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훈 Jul 09. 2018

언어의 정원

더 가까이

장마다. 알람 대신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을 뜨는 아침이 생긴다. 아직 반쯤 감겨있는 눈으로 밖을 바라본다. 처음에는 빗소리에 이끌려 창문을 열었다가, 매일 보던 창 밖이 오늘따라 또렷하고 깨끗하여 가만히 조금 더 바라본다. 비 오는 날은 큰 것에서 작은 것들로 시선이 옮겨간다. 마치 클로즈업 하듯. 그건 비 한 줄기 한 줄기가 보고 싶어서 일수도 있고, 어딘가에 떨어진 빗방울이 보고 싶어서 일수도 있다. 비에 젖어 더 선명해진 나무들이 보였다가, 그 다음은 빗물이 맺혀있는 나뭇잎들로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나뭇잎 끝에는 물방울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다. 그 작은 물방울이 마치 숨을 들이마시는 듯 살짝 커지더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진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영화 <언어의 정원>은 비 오는 날 당신이 찾아 볼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해준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일본 신주쿠공원의 호수에 떨어지는 빗방울, 철길 사이에서 홀로 피어난 작은 꽃, 비가 그친 뒤 내려오는 햇살 사이로 드러난 무지개.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사이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녀의 만남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영화는 꼭 비와 관련되지 않더라도 날계란이 톡 터지며 그릇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커피의 원두가루 위로 뜨거운 물이 떨어지는 순간들을 비춰주며, 그냥 지나치고 있던 일상의 작은 순간들 앞에 잠시 멈춰 세워준다.  


비 오는 날, 아니 꼭 비가 오지 않더라도 쉬어가고 싶은 아침, <언어의 정원>에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까이 바라보기를 바란다. 그게 비에 젖은 나뭇잎이던 아니면 그걸 바라보는 당신이던.

작가의 이전글 영화 변산과 내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