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달살기보다 흥미로운 것 같아요.
나는 혼자 살고 있다. 30대 남자가 혼자 살고 있는게 무엇이 특별한가 싶지만 내가 혼자 살고 있는 이 집이 누군가의 신혼집이라고 생각하면 꽤나 특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가을, 나는 독립할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니고 있었다. 마침 그 당시 나의 회사 팀장님이었던 분은 막 결혼을 하였고 와이프와 함께 약 6개월 정도의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여행을 다니는 동안 비워둘 신혼집이 조금 걱정스러운 상태였다. 집을 알아보는 중이라는 내 얘기를 듣고 “그럼 너가 우리집에 지내고 있을래?”라고 물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주셨던 것이 참 감사할 따름이다.
집들이 겸 잠시 살아볼 집을 둘러보기 위해 위스키를 한병 사들고 팀장님의 신혼집에 방문했다. TV가 없는 대신, 모서리가 예쁘게 다듬어져있는 테이블과 앤틱한 턴테이블이 자리하고 있는 거실이 무척이나 멋져 보였다.남다른 감성에 부부가 꾸며놓은 공간 하나하나가 센스있고 멋진 공간이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잠시라도 내가 머물게되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지만, 그래도 섣불리 이 집에 살아보고 싶어요 라고 얘기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수도 있을 것 같아서 생각해보고 다음에 말씀드린다고 얘기했었다. 그렇게 팀장님 부부는 세계여행을 떠났고, 나는 이 집에 단기계약을 맺고 무보증금 풀옵션 월세를 지내고 있다. 친한 동기에게 이 사실을 전했더니, 들어간 사람이나 들여보내준 사람이 참 이상한 사람들인 것 같다고 했다. 부정할 수가 없어서 웃기기도 하면서도 남들은 못해볼 경험이 또 늘었다라는 생각이 들어 6개월의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보겠다고 마음속으로 작게 다짐했다.
팀장님 부부는 떠나면서 나를 위해 집안 곳곳에 작은 배려를 해두었다. “빈티지 접시들은 전자렌지에 넣으면 안돼요 ㅎㅎ” 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트잍이 찬장에 붙어있었고, 서랍을 열어보니 가지런히 놓여있는 인센스 스틱에는 “마음껏 피워보아도 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한달에 한번정도 전화나 카톡을 통해 팀장님 부부와 나는 서로의 안부를 전한다. 그들은 새로운 도시로 넘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며 지내면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봐준다. 나는 매번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주면서도 거실에 있는 화분이 죽어가고 있어 면목이 없다는 소식 등을 전해주고는 한다. 어느덧 팀장님 부부가 이 집에서 지낸 시간보다, 내가 이 집에 들어와서 지낸 시간이 더 긴 시점이 지났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아마 그들이 돌아오면 반대로 내가 스타일러 2배 더 잘 사용하는 법, 세탁기가 돌아가다 중간에 멈췄을 때 해결하는 법과 같은 것들을 포스트잍에 적어두고 나가게 될 것 같아서 웃기기도 하다. 지금도 그들이 남겨둔 배려와 고마운 마음 덕분에 조금 더 내가 조심해야 될 부분은 없는지 늘 생각하곤 한다.
독립을 체험(?) 해 볼 수 있는 이 시간을 통해 나의 취향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어떤 물건들을 내가 자주 만지고 사용하고, 얼마만큼의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게 되는 중이다.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행동들은 정해져있다. 대부분은 퇴근하고 들어와서 잠만 잔다. 그러니 침대와 침구류는 가장 비용을 투자할만한 항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 집을 위해 고민해보아야 할 것은 가구들 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더 고민이 필요했던 물건들은 작은 것들이라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이다. 예를들면 주전자와 컵이 그렇다. 주말에는 커피나 차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데 처음에는 그저 뜨거운 물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런데 몇 차례 반복하다보니 뜨거운 물이 컵에 들어가는 순간을 나는 꽤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이 떨어지는 순간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감상하려면 주전자의 입이 얇고 길어야 한다. 나는 내가 입이 얇고 긴 주전자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 몰랐다. 혼자 살아보니 이런 걸 알게 된다. 당연히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TV와 소파는 막상 사용하지 않고 지내보니 새로 내가 꾸미게 될 집에도 사들이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예산사용, 공간 활용의 관점에서 모두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 집을 보러다니게 되면 빔프로젝트를 쏘기 위한 넓은 벽이 있는지 또한 우선적으로 살펴보게 될 항목이 되었다.
독립을 시작하기 전 걱정했던 것이 있다면 외로움이었다. 대학생때 유럽배낭여행을 혼자 다녀오며 알게 되었던 것은 내가 꽤나 외로움에 약하다는 점이었다. 멋진 것들을 보면 “참 멋지네”라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저거 참 멋지지 않아?” 라고 누군가에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나중에 혼자살지는 못하겠다라고 생각했었다. 독립을 준비중이라고 하니 먼저 독립생활을 해 본 친구들의 조언도 조금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었다. 처음 한달 정도는 집 꾸미는 재미, 아무도 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해방감에 기쁘지만 두어달이 넘어가면서 부터는 아마 많이 외롭거나 심심할지도 모른다고 겁을 줬었다. 막상 지내보니 그렇지 않았다. 주전자에서 뜨거운 물이 떨어지는 모습이 흥미로운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심심하다고 느껴질 틈이 많지 않았다. 주말에는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느라 하루가 금방 저물기도 했고, 유통기한이 넉넉한 계란을 직접 고르기 위해 굳이 마트에 직접 가는 짓들을 하다보니 외로움보다는 하루를 채우는 즐거움을 조금 더 느끼며 지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사는 즐거움을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면, 예전보다 느리게 쌓이는 통장잔고 일 것이다. 멀어진 출퇴근 때문에 기름값이 더 들고, 월세도 나간다. 그러나 주거비용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주거비용을 아낄수도 있는 비용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당연히 고정 비용이라 여기게 되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고들 하지만, 숨을 쉬려면 돈을 내야하는게 당연하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21세기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핸드폰을 사용하려면 고정으로 핸드폰비가 나가는 것처럼. 삶은 순간의 연속이어서 순간을 잘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명언을 어디선가 본거 같다. 내가 덧붙여보자면 순간을 잘 만들어나가기 위한 출발은 혼자 살아 보는 것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뜨거운 물을 끓이기도 귀찮아서 따뜻한 커피보다는 아이스 커피를 타먹거나, 마트에 가는 날은 점점 줄어들고 배달로 시켜먹은 일회용쓰레기가 계속해서 쌓여나갈지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오랫동안 효율보다는 비효율을 찾는 독립생활을 지내보기 위해 애써볼 것 같다. 독립생활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켜 줄 것 같다는 거창한 의미부여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냥 재미있을 뿐. 삶은 그저 재미있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