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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명 Dec 12. 2024

상처의 전시


뉴욕의 맨하탄 한가운데에는 911 메모리얼 파크가 있다. 세계무역센터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이라 추모의 무거운 마음은 가지고 있되, 그 공간을 구성하는 분위기는 공원 같다. 더불어 기념관도 있다. 아픔을 어두운 곳으로 밀어내지 않고 품겠다는 사람들의 따뜻하고도 거대한 포옹을 넘어서 엄연한 결단으로도 보인다. 슬픔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결심.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얼굴을 가진 도시와, 지나가는 사람 모두 어쩌면 처음 만나는 낯섬의 향연이 어우러진 어지로움 속에 상흔이 머물러 있다. 그 상처를 한 개인과 어떤 나라와 도시의 슬픔이라 치부하지 않고 삶의 한가운데 두고 살아간다. 내 곁에 두고 전시를 한다. 뉴욕에 사는 사람은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


우리도 어떤 아픔은 숨겨두고, 구겨두고 있다. 상처를 드러내는 것에 겁을 먹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겁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들의 타인의 슬픔엔 관심이 크게 없어서 일지도. 외면하는 게 편하다. 나의 기쁨이 방해받기 싫어서, 내 아픔이 더 커서, 아니면 정말 무관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선 누군가 보듬어야 한다. 끄집어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아프지 않고, 따갑지 않고, 곪지 않기 위해 어떤 슬픔은 꺼내어 나열하는 게 좋겠다.


예전에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하면서 경미한 화상을 입어 처치해 줄 때, 화상 입은 부분은 약을 바르고 붕대로 칭칭 감을 게 아니라, 공기와 맞닿는 게 더 빨리 낫는 방법이라 했다. 감싸서 숨겨두지 않고 세상에 드러냈을 때, 세상이 아니라 단 한 명 앞에서만 털어놔도 상처는 치유되기 시작한다.


내가 타인의 상처에 거대한 포옹을 해줄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포옹 같은 사람이 내게 있는 지도 잘 모르겠다. 다정한 포옹이 굳어버린 시절을 보낸다 해도, 그 언젠가의 우리도 포옹으로 일어섰음을 기억하자.


너의 슬픔을 다 받쳐주진 못해도 버거운 순간에 잠시라도 들어줄 수 있는 작은 힘이 잠시의 순간에 내게 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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