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홀리

20260304(D+57)_인도/마이소르

by 박대희

데바라자 마켓을 지나 성요셉 성당으로 걷고 있던 중의 일이다.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골목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있는데 앞에 한 무리가 춤을 추며 흥겨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온몸에 물감인지 가루인지 모를 보랏빛 무언가를 바르고 있었고 주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즐거운 듯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 무리에 들어갈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나는 그 골목길을 지나가야 했고 가까이 가고 난 뒤에야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 들어가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춤이라고는 춰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그들이 하는 동작 정도는 따라 할 수 있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깡총깡총 뛰면 그뿐이었다.


자주 접하기 힘든 종족이 등장하자 무리의 청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마치 개미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듯 어느새 그들의 중심에서 뛰고 있었다. 이미 내 옷과 얼굴은 엉망이 되어있었고 개중에 몇몇은 내 눈을 향해 보랏빛 가루를 뿌린 바람에 눈도 잘 뜰 수 없었다. 하지만 인도 사람이나 대한민국 사람이나 너나 할 것 없이 흥겨웠고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의식은 길지 않았다. 고작해야 3분 남짓이었을까. 내가 무리를 빠져나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자 일부는 자리에 남아 여흥을 즐겼고 몇몇은 따라오며 계속 관심을 보였다. 그들의 질문에 짧게 대답을 하고 나서야 나와 아들은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완전히 아들과 나만 남은 뒤에야 걱정이 되었다. 도대체 지금 내가 지나온 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그 문화가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사회 안에서 보편적인 문화인지는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특히 얼굴에 잔뜩 묻은 보랏빛 가루처럼 표식이 진하게 남는 의식이라면 더욱 확인해야 했다. 혹여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였다면 이 모습으로 계속 그 사회를 돌아다니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경험한 것은 인도 사회에서 흔히 즐기는 축제인 듯했다. 이름은 홀리 축제. 힌두교의 새봄맞이 의식 같은 것인데 선이 악을 이긴 것을 기념하는 행사라 하니 그 뜻도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간에 만나 서로 화해하고 화합하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양반들에게도 함께 즐기기를 권유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보랏빛 얼굴을 하고 하루 종일 돌아다닌 덕에 많은 인도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뭐라 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자주 듣다 보니 이해가 됐다. 해피 홀리. 메리 크리스마스나, 해피 뉴이어 같은 특정 시즌에 사용하는 인사 같았다. 대부분은 밝게 웃으며 '해피 홀리'를 외쳤고 또 누군가는 수줍게 그저 웃고 지나쳤다.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물론 번거로운 일도 있었다. 내 얼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붉었고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가려 했던 쇼핑몰에서 입장 거부를 당했다. 결국은 직원 화장실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난 뒤에야 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원래 가려던 성요셉 성당도 밖에서만 보고 지나쳤다. 힌두교 축제를 잔뜩 즐긴 용모로 성당에 들어가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내 얼굴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홀리 축제 뒤 그곳에 있던 한 친구에게 물었을 때 분명히 잘 지워진다 했는데 믿지 못할 말이었나 보다. 몇 번씩 얼굴을 문지르고 닦아도 보랏빛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그래도 가장 진하게 색이 남은 곳은 왼손 새끼손톱이었다. 어렸을 때 했던 봉숭아 물들이기가 생각났다. 여름에 들인 물이 첫눈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했던가. 나는 이미 사랑을 이뤘으니 무엇을 이루어 주려나. 괜한 기대를 품게 된다. 그나저나 손톱은 그렇다 치고 눈 밑에 붉게 든 물은 빠져야 할 텐데 걱정이다. 아무래도 이 모습으로 다니기엔 너무 눈에 띈다. 눈두덩이가 벌건 것이 패왕별희 분장을 한 듯하다. 아들은 밀어버린 머리와 함께 보면 해리포터의 악당 대장 볼드모트가 떠오른다나. 축제의 여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