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

20260208(D+33)_태국/치앙마이

by 박대희

아들의 원대로 아침을 느긋하게 보낸 우리는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느적느적 호텔 밖을 나섰다. 마침 선데이 마켓이 열린다기에 구도심으로 향했는데 우리가 못 찾은 건지 아니면 규모가 작았던 건지 알 수 없지만 거리에 선 장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또 구도심을 가득 메운 사원 몇 곳을 들여다봐야 했다. 그래도 나에게는 치앙마이의 사원이 방콕의 사원들보다 훨씬 좋았다. 우선 방문객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고 덕분에 조금은 한적했다. 양식도 어딘지 달랐지만 전문가가 아니니 상세히 설명하기 어렵다. 조금 더 서민적이었다고 표현하면 맞을까. 황금을 쓰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장료가 현저히 낮았다. 몇몇은 무료로 개방해 놓았으니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고마울 뿐이다.


오늘 사원 투어의 마지막은 구도심 서쪽 끝에 자리 잡은 왓 프라싱이었다. 왓 쩨디 루앙과 함께 구도심의 대표적인 사원 중 하나다. 이 사원이 특이했던 점은 본당을 마주 보고 우측으로 나무들이 질서 있게 심어져 있고 나무마다 좋은 글귀가 걸려있었다는 것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부처님의 말씀 아닐까. 시간도 여유 있고 햇빛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도 시원해 천천히 하나씩 모두 읽어봤다. 그중 나의 마음을 가장 움직였던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Living without hope is like burying oneself'


'희망이 없는 삶은 스스로를 묻어 버리는 것과 같다.' 멋진 말 아닌가. 문장만으로는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모든 명언이, 또 모든 옛날이야기가 그렇듯 그 단순한 명제를 현실에서 따르기가 어렵다.


희망을 해석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될 미래를 꿈꾸는 것' 정도로 정의하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희망을 좋아하고 늘 몇 가지의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다행히 아직 나를 땅에 묻어버리진 않은 듯하다. 다만 때때로 그렇게 사는 것이 너무 버거울 때가 있다. 희망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반면에 계속 나를 불안하게 하고 쫓기게 하는 원흉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희망고문이라 부른다.


이 여행을 예로 들어볼까. 나는 아들이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크든 작든 어떤 깨달음을 얻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지만 가끔 보면 그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시원한 카페에서 마시는 망고 스무디를 좋아하고 망고 스무디와 함께하는 핸드폰 게임을 더 좋아한다. 오늘도 네가 좋아하는 글귀도 하나 찾아오라 했건만 저건 그저 말 뿐이라며 나보다 더 노회한 어른처럼 이야기했다. 그럴 때면 이 여행의 끝에 무엇이 남을지 대단한 걱정이 몰려온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또 희망을 품고 달릴 수밖에. 이 얼마나 잔인한 운명인가. 끝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하다니.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한 후배가 편지를 써준 적이 있다. 그중에 늘 마음에 담고 그리 하려고 애쓰는 내용이 있다. 사람은 늘 무언가 기대하기 때문에 힘들어지며 그래서 결과보다는 어떤 것을 행하게 된 의미에 초점을 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일주를 포함한 내 향후 계획을 알고 있던 후배가 내가 하고 있는 수많은 걱정들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해준 말일 게다. 노력은 해 보겠지만 후배의 조언을 따른 다는 것이 도사가 아닌 다음에야 그리 쉽겠는가. 머리는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초심만을 기억하려 하지만 마음은 항상 '아이가 뭐라도 얻어 가야 할 텐데', '가기 전이랑 똑같으면 난 가족들을 무슨 낯으로 보나' 등등 걱정이 한가득이다.


그래서 여행 중에 가끔 아이에게 엄해지기도 한다. 아들도 지치고 힘들 텐데 그러고 나면 괜히 미안하고 마음속은 복잡해진다. 그 나이에 아빠 따라 무거운 짐 메고 이곳저곳 헤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않은가. 그저 건강하게만 돌아가자라고 시작한 여행이지만 바라는 게 있으니 욕심이 생긴다. 희망이란 좋은 단어가 욕심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어떤 희망도 없이 그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여행이 되기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계속 희망하되, 또 희망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이 얼토당토않은 마지막 문장이 지금의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묻어 버리지 않는 삶은 나에게는 무척 어려운 도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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