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7(D+32)_태국/치앙마이
이 여행의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 시점이 벌써 반년 가까이 지났다. 당시 여행 초반을 그려봤을 때 스리랑카로 넘어가기 전, 그러니까 여행 한 달이 경과하는 시점에 한 번 정도는 힘든 시점이 오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었다. 우선 아이는 물론 이거니와 나 역시 한 달 넘는 여행 경험이 거의 없었다. 체력 분배가 수월치 않다는 점도 경험 없음에 기인할 것이다. 내가 어제까지 골골거리더니 오늘은 아들이 빌빌거린다. 그리고 스리랑카를 시작으로 인도, 네팔, 아프리카를 지나는 여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생각했었다. 게다가 요 며칠 니파 바이러스니 뭐니 해서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은 아들을 들쑤시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운이 좋았는지 휴식이 필요한 시점에 대한 나의 예측은 그럭저럭 잘 맞아떨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준비한 해결책이 잘 먹히느냐였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계획 당시 나는 조금 무리해서 비싼 호텔을 잡았었다. 그렇다고 대단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지내온 숙소들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아들은 수코타이부터 달려온 6시간의 버스에 지쳤는지 맥을 못 추다가 널찍한 로비를 보자마자 생기를 찾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묵은 숙소의 로비는 로비라고 말하기 조금 어색한 공간들이었기 때문이다. 넓은 공간을 채우는 적당한 조형물, 좋은 향기, 서비스 교육을 받은 지원들의 친절까지 한 달 동안 누리지 못한 호사가 선물처럼 다가왔다. 게다가 무려 엘리베이터라니. 그 무거운 짐을 이고 낑낑거리며 계단을 오르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들은 정갈하게 정리된 객실 침대에 눕자마자 오늘은 더 이상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오늘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3박을 하는 동안 쉬었으면 한다고 일종의 파업을 선언한 셈이다.
준비된 일정을 위해 사흘 정도 휴식을 갖는 건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치앙마이의 볼거리도 대부분이 사원 같으니 지난 일주일 내내 허우적거리던 사원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쉬우면 나만 나가서 보고 와도 될 일이다. 오랜만에 시티 라이프를 즐기게 해 줄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사흘의 여운이 완전히 가시는데 얼마나 걸리느냐이다. 지금 자리를 잡은 숙소가 이렇게 까지 좋은 이유는 이전 숙소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소 자체의 품질보다 훨씬 더 월등하게 느낄 확률이 높다. 만족감의 상대성이다. 반대로 이런 숙소에 사흘 머물다가 다시 원래 묵던 숙소의 수준으로 돌아가면 그 박탈감은 어떻게 어루만져야 할지 막막하다.
박탈감의 연착륙을 위해 약 2주 후 인도의 첫 숙소를 치앙마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준비해 놓긴 했다. 그것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아들을 위한 최대한의 배려였다. 그 이후부터는 다시 아들이 견뎌줘야 한다. 지나온 한 달 보다 더 긴 약 석 달의 기간을 험지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지난 한 달의 경험이 도움이 되리라. 아무것도 모르고 부딪힌 한 달 보다야 요령이 생기지 않았을까. 힘을 아끼는 법, 잘 쉬는 법 등 아들도 나도 계속되는 경험을 통해 그렇게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석 달을 잘 견뎌내고 나면 그래도 지금 보다는 조금 편안한 여행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치앙마이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지나온 아유타야와 수코타이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게 중에는 엄마, 아빠를 따라온 어린 친구들도 종종 보였는데 걱정 없이 웃고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내 옆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들이 상대적으로 더 안쓰러워 보였다. 지금 웃지 못한 만큼 1년 후 한국에 돌아갔을 때 더 크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장 느끼지 못하는 만족감을 모으고 모았다가 세상 어디보다 편한 우리 집에 짐을 풀 때 함께 풀어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담할 수 없지만 아빠로서 지금 기대하고 소망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