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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훈 Aug 24. 2018

너의 결혼식 그리고 건축학개론

영화가 첫사랑을 기억하는 두 가지 방법

                                                                                                     

영화 너의 결혼식은 우연(김영광)이라는 한 남자의 관점에서 첫사랑으로 가득했던 나날을 펼쳐보는 일기장이다. 영화는 체육교사가 된 우연의 책상에 놓인 그의 첫사랑 환승희(박보영)의 청첩장을 비춰주며 시작한다. 우연은 회상한다. 돌아보는 그의 인생은 승희로 가득했다. 싸움질이나 하던 고등학생 우연 앞에 어느 날 나타난 승희는, 그의 마음에 불만 지펴놓고 훌쩍 떠나버린다. 그런 승희를 다시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우연은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에 입학한다. 그러나 다시 마주친 승희의 옆에는 잘 나가는 남자친구가 생겨버렸다. 승희의 생일날, 선물을 주려고 찾아간 그녀의 집 앞에서 다른 남자에게 웃음 짓는 승희와 그의 남자친구를 향해 우연이 할 수 있었던 건 돌멩이로 유리창을 깨뜨리는 찌질함 뿐이었다. 이후 우연에게도 여자친구가 생긴다. 그것도 강남 사는 예쁜 여자친구로다가. 하지만 우연은 승희가 잊혀지지 않는다. 단순히 서로의 타이밍이 꼬여서일까?

 

영화의 메인 카피가 ‘사랑은 언제나 타이밍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타이밍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본다. 잠시 어긋나긴 했지만 그들은 올바른 타이밍을 결국 맞추게 된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잘못 끼워졌던 셔츠의 단추들은 예쁘게 다시 끼워진다. 행복한 나날들. 하지만 셔츠는 결국 찢어지고 다시는 입을 수 없게 되었고 그 이유가 타이밍은 아니었다. 승희는 멀리 떠나고 우연은 체육교사로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는다. 그런 우연이 결국 받아들게 된 것이 첫사랑의 결혼 청첩장이다. 여기서부터 건축학개론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건축학개론도 첫사랑의 기억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너의 결혼식과 많이 닮아있다. 버스정류장에서의 떨렸던 입맞춤, 함께 기찻길 위를 걸었던 기억들. 근데 첫사랑을 앞으로 어떻게 기억할지에 대해서는 아주 다른 각도로 이야기한다. 
     
술 취해서 다른 남자와 입 맞추고 있는 모습이 그가 본 마지막이었던 남자와 그런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여자는 그대로 세월을 흘려보내버린다. 이미 한 가정을 꾸렸었던 경험까지 보낸 여자와 그리고 이제 한 가정을 꾸리려고 하는 남자에게 잊고 지낸 먼지 쌓인 CD플레이어처럼 첫사랑이 나타나버린다. 그냥 아무 일 없었다고 하고 싶었는데 첫사랑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둘은 알고 있다. 그러니 자꾸 서로가 아른거린다. 결국 멀리 떠나는 서연(한가인)에게 결국 달려가 승민(엄태웅)은 키스한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 잊겠다는 암시로 건넸을지도 모를 CD플레이어는 어쩌면 한 번씩 나를 떠올려달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마지막에는 기억의 습작이 흘러나온다. 다시 한 번 그때를 회상하듯. 



개인적으로 너의 결혼식에서 가장 와닿았던 장면은 승희의 결혼식에 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킨 낚시터에서 우연이 승희가 그려준 그림을 보는 장면이었다. ‘복도 많아~ 이런 나를 낚다니~’라는 글귀가 쓰여있는 귀여운 캐릭터 그림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우연은 씁쓸한 웃음을 짓는 동시에 눈물을 삼킨다. ‘환승입니다’라는 소리가 잠시 기억을 깨우는 것과는 다르게 그 그림을 그려주던 당시의 달달한 행복이 순간으로 그림 그려졌을 테지. 하지만 이내 단단히 마음먹는다 잊기로 혹은 예쁘게 떠나보내기로. 
     
그 아련한 회상을 마지막으로 우연은 결혼식에 찾아가 서로의 추억을 추억으로 묻는 악수를 나눈다. 그래서 너의 결혼식의 마지막 장면은 함께 먹었던 떡볶이라든지 그가 선물해준 아이리버가 아니라 행복한 웃음을 띤 여자의 앞모습과 한결 가벼워 보이는 한 남자의 뒷모습으로 끝맺는다. 누군가에게는 결국 마음 한켠에 늘 자리하고 있을 존재가 첫사랑이겠지만 너의 결혼식의 우연에게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을 흉터로 흐릿해질 테고 건축학개론의 승민에게는 이따금 욱신대지 않을까. 둘 다 흉터를 매번 들춰보기는 하겠지. 어쨌든 흉터가 두 사람 모두에게 고통을 다시 전달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영화는 점점 흐릿해져가는 흉터를 어루만지며 입꼬리를 잠깐 올렸다 말겠지만, 또 다른 영화는 그때의 기억을 매번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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