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논쟁

20260214(D+39)_스리랑카/담불라

by 박대희

우리는 이른 아침 아누라다푸라를 떠나 다음 행선지인 담불라로 향했다. 날은 아침부터 궂었다. 소나기가 쏟아붓다가 멈추다를 반복했다. 해가 없어서 뜨거움은 덜 했지만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 덕에 불쾌지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아마도 이 축축한 날씨가 종교 논쟁의 작은 시작점 아니었나 생각한다. 담불라에 도착한 후 비를 피해 숙소에 잠시 머물렀다. 비가 멈추고 나서야 우리는 담불라 석굴 사원으로 향했다. 시내버스를 한참 기다렸지만 마음처럼 나타나지 않았고 그 틈을 타 툭툭을 태우려는 기사 아저씨의 호객 행위가 싫어 그냥 걷기로 했다. 이 역시도 종교 논쟁의 배경으로 추정된다.


2km 남짓 걷자 거대한 황금 좌불상이 보였다. 명목상으로는 황금사원과 동굴사원을 나누어 안내하고 있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황금사원은 동굴사원에 포함된 느낌이었다. 황금 좌불상 앞에 서자 좌측으로 동굴 사원으로 향하는 길이 안내되어 있었다. 10분가량의 오르막이었는데 이미 2km를 걸어온 우리에게 내키는 길은 아니었다. 오르막 길의 끝에 올라서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매표소는 올라온 길의 좌측 내리막길로 다시 600m 정도 이동하라고 되어 있는 것 아닌가. 이미 조금씩 짜증이 올라온 아들에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표를 사 오겠다 했지만 그는 툴툴대며 뒤를 따랐다. 다행히 왔던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동굴 사원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이 매표소부터 연결되어 있었다.


매표소에서 동굴 사원으로 가는 길은 황금 좌불상부터 올랐던 길보다 더 가파르고 길었다. 15분 정도를 끊임없이 오르는데 날이 좋았다면 별 문제 아니었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입고 있는 모든 옷은 몸에 휘감겨 철썩 달라붙었다. 누가 조금이라도 건들면 금세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고 나와 아들은 말없이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꾹꾹 참아온 아들의 인내는 동굴 사원 앞에서 신발을 벗으라는 말과 함께 폭발했다. 아들은 땀 때문에 잘 벗겨지지도 않는 양말을 벗으며 분노했다. 도대체 이런 곳에 왜 절을 만들었으며 우리는 언제까지 절만 다닐 거냐며.


석굴 사원의 대단한 규모와 정교한 벽화도 그를 달래지 못했다. 그는 후덥지근한 석굴 안의 공기에 이곳이 찜질방과 다를 바 있냐며 분노 수치를 끌어올렸고 결국 참다못한 아빠의 분노까지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나는 적당히 하라며 제재를 가했고 그는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고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내내 우리는 서먹했다. 모든 석굴을 관람하고 돌아 나와 신발을 찾은 후에 발을 말리고 양말을 신기 위해 넓은 바위 위에 앉았다. 그리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며칠 째 계속 사원만 보니 지루한 것 알아. 하지만 우리가 지나고 있는 나라들이 모두 불교 국가인데 아빠가 다른 것을 보여 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 너도 이해해줘야 하는 것 아냐?"

"그래도 절만 다니는 건 너무 심하잖아."

"그럼 네가 숙소에 들어가서 게임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안을 찾아봐. 최대한 반영해 줄 테니"


아들은 잠시 구글맵을 뒤지는 것 같았지만 별 수 없었는지 꼬랑지를 내렸다. 그가 지도에서 보는 것들도 결국은 모두 사원들이었을 테니 더 이상 대항할 뾰족한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생과의 대화가 으레 그렇듯 갑자기 방향은 이상한 쪽으로 흘렀다.


"나는 사람들이 도대체 이런 걸 왜 믿는지 모르겠어.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믿고, 이렇게 높은 곳에 힘들게 석굴을 만들고 또 그걸 찾아오고. 아무것도 이해가 안 가."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지. 아빠는 너에게 어떤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하지만 누군가 무언가를 믿는다는 건 그들에겐 매우 간절한 일이니 그것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되는 거야."

"쓸데없는 기도할 시간에 어떤 일이 되게 하려면 다른 노력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열이 받은 아이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기 시작했다.


"네가 자의식이 높은 건 나쁘지 않지만, 사람들이 종교를 찾을 때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야. 아직 네가 어려서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을 겪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큰 시련을 주기도 하지."

"내 말은 그때 누군가에게 빌고 있을게 아니라, 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야."


사원은 물론, 성당과 교회 거르지 않고 들러 기도를 하는 아빠의 입장에서 아들의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크게 잘못된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도 신의 존재를 보지 못했고 신을 믿는 이들도 각자의 마음속에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니 조금 더 실체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아들의 이야기에 따박따박 반박할 수 없었다. 종교가 있는 아빠라면 조금 다른 관점에서 아들을 이해시킬 수 있었을까? 아이와의 대화는 늘 쉽지 않지만 오늘은 유독 그랬다. 이야기는 흐지부지 끝났다.


아들은 숙소로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를 한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해맑은 아이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아들에게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인도를 끝으로 불교 문화권에서 벗어난다. 아프리카는 대자연을 느끼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테고 유럽으로 넘어가면 성당의 바다에 빠질지 모르겠다. 그때 즈음 아들이 지금 보다는 더 넓은 마음으로 타인의 삶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종교를 갖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를 가진 누군가를 그대로 인정해 주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본인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다른 노력을 하더라도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도 인정하는 모습, 그게 내가 바라는 아들의 모습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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