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5(D+58)_인도/벵갈루루
나는 도시의 번잡함을 싫어한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은 도시의 삶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대척점에 있다. 도시가 제공하는 수많은 편의 시설도 내게는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몸이 아프면 다닐 수 있는 괜찮은 병원 정도나 근처에 두면 될 일이다. 나는 그저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산과 강이나 보며 때때로 읽고, 쓰며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사람이 거주지에 관해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니 시골 생활을 하기는 그른 것 같다. 내가 살고 싶은 몇 곳의 후보지를 그녀에게 전했을 때 '너나 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말 나나 갈 수는 없으니 죽으나 사나 도시에 살다 생을 마감할 확률이 높아졌다. 심지어 나의 퇴사와 함께 집 앞에 작은 가게까지 차렸다. 그녀를 고생시키며 여행 나와 있는 나로서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당분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마이소르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2시간 반을 달려 카르나타카 주의 주도 벵갈루루에 닿았다. 인도 입국 후 방문하는 세 번째 주도다. 인도의 주도는 우리나라로 치면 광역시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앞서 말한 번잡한 도시에 딱 부합하는 곳이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늘 그렇듯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호객행위를 시작했다. 이들의 터무니없는 가격 제안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역 앞을 벗어나야 하는데 역시 주도의 기차역인 만큼 그 규모가 상당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벗어나야 하는 거리도 상당했다는 뜻이다. 작은 도시에서는 조금만 걸으면 그들을 멀리 떨궈낼 수 있었는데 말이다.
벵갈루루는 인도의 IT, 항공 산업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당연히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들어와 있고 그만큼 일자리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호텔에 도착하자 프런트에서 나의 비자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휴가로 온 것이 맞냐는 질문을 수 차례 던졌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 나는 그걸 왜 묻냐고 딱딱하게 대답했고 그들은 좋은 관광지들을 소개해주려 한다며 얼버무렸다. 나를 불법 취업 시도자 정도로 생각한 것일까. 도대체 누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불법 취업을 하러 남의 나라에 입국한다는 말인가. '너희들 나라에서는 억만금을 주고 일하라 해도 못 할 것 같다.' 나는 겉으로 해도 못 알아들을 말을 속으로 하며 여권을 받아 그 자리를 벗어났다.
시작부터 피곤했던 나는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다시 한번 도시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임을 절감해야 했다. 이곳은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데 우리나라의 도시만큼 정돈되지도 않았다. 도시의 좋은 점은 별로 갖고 있지 않고 나쁜 점만 집대성했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벵갈루루의 길거리는 공감각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먼저 끊이지 않는 경적 소리가 귀를 공략해 들어왔다. 이들은 경적을 운전의 기본으로 삼는다. 경적 소리도 병아리 지저귀는 소리부터 코끼리 방귀소리까지 다양한데 당연히 차가 많아졌으니 들리는 경적 소리도 어마어마했다.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내 바로 뒤에서 짖어대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차들은 대부분 연식이 오래되어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스리랑카부터 적응이 되었다고 믿었는데 그 마저도 규모가 커지니 참기 어려웠다. 커다란 매연 호리병 안에 갇혀있는데 밖에서는 병 주둥이를 통해 계속 검은 연기를 밀어 넣는 느낌, 눈도 코도 모두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식당은 인도의 유일한 장점마저 사라지게 했다. 한식당 한 곳을 찾았는데 음식이 혁신적으로 맛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값은 코치 한식당의 2배에 달했다. 안 그래도 매연이 끼어 부어오른 목구멍으로 그 음식이 편하게 들어갈 리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해가 저문 식당 앞 거리는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 들어차있었다. 서울 쥐와 시골 쥐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그때였던 것 같다. 서울 쥐의 초대를 받은 시골 쥐가 결국은 서울의 풍족함 보다 시골의 평온함을 그리워하며 돌아가는 것이 이야기의 주요 골자다. 시골 쥐는 돌아갈 고향이라도 있었지만 나는 당분간 돌아갈 곳도 없다. 이곳의 폭력적인 환경에서 벗어나려면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그래도 다행히 히말라야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몸이 조금 힘들겠지만 벵갈루루보다는 훨씬 좋지 않을까. 괴로웠던 눈과 코와 입을 한 번에 씻어낼 여정이 눈앞에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