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20260301(D+54)_인도/코치

by 박대희

인도의 첫 닷새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랬을까. 이후의 나흘은 그럭저럭 무난하게 지나가고 있다. 폭풍전야 같아 늘 불안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그저 편안한 순간을 즐기려 노력 중이다. 특히 오늘은 거의 완벽한 하루였다. 우선 이동 없이 코치에 머무는 날이었다. 10시 넘어 느긋하게 일어나서 천천히 준비를 마치고 숙소 근처에 있는 몰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후에 순차적으로 민속 박물관과 유대인 마을을 돌았는데 거리는 깨끗했고 적당한 볼거리가 흥미로운 시간들이었다. 돌아다니다 지치면 틈틈이 카페에 앉아 시원한 음료와 함께 휴식을 취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마지막은 인도양의 일몰을 보러 코치 서쪽 해안의 작은 마을로 향했다.


사실 코치의 일몰은 어제도 봤다. 어제는 중국식 어망으로 유명한 코치 포트 인근이었는데 인도 사람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까지 몰려 시끌벅적했다. 인도 여행을 시작하고 관광객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곳은 처음이라 그건 그거대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오늘까지 연달아 사람 많은 곳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체리야카다부 해변이다.(이렇게 읽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현지인들 외에 관광객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릭샤 아저씨는 나와 아들을 해변가 작은 마을 초입에 내려줬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야자수가 양 옆으로 서 있는 좁은 골목이었다. 대단히 깨끗하지도 않았지만 너무 지저분하지도 않은 평범한 어촌 마을이었다.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집들은 겉으로 보아도 허름했고 골목을 뛰노는 아이들의 옷차림도 풍족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우리가 지나가자 서로 인사를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내가 함께 사진 찍자했을 때는 혹시나 본인이 프레임 밖으로 나갈까 걱정이 되었는지 좁은 화각 안으로 머리를 들이미느라 안간힘을 썼다. 그들은 BTS를 아냐는 질문을 던졌고 우리가 안다고 하자 '오우'라는 감탄사와 함께 멀리 사라졌다.


5분 정도 걷자 해변에 닿았다. 우리 보다 먼저 와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가 일몰을 기다리고 있을 때 해변을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특히 태양이 수평선에 가까워지자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이 등장했다. 아이들은 바다에 떠밀려 온 플라스틱 쪼가리를 소중한 장난감처럼 다루며 물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물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도록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들의 아버지들은 우리들의 아버지들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얼굴에 떠오른 미소만큼은 모든 이들이 같았다.


여행을 계획할 때 부탄에 꼭 가보고 싶었다.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나라지만 늘 행복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한다는 나라였다. 비자와 동선 등 여러 가지 문제로 포기했는데 부탄 사람들을 봤다면 오늘 이곳 인도 코치에서 본 이들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다룬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었고 그중 몇 권을 읽어 보았지만 기억 속에 남는 건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다. 달라이라마는 사람의 마음은 너무 기쁘거나 너무 슬픈 일이 생겨도 결국은 평소에 형성된 행복 지수로 돌아가기 때문에 평소의 행복 지수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소의 행복 지수를 높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회사 다닐 때는 회사 일로 스트레스였고 여행을 떠나와서는 수시로 몰아치는 변수로 괴롭다. 그래서였을까. 아무것도 아닌 플라스틱에 열광하던 아이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평온한 시간을 보내던 엄마와 아빠 모두 내가 이르지 못한 경지에 이른 듯 보였다.


인도에 들어오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가 무엇을 얻어 갈 수 있을지, 아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지 생각이 많아진다. 그저 고생만 하다가 떠나가는 건 아닌지, 심지어 처음 며칠 동안은 아들한테 욕설이나 가르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아직은 자신 없지만 인도 여행의 끝 무렵에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 아들과 이야기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곳에서 그들은 어떻게 웃고 행복해하며 살 수 있는지. 그 해답에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다면 한국에서의 나와 아들의 삶은 떠나오기 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질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는 험한 말만 늘어서 나갈 확률이 더 높아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