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D+56)_인도/마이소르
드디어 원하던 시간에, 원하던 장소에서 버스를 탔다. 40대 중반으로 흐르는 나이에 스스로 버스를 탔다고 자랑하기 겸연쩍지만 어젯밤 내가 느낀 성취감은 인도에 발을 붙인 후 최고였다.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고 이제 인도에서 못할 것은 없다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타오르던 긍정적 마인드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마이소르를 향하는 버스는 코치가 위치한 인도 서해안을 벗어나자마자 산길로 접어든 듯 보였다. 이동속도가 느려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시로 덜컹거리며 요동쳤다.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도 좁은 나의 칸 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혔고 잠은 언감생심이었다.
해가 뜰 무렵 버스는 마이소르 인근 국립공원 사잇길을 지났다. 지도를 보니 위아래로 호랑이 보호 구역이라 혹시나 호랑이를 볼까 싶어 창밖을 내다봤다. 박진감 넘치는 글을 위해서는 한 마리 정도 보았으면 좋았겠지만 호랑이는커녕 그 흔한 소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버스에서 내린 시간은 오전 10시 즈음이었는데 늘 그렇듯 릭샤 기사들이 달라붙어 호객행위를 시작했다. 이제 익숙해져 버린 이 광경에 머릿속에 계산해 두었던 가격을 부르는 기사의 손을 들어주고 어서 가자 했다. 그런데 이 기사가 엉뚱한 곳에 내리라기에 다시 한번 목적지를 이야기했더니 거긴 못 간다며 나를 태웠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아닌가. 그러더니 50루피를 요구했다. 내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무슨 50루피냐 했더니 그럼 30루피를 달란다. 정말 질리는 곳이다.
버스 안의 고난과 버스 밖의 혼란을 모두 이겨내고 도착한 숙소는 편안했다. 피곤한 몸을 뉘이니 바로 잠이 들었고 깨어날 때 즈음에는 침대 밖으로 발을 딛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럼에도 여행자의 의무감은 나를 또 숙소 밖으로 끌어냈다. 오늘 둘러볼 곳은 일부러 멀리 잡았다. 그냥 택시에 타고 앉아 조금 쉬고 싶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할 것 같다. 남이 운전해 주는 차에 앉아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맞으며 별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자면 너무 짧은 거리는 아쉬웠고 택시비가 조금 나오더라도 멀찌감치 떨어진 곳이 좋았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브린다바나 가든이라는 곳이었다.
가든 자체는 대단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딱 입장료만큼만 보여줬다. 꽃을 새로 심으려는 것인지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는 데다가 잔디 관리 상태도 엉망이었다. 댐 인근에 만든 정원이라 물 비린내도 좋지 않았고 망가진 분수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벤치에라도 좀 앉아서 쉴라치면 온통 새똥 천지라 엉덩이 부치기가 만만치 않았다. 겨우 앉은 곳엔 모기떼가 극성이었고 결국 우리는 볼 것도 없는 정원 이곳저곳을 해가 질 때까지 이리저리 걸어 다녀야 했다. 해가 지길 기다렸던 이유는 이곳의 분수쇼가 유명하다는 사전 정보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해가 진 후 펼쳐진 분수쇼는 괜찮았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다양한 모양의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장면이 장관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 좋았던 것들은 움푹 파인 잔디나 새똥이 내려앉은 벤치 같은 것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첸나이를 떠나던 밤, 야간 버스가 나타나지 않던 그 밤의 트라우마는 많이 치료됐다. 어젯밤의 버스 탑승이 치료제였던 것 같다. 그 밤을 제외하면 인도는 늘 낮보다 밤이 아름다웠다. 지저분한 것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리를 장식하던 수많은 쓰레기, 밟을까 두려웠던 각종 분뇨들, 먼지와 매연 등 굳이 볼 필요 없는 것들이 어둠 속에 감춰졌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내 주변 어딘가에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게다가 기온도 떨어졌다. 찌는 듯한 인도의 낮은 여행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지만 그 역시 밤이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가 무사히 끝났다는 데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었다. 또 하루의 험난한 여정을 끝내고 나니 보기 싫었던 것들도 그저 아름다워 보였던 것 아닐까. 오늘도 인도의 밤은 아름다웠다. 이유는 화려한 분수쇼나 휘영청 뜬 보름달 때문이 아니라 아들과 내가 이곳에서 또 하루를 마쳤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