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 분업의 혁신
무거운 글은 쓰기 싫었다.
원래는 아래처럼 가볍게 쓴다.
[재테크 주제 + 경제적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론 소개 및 접목 = 쓱 봐도 감을 잡는 경제시민이 되자]
그런데 오늘은 번외(?)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 같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국부론에 나온 분업 및 비교우위 살짝 다룰 예정이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분업의 효과는 우리가 흔히 쓰는 어감보다 훨씬 강력하다.
뉴스를 보다 화가 났다. 코로나 19로 취업 시장이 얼어붙었고, 취업준비생들이 신세를 비관하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쓸모없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지금의 취준생은 대한민국 헌정 이래 최고의 능력자들이다. 올림픽 기록처럼 매년 역대 최고 수준을 넘어설 것이다.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못난 건 개인이 아니라 구조다.
상향평준화가 됐다. 비단 취업시장만이 아니다. 모든 게 그렇다. 지금은 동네에서 분식집을 하려면 김선생과 죠스 떡볶이와 경쟁해야 한다. 목공일을 배워 의자를 팔고 싶으면 한샘, 일룸 심지어 바다 건너 이케아를 이겨야 한다. 창고에서 컴퓨터나 만들어서 팔아볼까 하는데 상대는 애플이다. 개인이 상대할 수 없다.
편하게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게임을 한다. 열심히 튜토리얼을 마치고 본 게임에 들어간다. 초보자 마을에 가니 떡하니 최종 보스가 있다. 이름은 애플이다. 레이드(대규모 파티)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파티 이름이 삼성이다. 레이드가 인원수가 차서 더 이상 참여가 안된다고 한다. 문제는 이 레이드에 참여를 못하면 더 이상 진행을 할 수 없다. 차선책으로 이 삼성 파티 물약을 파는 방법이 있다. 진행은 되지만 계속 약초 채취에 제작만 무한 반복해야 하는데, 딱히 레벨이 오르지도 않고 레이드 인원들이 받는 보상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 이미 밸런스 망한 게임이다.
국내의 정치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다. 세계적인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거대한 트렌드는 죄수의 딜레마처럼 한 국가가 어찌할 수 없다.
세계화는 전 세계의 분업이다. 분업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한 그것이다.
노동자 한 사람이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수작업으로 핀을 만든다면 잘해야 하루에 한 개정도 만들 수 있다. 숙련자도 20개가 힘들다. 그러나 핀 제조과정을 18개 공정으로 나누어 열명이 분업을 하면 하루에 4만 8천 개의 핀을 만들 수 있고 한 명이 하루에 4천8백 개의 핀을 만들 수 있다.
일반인은 하루에 한 개도 힘들고 생활의 달인 정도 돼야 하루 20개가 고작이었는데, 4,800개다. 엄청난 효율이다. 여기에 비교우위 개념까지 더해서 개인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비교우위에 있는 영역에서 일해야만 했다.
비교우위를 짧게 설명하자면, A가 가장 잘하는 것은 빵을 굽는 것이지만, 나보다 빵을 훨씬~ 잘 굽는 B가 있으면 나는 핀 공장에 가야 한다는 거다. 우리가 아무리 가무에 능해도 회사에서 엑셀과 씨름해야 하는 이유다.
한 사람은 마을의 효율을 위해 분업하고, 각 마을은 도시의 효율을 위해 분업하고, 각 도시는 국가를 위해 분업하고, 각 국가는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분업한다.
A는 원래 빵 굽고 싶고, 가끔 B도 공장에서 멍 때리고 싶다. 하지만 이러면 효율이 안 좋다.
중국도 설계할 수 있고, 미국도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세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면 안 되는 거다.
이렇게 무역도 활성화되고 각국 GDP도 성장한다. 지구촌이 형성된 거다.
세계의 가치관이 생산을 절대 선으로 여긴다.(GDP = 국가총생산)
국가 순위를 GDP로 하다 보니 다들 생산을 못해서 안달이 났고 분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친 듯 생산을 했더니 잉여생산물(재고)이 미친 듯 남아돈다.
과거에는 분업의 혁신으로 부족한 물품을 만들어 물질적 풍요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효율이 너무 좋다. 그렇게 죽자고 만들다 보니 죽어라 써도 제품이 남았다. 재고 물품은 시장에 치명적이다. 팔리지 않으니 공장이 돌지 않는다. 공장이 멈추니 실업자가 넘쳐난다. 분업화 속에 핀 접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손가락 빠는 것뿐이다. 빵 사 먹을 돈이 없으니 빵집 친구도 쉰다. 다 쉰다. 제한된 수요와 늘어나는 공급은 언제나 경제 공항으로 이어졌다.
잉여인 것은 취준생인 사람이 아니라 쌓인 재고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경제 공항에서 알 수 있듯이, 분업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가 멈추면 다 멈추는 것이다. 물 흐르듯 모든 분업 과정이 흘러가야 한다. 분업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JIT(Just In Time)은 이러한 약점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팬데믹으로 공장 한 두 개가 가동을 멈추니 전 세계의 생산이 멈춰버린 것이다. 분업의 취약성을 보여준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세계는 평탄한 직선을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를 만드는데 혈안이었다. 그러다 코로나 19라는 코너를 만난 것이다. 시스템이 붕괴된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이제는 다소 속도는 줄어들더라고 선회력이 좋아, 코너에도 전복되지 않는 차를 만들 필요성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국가 범위로 분업의 경계를 어느 정도 축소할 필요가 있다. 이번 팬데믹과 같은 충격에도 강해지고 거기서 발생되는 비효율은 낮은 재고로 이어져 지금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말하자면 의도된 저성장, 아름다운 저성장인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문제의 속도를 늦추는 수준이라고 할까? 자동화 기술은 발전되고 있고, 여기에 인공지능이 더해지면서 대부분의 영역에서 사람이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원
잉여생산물(재고) > 수요(돈 쓸 사람)
문제의 해결
잉여생산물(재고) ≒ 수요(돈 쓸 사람)
재고를 줄이거나 수요를 늘리거나, 생산을 적게 하던가 돈 쓸 사람을 늘리던가. 이것도 아니라면 쓸 사람에게 돈을 더 주던가.
이제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재고가 넘쳐난다. 실업자가 넘쳐난다. 취준생이 넘쳐난다. IMF 이후로 나아질 기미가 없다. 벌써 20년 악화만 된다. 기존 노동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저 똑똑하고 체력 좋은 젊은 친구들도 일자리가 없다는데, 있는 밥그릇 잘 지켜야지 그래야 가족 먹여 살리지. 조직에 절대복종한다. 인사권자의 결정에 이의 제기할 수 없다. 꼰대 문화가 어쩐다고 하지만 꼰대질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이전에 갑질을 할 수 있는 배경도 따지고 보면 사표를 '못'던지기 때문이다. 나의 인권에 침해가 될 정도의 갑질이고 꼰대질이라면 그냥 사직서를 제출하면 된다.
'못'하는 이유는 취업난을 알기 때문이다. 재취업이 힘들다. 자영업은 지옥이다. 자영업자가 던질 수 있는 것은 사표가 아니라 목숨이다. 참는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은 근로자는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생기는 것이다. 취준생에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경력이 쌓이지 않는 일에 청춘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다. 공채만 길이 아닐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아이디어 있다면 도전해 볼 수 있다. 창업 쪽도 할 말이 좀 있다. 창업을 하라는 건지 창업 지원금을 받기 위한 공모전을 하라는 건지...
보너스를 받기 위해 마지막 자존심을 버리지는 않는다. 생계가 막막할 때 버린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다.
결론 : 기본소득은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어쭙잖은 갑질에 대항할 수 있다.
돈맥경화. 그나마 일하는 사람들도 돈을 쓰지 않는다. 시장에 돈이 돌지 않아서 경제가 활성화되지 못한다. 고용이 불안해서 그렇다. 지금이야 돈 버니까 그럭저럭 월세도 낼 수 있다. 전세인 사람도 전세금 오를 걱정이 있다. 이 와중에 고용은 불안하다. 벌어도 내 돈이 아니다. 미래의 불안은 저축을 강요한다. 근로자 대부분이 미친 듯이 저축한다. 소비는 저축의 적이다. CFP로서 당신의 재정을 위해서는 저축을 높이라고 권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소비를 해야 경제가 산다. 국가에게 저축은 쌓이는 재고를 의미한다.
저축을 쌓인 재원이 그들의 노후자금으로서 100% 쓰인다면 문제없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앞서 주거 이야기로 돌아가, 은퇴해서 월세 내고 전세금 올려주고 싶은 사람 없다. 가능하면 내 집 가지고 싶다. 그렇게 평생 저축한 돈 들고 가는 곳이 부동산이다. 사람 마음이 또 기왕이면 의료 좋고 인프라 좋은 곳 살고 싶다. 수도권 부동산은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의 평생 저축+대출이 부동산에 쏠린다. 주택의 수는 어차피 똑같다. 서로 전재산 걸고 매수가를 올리니 소비성 제품으로 갈 여력이 부족하다.(주택 가격이 오른다면 시장에서 공급을 늘리겠지만, 지금은 건설사가 아파트 짓고 싶다고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다)
은퇴자의 소비는 어떻게 될까? 쌓인 재산의 많더라도 매달 들어오는 현금이 없다. 내가 쓰는 만큼 내 재산이 줄어드는 게 보인다. 그 전에는 매달 순 자산이 늘어나는 것만 봤을 것이다. 누가 적극적으로 돈을 쓸 수 있을까? 이미 고령화로는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고독사 한 노인의 집에는 금고가 있다. 그들이 젊어서 번 돈은 단 한 번도 시장에서 소비되지 못했다.
5억의 재산이 있는 은퇴자 A가 있고, 매달 100만 원의 연금이 들어오는 은퇴자 B가 있다. 소비는 후자가 더 잘한다. 전자는 옛 친구들을 만나도 카드를 꺼낼 때 생각이 많다. 후자는 일단 긁고 본다. 며칠 참으면 연금이 들어온다.
현가(Present Value)로는 A의 가치는 5억이고, B의 가치는 약 3억 3천만 원이다.
(*가정 : 은퇴자 나이 60세, 100세까지 40년 잔존 생존기간, 이자율 연 2%, 매년 1,200만 원 일시 수령)
돈은 A가 더 많지만 소비에 인색한다. 친구들에게 밥 잘 사고 손주 용돈 한 번이라도 더 주는 사람은 B다.
같은 현가(Present Value)라도 현금흐름(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의 형태가 일시불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한다.
왜?) 사실 100세면 차고 넘치는 가정이지만 혹시라도 101세까지 살까 봐 불안해서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고, 줄어든 걱정은 소비로 이어지고, 사용된 재화는 삶을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게 해 준다.
결론 : 기본소득은 개인의 삶을 정신적, 물질적(늘어난 소비)으로 풍요롭게 해 주고 재고도 줄인다.
기본소득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1. 자본주의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권
2. 대한민국이라는 주식회사의 주주로서 받는 배당금
3. 기술발전으로 인한 노동 없는 사회의 대안책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을 거 같아서 기본소득에 관한 보고서 하나 올리고 시작한다.
내용은 길지만 국민적 합의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1. 인간의 기본적
정치와 경제는 국가를 움직이는 두 개의 축이다.
경제는 재화 분배를 논하는 것이고, 분배의 방향성에 따라 좌와 우로 정치가 나뉜다.
과거는 왕정과 교회가 권력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정부와 기업이 그렇다.
만 18세 이상의 국민은 투표권을 가지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투표를 통한 참정권은 투쟁의 산물이다. 소수에서 다수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넓어졌고(스위스 여성 선거권 1971년), 최근에서 참여할 수 있는 나이 제한도 낮아졌다(대한민국 2019년 12월 개정, 선거권 19세에서 18세로 확대).
투표를 통해 잘못된 정당을 신판할 수 있도 있고 나와 맞는 정당을 지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업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다만 소비를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고 그렇지 않은 회사의 제품을 불매할 수는 있다.(선거권이 없을 때에도 힘 있는 사람들은 정치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구매력이 있는 사람에게 국한된다. 기업은 구매력 없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다. 돌보는 척은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 정도라면 가능하겠지만, 무한 경쟁 속에서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문제로 개별 기업의 도덕성 문제와 상관없다.
갈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순간 최저가 상품보다는 가성비 상품이 자주 보인다. 소득이 있는 사람은 가성비 제품을 살 것이고, 소득이 없는 사람은 최저가 상품도 사기 버겁다. 아마 기본소득이 생긴다면 최저가 상품으로 시장 일부가 움직일 것이다.
선별복지에서 수급대상으로 선정되는 것은 개인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 자체가 주홍글씨가 될 수 있다. 그렇다 기존 복지를 아주 없애자는 주장은 아니다. 병행 가능한 방안은 상단 보고서에 나와 있다.
2. 대한민국이라는 주식회사의 주인으로서 받는 배당금
국가와 기업, 21세기에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거대한 집단이다. 국가의 국민이라면 투표권을 가지고, 회사의 주주는 주식을 가지고 있다.
회사의 주주로서 권리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의결권이 있고, 회사의 수익을 분배받을 배당권이 있다.
국가의 국민으로서 권리는 간접민주주의를 통해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선거권이 있지만, 국가의 수익을 분배받을 권리는 없다. 국민으로서 국가에게 배당을 요구할 권리로서의 성격으로 보는 것이다.(허경영님 당신은 몇 수 앞을....)
3. 기술발전으로 인한 노동 없는 사회의 대안책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는 결국 특이점을 지나 자동화된 기기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에 의해 인간의 노동이 필요 없어지는 시점이 올 것을 지적했다.
노동이 없는 인간은 다른 소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자본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근로자는 그렇지 못하니 소비를 하고자 해도 소득이 없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가가 로봇세를 받아 소비를 할 수 있는 인간에게 직접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은 노동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찾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대체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작곡과 미술 같은 예술 분야까지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계가 나와도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소비"다. 궁극적으로 모든 생산물의 본질은 소비되기 위해 있다. 의자는 사람이 앉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번외니까 적당히 마무리하고 글 마칠게요.
제 목소리가 궁금하시다면 YOUTUBE : https://youtu.be/xyA6FB3CnlQ
안녕하세요 브런치에 경제 포스팅을 하는 쌤정입니다^^
투자가 의무가 된 요즘, 쉽고 재미있게 금융을 읽을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해 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 곳에서 바라보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경제에서는 하나의 이론만 가지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포스팅에 하나의 이슈, 하나의 툴(이론)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회차가 쌓여가면서 한 가지 사건을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