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8(D+53)_인도/코치
2026년 새해가 막 밝아올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한참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던 시기였는데 아들이 핸드폰을 들고 쫓아오더니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보여줬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바바 반가라는 예언가가 2026년에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911 테러와 코로나를 맞춰 나름대로 명성을 쌓은 인물로 보였다. 하지만 안 그래도 바쁜 하루하루였고 누군가의 예언 같은 것에 크게 관심 갖는 성격도 아닌지라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들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며 툴툴거렸지만 그런 이야기를 너무 성심성의껏 듣는 것도 나에게는 이상해 보였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코치로 이동했다.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을 달고 매우 저속으로 달리는 이 열차는 200km 거리를 가는데 4시간 넘게 필요했다. 나름대로 슬리핑 기차였으나 우리의 거대한 짐을 쌓아놓고 다리를 뻗기에는 공간이 충분치 않았고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를 만들어 보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던 차였다. 친구에게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중동은 안 가냐는 질문이었다. 대답도 하기 전에 기사 하나가 따라붙었다. 미국이 이란 공격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하나의 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어제는 아들이 우리나라 외교부의 경고 문서 하나를 들고 쫓아왔다. 뉴델리 인근에 파키스탄 무장 단체가 테러를 예고했으니 우리 국민들은 잘 피해 다니라는 이야기였다. 잘 피하는 방법으로 외교부는 종교 행사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 것이며, 유명한 관광지에도 접근을 피하라고 일러줬다. 아들이 니파 바이러스 타령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인도에 가시 싫어 그러려니 생각했었다. 내 판단에 니파는 위험한 상태가 아니었고 역시나 몇 번의 기사가 올라온 뒤에는 잠잠해졌다. 하지만 외교부가 직접 나서 테러 타령을 하니 나라고 무섭지 않겠는가. 아직 델리까지 3주가량의 시간이 남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델리 일정을 줄이고 최대한 빨리 떠날 생각이다.
바바 반가의 예언이 맞아떨어질지 알 수 없지만 국제 정세가 정신없는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여전히 전쟁 중이고 중동은 늘 시끄럽다. 얼마 전 베네수엘라를 공격한 미국이 이란까지 공격했으니 지구 이곳저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나는 국제 정세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저 뉴스에서 듣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정도다. 그마저도 하루하루 헤쳐나가기 바쁜 요즘은 잘 접하지 못하는 처지다. 하지만 이렇게 큰 뉴스들은 내가 듣지 않으려고 해도 주변에서 알려온다. 나도 내가 걱정이지만 그들도 나만큼 나를 걱정해 주는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
몇 번 밝힌 바 있지만 나는 겁이 많다. 용기가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피해 가는 길을 택한다. 앞서 말한 대로 델리의 일정은 줄일 것이고 다행히 중동은 안전지대로 꼽히는 요르단 정도를 거친다. 요르단마저도 문제가 있어 보이면 일정을 바꿔버리면 그만이다. 아들과 함께 위험지대로 치고 들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저 국제 정세에 크게 관심도 없고 큰 영향을 줄 수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의 여행 경로가 거대한 힘에 의해 뒤바뀌는 것은 속상하다. 요즘 같이 복잡해진 세상 속에 선과 악을 선명하게 가르는 것은 어렵지만 나나 내 아들, 그리고 내가 여행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힘 겨루기에 지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대학 시절 존 레넌의 imagine이라는 노래를 듣고 가사 속의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국경도 없고 종교도 없고, 소유물도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오늘을 위해 살고,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는 세상말이다. 그가 역시 가사에서 얘기한 것처럼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몽상가라 부른다.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사실도 잘 안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가 전쟁이나 테러 같은 소식이 들리면 imagine이라는 노래가 떠오르곤 한다. 겁쟁이 여행자도 아들 손 붙잡고 밟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어디 가면 위험하다더라'라는 이야기 보다 '어디 가면 사람들이 그렇게 좋다더라', '경치도 좋고, 음식도 맛있다더라'라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굳이 대단한 용기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도 편하게 세상을 유랑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만약 우리 세대에 그렇게 되기 어렵다면 지금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아들 세대에는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