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기

20260302(D+55)_인도/코치

by 박대희

코치에서의 사흘은 인도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코치를 떠난다. 이동 방법은 다시 야간 버스. 그동안 100% 성공률을 자랑했던 기차라는 선택지를 배제하고 다시 야간 버스라는 패를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코치에서 다음 목적지인 마이소르로 가는 기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몇 번 갈아타면 억지로 갈 것 같긴 했지만 야간에 이동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루트였다. 버스는 기차에 비해 탑승 확률이 너무 떨어진다. 두 번의 버스는 한 번도 나와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우스운 얘기 같지만 탑승 확률이 떨어진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첸나이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던 야간 버스의 기억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나를 억누르고 있다.


그래도 여행을 많이 다녔다. 세 번의 실패는 스스로에게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우습지만 나는 버스 타기 예행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실제 타볼 수는 없으니 픽업 포인트에 미리 나가보는 것이 내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번 픽업 포인트는 우리가 탑승하는 야간 버스를 운영하는 여행사의 분점 앞이었다.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그곳에 가서 여행사 직원들과 이야기를 해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픽업 포인트로 가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늘 그렇듯 예약 앱을 활용해 릭샤를 호출했다. 어렵지 않게 릭샤에 탑승한 후 내친김에 다음 목적지인 쇼핑몰까지 추가로 입력해 넣었다. 두 번의 릭샤 호출보다는 경유해서 가는 편이 비용적으로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릭샤 드라이버는 이상했다. 그는 예약 앱에서 제공하는 지도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나 이상한 길로 들어섰고 우리가 내려야 할 곳과 동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내리라 했다. 나는 '이곳은 내 목적지가 아니다. 내가 당신이 보고 있는 내비게이션에 입력해 줄 테니 그곳으로 가달라'고 다시 주문했다.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다시 엉뚱한 곳에서 떨구려 했다. 나는 화가 나서 '내리긴 하는데 당신에게 비용은 지불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얼른 다시 타라며 내가 왜 지도를 못 보냐는 듯 구석구석을 헤치며 주문한 목적지로 향하는 것 아닌가. 추정컨대 릭샤 드라이버는 그곳까지 가는 몇 번의 U턴과 골목길 운행이 귀찮았던 모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비용을 지불하는 시점에 2차 충돌이 일어났다. 그는 2차 목적지가 입력된 것도 모르는 듯 보였고 나는 잘됐다 싶어 그럼 1차 목적지까지 도착한 비용을 지불하려 했다. 어차피 그와 계속 한 차에 타고 있는 것은 고욕이었다. 그런데 드라이버는 예약 앱을 들이밀며 2차 목적지까지의 비용을 지불하라며 생떼를 쓰는 것 아닌가. 그럴 때는 또 예약 앱을 잘도 사용한다. 나는 그가 들이민 예약 앱을 그대로 보여주며 당신이 그 비용을 받을 거면 나를 쇼핑몰까지 데려다 달라 얘기했다. 하지만 그는 그건 모르겠고 비용은 찍힌 대로 내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내가 쥐고 있는 지폐를 빼앗으려 내 팔을 잡아끌었고 여기서 나의 분노는 폭발했다. 결국 드라이버와의 실랑이를 보다 못한 한 사람이 등장했다. 야간 버스에 대해 물어야 할 그 여행사 직원이었다. 나는 예약 앱에 찍힌 나의 최종 목적지와 최종 금액을 보여주며 설명했고 여행사 직원은 드라이버에게 설명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드라이버는 마이동풍이었고 결국은 여행사 직원도 포기했는지 나에게 차액을 주고 보내버리라 했다. 나도 적절한 시기에 출구전략이 필요했던지라 계속 드라이버와 싸우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무서웠던 이는 중재에 나섰던 여행사 직원이었다. 나는 그에게 택시기사에게 쥐어줘야 할 잔돈을 바꿔줄 것을 요청했고 그는 친절하게 내 지폐를 받아 일부는 드라이버에게 주어 보내고 일부는 나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드라이버에게 준 돈과 나에게 돌려준 돈의 합은 내가 그에게 줬던 지폐의 크기와 같지 않았다. 즉, 그 역시 중간에서 나의 돈 일부를 취한 것이다. 중재 수수료라고 생각한 것일까. 나는 또다시 분노했지만 여행사는 나의 용건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거기서 다시 싸우는 건 그야말로 소탐대실이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참은 것과는 무관하게 시원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여행사의 버스임에도 불구하고 픽업 포인트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표에 쓰인 곳이 아닌 엉뚱한 곳을 안내하더니 잠시 후에는 다시 이곳으로 오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버스는 1시간 이상 늦을지도 모른다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믿을 수 없었다.


잠시 후면 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버스가 설지, 서지 않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향한다. 낮에 만난 직원은 밤에도 직원이 근무하고 있을 테니 걱정 말라했지만 그 말은 또 어찌 믿겠는가. 만약 내가 픽업 포인트에 갔는데 직원은커녕 여행사 문도 닫혀있다면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나에게 또 은인이 나타날까. 아니면 이번에는 제대로 곤경에 처할 것인가. 버스 한 번 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싶다. 어제 글을 쓰며 '행복의 조건' 타령을 했던 내가 우습다. 행복은 무슨, 작은 평화에 도취되어 사흘 동안 마음을 놓고 경계심을 풀었던 나의 안일함을 반성한다. 부디 내일 쓰일 글에 버스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곳은 인도다. 무질서와의 투쟁은 이곳을 떠날 때까지 멈추지 않을 듯하다.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