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조심

20260206(D+31)_태국/수코타이

by 박대희

아들이 6살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동네 앞 공원에 세 식구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우리 부부는 걸었고 아들은 씽씽이를 타고 쫓아왔다. 그런데 뒷 쪽에서 목줄이 풀린 강아지가 뛰어오기 시작했고 우리 아이는 그 강아지가 무서워 씽씽이를 타고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다가 결국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어린 시절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내 기억에 아들에게 가장 큰 상처가 생긴 건 그날이었던 것 같다. 목줄을 잡지 못한 사람들은 미안하다며 매우 난처해했고 우리는 화가 났지만 크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 후 무릎과 팔뒤꿈치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아이의 머릿속에 개에 대한 두려움은 지워지지 않았던 것 같다.


태국의 수코타이는, 더 정확히 얘기하면 수코타이 역사공원 인근은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수코타이 역사공원은 관광객들을 위해 잘 정돈되어 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좁은 길이 이리저리 퍼져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우리가 원하는 곳에 내려주지 않는 바람에 우리는 2km 정도를 걸어야 했다. 무더위에 흐르는 땀이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수코타이의 동네 길을 걷게 된 건 그럭저럭 괜찮은 경험이었다.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했고 그들은 우리에게 커피를 팔고 싶어 했지만 우리가 거절해도 섭섭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게 좋았다. 개 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도를 따라 걷고 있던 중, 한 마리의 개가 으르렁 거리며 달려들었다. 지난 한 달간 지나가던 개들이야 수도 없이 봤으니 그냥 성질 더러운 녀석이겠거니 하고 갈 길 가는데 코너를 돌아서자 열 마리 가까운 개 떼가 다 함께 짖으며 달려드는 것 아닌가. 이 친구들은 강아지가 아니고 그야말로 개였다. 정말 큰 개 말이다. 들개인지 기르는 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하는 행태로 봐서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 길이 아니면 2km 남짓을 더 돌아야 하니 나는 뚫고 가려했다. 과거 이스터섬에서 홀로 라노카우 분화구에 오를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등산로 초입부터 늑대만 한 5마리의 개가 쫓아오는데 그 공포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결국엔 녀석들과 친구가 되었고 산 정상에서 먹을 것도 나눠주며 개와 인간의 우정을 쌓았었다. 나는 이번에도 그리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아들은 나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내가 계속 앞으로 걷는데 옆이 허전하여 돌아보니 아들은 이미 20m 이상 뒤로 달아난 뒤였다. 여행 와서 광견병 걸릴 일 있냐며 빨리 돌아오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조심하는 것 까지야 좋다 치자. 그렇다고 자기 혼자 아빠를 내버려 두고 멀찌감치 내빼다니. 어젯밤 아픈 아빠를 돌보겠다며 머리에 얹어주던 물수건은 하룻밤 허상이었단 말인가. 나는 괘씸한 마음 반, 귀여운 마음 반에 돌아서서 아들에게 갔다. 요 며칠 걷는 걸 그리 싫어하던 아이는 2km 정도는 얼마든지 더 걸을 수 있다며 개를 피해 돌아가는 길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나는 귀찮았지만 어린 아들을 혼자 두고 갈 수 없으니 보조를 맞춰 걸었다.


아들은 그 후에도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며 경계를 멈추지 않았다. 때로는 자전거나 새소리 마저 개가 쫓아온다고 느꼈는지 움찔대는 모습이었다. 조금 컸다고 용감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개 몇 마리에 본색을 여과 없이 드러낸 하루였다. 나는 덕분에 오늘의 글감을 얻었고 두어 시간은 아이를 놀리며 즐거워할 수 있었다. 그래도 돌아보면 아이의 판단이 맞았을지 모르겠다. 세상 모든 개가 이스터섬에서 만난 개는 아닐 테고 달려들던 10마리 중 한두 마리라도 고약한 녀석이 있어 우리를 물어뜯었다면 우리만 손해일테니까. 더위에 조금 더 걸은 것이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안전하게 객실에 돌아와 글을 쓰고 있음에 감사한다. 여기저기 방랑하다 보면 이것저것 조심할 것투성이고 그중에는 물론 개도 있다. 앞으로도 개 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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