감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그래도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와 아들은 두 시간여의 비행시간을 거쳐 스리랑카에 내렸다. 그때 시각이 새벽 12시, 정확히 자정이었다.


우선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여행에 사용할 현금을 인출하는데 수수료가 없는 것 아닌가. 캄보디아와 태국에서 높은 인출 수수료에 질려있던 터였다. 늘 뾰족한 입출국 수속 직원을 제외한 공항 직원분들도 친절했다. 콜롬보까지 이동하는 택시 요금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높지 않았다. 120일의 여정이 술술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를 박살 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이상했지만 괜찮았다. 입구에서 잘 건 아니니까. 엘리베이터 없이 지하에서 3층을 올라가야 하는 것도 견딜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애써 올라간 곳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호텔에 직원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잠깐 비웠으리라 생각하고 기다리는데 30분이 다 되어가도록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로비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상의를 벗어 젖힌 문신한 젊은이 네댓이 담배를 피우며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상의를 벗어 젖히고 문신을 했다고 모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직원 없는 호텔에서 그러고 있으니 불현듯 캄보디아 범죄조직이 떠오른 건 약해진 여행자의 그럴듯한 상상이라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결국 나는 아들을 더 이상 그곳에 노출시킬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걸어서 두드릴 수 있는 호텔을 찾았지만 빈 방은 없었다. 부리나케 예약 앱을 통해 숙소 한 곳을 더 예약했다. 거리가 조금 있어 택시를 타고 이동했는데 그곳 역시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우리가 세 번째로 체크인을 시도한 호텔이었다. 당황하기는 나나 택시 기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때부터 택시 기사 아저씨는 본인이 아는 곳, 우리가 찾는 곳을 네 곳이나 더 들렀다. 물론 그때마다 택시 앱의 행선지를 변경해 가며 추가 요금을 모두 적립했지만 단순히 돈 때문에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그래도 스리랑카에서 만난 첫 번째 좋은 인연이었다. 함께 문전박대도 당해주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분위기도 풀어주려 애썼다.


기사 아저씨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가 도착한 그날부터 스리랑카에서 크리켓 월드컵이 열린다 했다. 그 탓에 인도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지금 호텔에 방이 없는 거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크리켓을 하는 것도 좋고 원정 응원을 오는 것도 모두 좋은데 그게 왜 하필 오늘이냔 말이다. 여행도 힘들어지는데 재수까지 없으면 아주 곤란하다. 그래도 새벽 4시경, 7번째 호텔 문을 두드렸을 때 얼리 체크인이 가능하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기사 아저씨께는 택시비에 팁을 조금 얹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시설은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지친 몸을 뉘일 곳이 필요했다.


새벽녘에 침대에 누웠지만 깊이 자지 못했다. 이틀후면 떠나야 하는 아누라다푸라에 대한 버스표 예약, 어제 문제가 됐던 호텔들의 환불 요청,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까지. 그나마 아들이라도 내 옆에서 잘 자고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아침에 눈을 떠 커튼을 여니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시설이야 어쨌든 모두 선호하는 오션뷰 객실이다. 밝음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치유한다. 어젯밤, 끓어오르던 분노와 어찌할지 몰라 허둥대던 난감함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좋은 사람들을 뒤에 몰아 만나기 위해 이상한 상황을 먼저 겪었다고 치자. 어느 시점에 어떻게 다시 부정적 기운들이 솟아오를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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