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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Dec 10. 2023

단 한 종을 위한 지구의 경작

이태원 제로웨이스트샵 노노샵(Nonoshop) 노노스토리즈 김산하 박사님

김산하 박사님의 강연을 들었다. "단 한 종을 위한 지구의 경작" 전에도 만나 뵌 적이 있지만, 이렇게 강연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김산하 박사님은 인도네시아 구눙할라문 국립공원에서 자바긴팔원숭이를 연구한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이자, 나를 시셰퍼드 코리아로 안내한 활동가이자 책 '아무튼, 비건' 김한민 작가의 형이기도 하다. 그의 강연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공유한다. 




인도네시아 국립공원으로 함께 떠나보자 


이태원 제로웨이스트샵 노노샵에서 진행된 김산하 박사님의 강연은 긴팔원숭이의 웃음소리를 따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오아... 오아. 오아- 오아! 점점 커지는 간절한 울음소리. 박사님은 긴팔원숭이가 들으면 웃을 만한 소리라고 했지만 한순간에 인도네시아 숲으로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냥 숲을 거니는 것'과 '내가 누군가의 먹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숲을 거니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 된다고 얘기해 주셨는데, 그 묘사를 듣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겸손의 '미덕'까지 가지 않아도, 절로 겸손해지는 마법. 그게 바로 자연의 힘 아닐까.


국립공원은 왜 모두 산일까?

활용하는 대상이 아닌, 보전의 대상으로 자연을 보호하자고 정해둔 것이 바로 국립공원이다. 그런데 지리산 국립공원, 설악산 국립공원...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국립공원은 다 산이다. 왜일까? 평지에 국립공원은 왜 없을까? 이 쉬운 질문에 대한 답은, 산세가 험한 지역만을 인간이 점령하지 않아서 겨우 살아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쉽게 오가는 저지대숲은 이미 모두 사라지고 없다. 


긴팔원숭이를 소개합니다 

영장류는 '유인원'과 '원숭이'로 나뉘는데, '긴팔원숭이'는 유인원인데 이름이 원숭이다. 

긴팔원숭이는 먹는데 36.7%의 시간을, 쉬는데 39.9%의 시간을 보낸다. 동물들은 먹기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우리는 왜 먹기 위해서 일하는가? 먹고살기 위해서 그렇게나 많은 착취와 낭비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긴팔원숭이의 아기는 태어나면 엄마의 품에 안겨 매일매일 청룡열차라도 타는 듯한 입체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에 비해 우리의 삶은 지극히 평면적이다. 물리적으로도, 또 정서적으로도. 

무화과는 긴팔원숭이의 주요한 먹이인데, 무화과는 열대우림의 주요 먹이가 된다. 꽃피는 시기가 다 제각각 달라 연중 지속적인 공급이 된다고.

긴팔원숭이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니 나름대로 패턴이 있었다. 눈앞에 먹이가 있다고 다 먹어치우지 않고, 남겨두는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그를 토대로 체계적인 전략이 보인다. 

먹이를 깨끗이 다 먹지도 않고 먹다 흘린다. 인간이었다면 '음식을 흘리면 어떡해!' 할 것이다. '흘린다'는 건 곧 '버린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인도네시아 긴팔원숭이의 세계에서는 음식을 흘리는 게 낭비가 아니다. 그 나무 밑에 사는 다른 종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어떠한 것도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자연의 섭리와 합치되는 생활방식으로, 한정된 자원을 지혜로운 사용한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다양성의 일부인 삶.

긴팔원숭이가 이동하며 먹이를 먹는 덕분에, 종자는 800미터 이상까지도 분산이 된다. 한국의 숲도 이런 종자분산의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한데, 긴팔원숭이는커녕 있던 꿀벌마저 없어지고 있는 게 현실. 



인간과 자연의 거리

박사님은 아주 멀리서 원숭이 사진을 찍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멀리 있어서 저게 원숭이인지 나뭇잎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실적인' 사진들이었다. 박사님은 인도네시아에서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숲에서 원숭이를 만난 것을 두고 '행운'이었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운 좋게 발견해서 살며시 나무에 다가가기만 해도 긴팔원숭이는 훌쩍 떠나버렸다고 했다. 사람은 땅에서 굽이굽이 길을 헤쳐야 하는데, 긴팔원숭이는 나뭇잎 사이로 날아다니며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관계에 머물렀다고. 


돈만 내고 네모난 종이티켓만 받으면, 곰, 판다, 돌고래, 아프리카에서 온 비단뱀까지 마음껏 볼 수 있는 비정상적인 구조 아래에서 인지하고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자연에서 동물이 마주하는 것은 분명 우리나라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에게도 '행운'인 일인 것이다. (산업이 고도로 발전한 나머지,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동물보호단체'로 일컬어지는 환경단체들만 생각해 봐도 쉽다.) 


나무 위에서 직선으로 이동하는 긴팔원숭이들 
인도네시아에서는 동물들의 이름이 동어 반복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비, 오징어 등등... 오징어의 이름은 무려 '쭈미쭈미 cumi-cumi'. 쭈~미 쭈~미 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 웃음이 나왔다. 



Human wildlife conflict (HWC)
인간과 야생동물 사이의 갈등


인간과 동물의 거리, 그 적당한 거리를 찾지 못할 때 conflict가 발생한다. 인도네시아의 나무 아래에서 인간은 생존을 생각해야 하는 작은 존재가 됐지만, 인류가 만들어낸 문명과 도시의 상황에서는 다르다. 인간은 공간을 독점적으로 점유하며 다른 종의 생존을 불가하게 했다.

포유류 중 지구에서 차지하는 biomass distribution 살펴보면, 인간이 36% 인간이 기르는 가축이 60%, 나머지 4%만이 야생 포유류다.


살해한 고라니를 트로피처럼 전시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야생동물과 인간. 이 둘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 갈등을 명명하는 단어가 있는 줄 몰랐다. Human wildlife conflict, HWC. 한국어로 번역하면 '인간과 야생동물 사이의 분쟁, 갈등'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Human-wildlife conflict is when encounters between humans and wildlife lead to negative results, such as loss of property, livelihoods, and even life. Defensive and retaliatory killing may eventually drive these species to extinction.

 

주인이 떠난 텅 빈 숲은 '침묵의 숲'이 됐다. 반달가슴곰과 호랑이가 살던 우리나라 산에는 지금 삵과 단비, 고라니만 남았고 그마저도 멸종위기다. 숲에서 가장 무서운 건 곰도 호랑이도 아닌 술 취한 아저씨들이라니... 음식을 찾아 도시로 내려온 멧돼지는 총에 맞아 사살됐지만 ‘도시의 약탈자’로 변해 있었고, 음식 냄새가 나서 침낭을 뜯었을 곰에 대해서는 '자연에 적응하지 못한 적응 실패의 사례'라는 낙인이 찍혔다. 언론에서 야생동물을 어떤 언어로 다루고 있는지만 보아도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시작되고 감금하고 전시하던 인간-비인간동물의 존재는 한순간에 역전됐다. 집에 갇힌 사람들에 도시가 비자 동물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화된 지구에서, 도시와 야생동물의 공존은 불가한 것일까? 



땅의 독점, 팜유 농장에 대하여 

자! 드디어 '단 한 종만을 위한 단 한 종 재배' 팜유가 등장했다. 팜유의 문제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럼 이 문제를 도무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크게 목소리 낸 적이 없었는데, 강연을 듣다 보니 문제의 정도가 정말 심각했다. 


자연적인 숲과 가공된 숲인 조림지의 경험은 위 사진만 봐도 너무나 다르다. 박사님은 '나무가 빽빽이 있는데 아무 소리가 안 난다' 멸종과 종말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무는 많은데 새도 없고 바람도 일지 않는 '침묵의 숲'이라고. 


팜유 농장 한 걸음 더

팜유 농장을 만들 때 버려지고 황폐화된 땅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사유지는 복잡한 이해관계 피하고, 결국 숲으로 향한다. 숲에 있던 나무를 벤 다음에 팔아서 팜유농장을 운영하는 초기 비용으로 충당한다고. 

Edge effect 경계 효과. 동식물이 모여 사는 생태계에는 '가장자리 효과(edge effect)'라 불리는 현상이 있다. 서로 다른 생물군의 서식지가 나란히 붙어 있을 때 그 경계지역에 사는 종의 다양성과 밀도가 각 서식지 중심지역보다 훨씬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자연에서는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게 없는데, 팜유 농장을 주변에 둔 숲은, 곁에 자연의 숲을 둔 같은 면적의 숲보다 개구리 종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경계효과는 주변 4km까지 영향을 미쳐 종다양성을 감소시킨다. 


땅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면적에 따라 현재 대륙에 그 크기를 대입해 본 것. 


IUCN (세계자연보전연맹)은 이미 최악의 길을 달리고 있는 팜유 농장에 레드카펫을 깔아주었다. 1톤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토지 면적이 작아, 카놀라, 해바라기, 콩기름 보다 훨씬 면적이 작다며 팜유를 옹호하고 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이렇게까지 '기름'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전 세계 생산되는 음식의 1/3이 버려지고 그중 기름은 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생산, 유통 과정 중 버려지는 것은 고사하고 식탁 위에까지 올라온 후 버려지는 음식들을 보고 있으면, 이를 해결함으로써 공급을 줄이는 것에서부터 자원 낭비와 탄소 배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걸 안 하고 있을 뿐. 



한 항공업체에서 폐식용유를 활용해 바다를 건넜다. 이를 두고 항공업계의 탄소배출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할 수는 없겠지만, 식물성 기름 하나를 두고도 역동성인 콘텍스트 생길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사례.


(중간에 박사님의 호소ㅋㅋㅋ)
생물다양성 전공자가 너무 없습니다. 여기 젊은 분들 많은데, 전공하세요! 


유엔 지구생물다양성전망 보고서, 결과는 0점 

뉴닉에 있을 때 이 원고를 썼던 게 기억난다. UN이 설립한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기구(IPBES).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협약인데, 우리나라는 20개 항목 중 20개 모두를 0점을 맞았다. 정말 단 한 개도 지키지 못한 것. 이 협약뿐 아니라 아이치 생물다양성 ‘지구건강검진’ 결과도 있는데, 2백만 종 중 1백만 종 멸종위기에 처했고, 주로 인간의 활동이 원인이다. 


곤충은 포유류, 조류보다 8배 빨리 감소하고 있다. 매년 곤충 2.5%가 감소하고 있고, 40%가 멸종위기에 처했다. 10년이면 지금 있는 곤충의 4분의 1이 사라진다는 뜻. 

곤충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대로라면 곤충마저 멸종될 위기다. 작년 서대문구, 은평구를 뒤덮은 러브버그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집 앞에도 정말 많은 러브버그가 있어서 싫어했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싫어했나' 조금 부끄러워졌다. 지자체는 길에는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는 산에도 살충제를 뿌렸다. 


아보카도 정말 나쁜가요? 

비건이 아닌 나는 스스로 혹은 타인을 제대로 설득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 때가 있다. '아보카도도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아보카도 재배할 때 물을 그렇게 많이 쓴다며.'라는 질문에도 속 시원히 대답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김산하 박사님 강의에서 이에 도움이 될 만한 지표를 볼 수 있었다. 

가장 덜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식물식 vs. 가장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육식. 

과연 어떤 게 더 탄소배출과 자원낭비의 관점에서 더 낫냐는 아주 흥미로운 비교였다. 정답은 식물식의 압승. 그러니까 하루 한 끼를 식물식으로만 먹더라도, 그 영향력이 크다고 스스로 크게 자부할 만하다는 것이다. 육식을 100끼하던 것을 99끼한다고 자부심 가지는 건 조금 그렇겠지만 ^^; 일주일에 하루, 한 달에 며칠 정도 조금씩 그 정도를 늘려간다면 충분히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쌀도 다른 작물에 비해 탄소배출이 많고, 일자리 보존의 측면에서 우리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재배하고 있어 생태 습지가 오염되는 관점에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결국 단 한 종만을 위한 지구 경작을 빠른 시일 내에 멈추고, 능동적인 공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결국, 공존 Coexistence

인간과 야생동물이 땅을 공유하기 위해 상호 적응하는 역동적이고 지속가능한 상태로, 위험이 용인 가능한 수준으로 야생 생물의 개체군이 사회적으로 정당하게 유지되도록 인간, 자연 간의 상호작용이 효과적으로 관리되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험이 용인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것. 동물원을 탈출한 동물들이 숲을 헤매고 있다는 이유로 손쉽게 총을 쏴 죽여버리는 정도로, 우리는 '위험'을 용인하고 있지 못하다. 


공존의 한 가지 사례가 소개됐다. 티베트 불교 사원과 멸종위기에 처한 눈표범 '설표'의 생존 확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난다. 불교 사원 주변에서는 적어도 설표를 죽이지 않도록 '공존'하고 있는 것. 불교의 믿음이 그 역할을 해내고 있으며, 승려가 직접 설표 보전에 관한 자료를 배포하기도 한다. 


공존의 스케일은 위와 같이 coexistenat at regional scale / coexisetence of intermediate sacle / coexisetence at fine scale로 세 단계로 나뉜다. 


지금 이 시대에 공간의 점유와 전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공룡의 시대, 곤충의 시대 등 어떤 종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시대가 있지만 지금처럼 공간 자체를 깡그리 차지하는 건 우리 인간밖에 없다. 생명의 조건의 독점이자 토양 독점이 일어나고 있다. 


이 문제는 비단 자연, 지구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정치적인 문제로도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인간 안에서도 땅의 독점 문제가 심각하다. 부자는 더 나은 공간을 점유하고, 더 많이 점유한다. 누군가는 몸을 뉘일 단칸방을 마련하지 못해 얼어 죽는 경우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간 안에서도 공간의 점유와 독점이 일어나고 있으니, 지구 커뮤니티 일원에 대한 공존의 논의가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공존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로는 Farming and the Fate of Wild Nature  토지 공유 토지 할애 개념이 있었는데... 여기까지 듣고 9시에 예약해 둔 바이두부 라멘 먹으러 중간에 나왔다... 흐엉... �


박사님이 좋아한다는 글로 마무리한다. 옷을 사지 않기로 하면서, '그럼 이 브랜드는 사도 되나요? 폐자원을 활용한 옷은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는데, 앞으로 이 문장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Almost everything being done in the name of sustainability entails attempts to reduce unsustainability. But reducing unsustainability, although critical, does not and will not create sustainability.

지속가능성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거의 모든 것은 불지속가능성을 낮추려는 시도가 수반된다. 그러나 불지속가능성을 낮추는 것은, 비록 중요하지만, 지속가능성을 만들어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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