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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04. 2024

모래언덕, 그 곳

                            

  

어떤 곳은 다녀온지 얼마안되어 또 가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벼르고 별러도 가기 어렵다. 어디론가 떠나고, 도착하는 일엔 물리적인 거리가 우선 고려대상은 아닌지 모른다. 어쩌면 장소나 풍경과도 인연이라는게 있는것 아닐까. 특별한 이유가 있던건 아니었지만, 그간 내게 신두리사구는 후자의 장소였다.      


신두리 사구를 향하는 내내 오래 전 이맘때 그곳을 찾아가다 되돌아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즈음은 내 인생에서 가장 몸과 맘이 동시에 바쁜 때였다. 상가주택을 지어 3층에 입주했는데, 짓는 내내 다사다난했음에도 불구하고 1층의 상가 하나는 끝내 임대가 나가지 않아서 애를 태웠다. 아무리 그 당시 내가 하고 있던 일이 부동산중개업이었다해도 집이나 상가를 세주고, 사고 파는 일엔 임자가 있어야 하고, 때가 맞아야 했으니  아무리 내 집이라고해도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동네엔 대부분 근처 직장에 다니는 젊은이들이 살았다. 지금과 같은 웹툰, 웹소설이 나오기 전이었으니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책대여점에서 만화, 장르소설을 빌려봤다.

‘책대여점이 없구나!’

무릎을 친 나는 빈 상가에 책 대여점을 냈다. 그렇게 투잡인생의 서막이 열렸다. 자리만 잡히면 가게를 넘기리라 계획하고, 직원을 두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복병은 바로 그 ‘직원’이었다. 직원들은 자주 그만두었고, 갑자기 그만두었다.      


신두리 사구를 찾아가는 길에 봄이 가득했다. 오래전 신두리 사구를 찾아가다가 핸들을 돌렸던 날을 떠올렸다. 그애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애는 복병으로 거쳐간 몇몇 직원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     


올해 꽃은 일찍 피어날 거라고 했다. 하지만 기상청예보와 달리 봄이 오기는 어렵더니 오늘은 갑자기 봄이 온 듯 제법 덥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서해대교를 건너 서산과 태안을 지나고 나니 그제야 신두리사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좁은 지방도로 양옆의 조용하고 한산한 마을. 더디게 꽃이 피는 봄 풍경. 신두리 사구를 찾아가는 길은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며 오래전 이 길을 향해오던 날을 다시 생각했다.     


“왜 아침부터 내내 문이 닫혀있어요?”

연락을 준건 옆집 미용실 원장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책대여점으로 전화를 했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 직원이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 무슨일이 생긴건가 걱정이 되어 이번엔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신호가 가고 그애가 전화를 받았다. 왜 매장이 닫혀있느냐는 말에 말을 더듬었다.

“오빠가, 오빠가 오토바이 타다가 팔을 다쳤어요. 그래서 지금... 동네 병원에 입원했는데, 많이 다친건 아닌데...그래도 걱정이 돼서... 죄송해요, 사장님.”

어이가 없었다. 그애가 말하는 오빠란 동거하는 오빠였다. 걱정이야 되겠지만 미리 연락도 없이멋대로 매장문을 맘대로 닫아걸고 병원에 앉아있다니 괘씸했다. 

결국 신두리사구로 향하던 핸들을 돌려 매장으로 돌아왔다. 도착하는대로 그애도 정리했다. 어차피 오빠가 걱정되어 병원에 있고 싶은 눈치였다. 스무살이면 그럴때인가. 스무살이니 그럴수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씁쓸했다.     


“나 말야, 그러고 몇 달 후에 그애를 동네에서 봤어. 퇴근하는 길에 놀이터에서 그 오빠랑 싸우고 있더라.”

운전을 하는 나는 정면을 주시하며, 옆자리에 앉은 남편에게 말했다. 그날 그애는 울며 그 오빠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오빠 때문에 집도 나오고, 학교도 그만두고, 다 버리고 이렇게 왔는데 어떻게 오빠는 나한테 이럴수가 있어. 그때 그애가 사랑해서 다 버리고 온 오빠는 아무 대꾸도 없이 불량스러운 자세로 담배만 피우고 있던 기억이 났다.     


나는 늘 사막에 가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에 없는 사막이 궁금했다. 신두리 사구는 광활했다. 상상하던 사막의 그 막막함은 아니었지만, 온 언덕이 고운 모래로 가득한 풍경은 낯선 아름다움이었다. 멀리 바다를 바라봤다. 모래언덕 끝에 푸른 서해바다가 잇닿아 있었다. 모래바람이 살짝 불었는데, 바다냄새가 섞인것도 같았다. 

고운 모래언덕 사이로 데크를 따라 걸었다. 해안 사구는 파도를 따라 밀려온 모래가 다시 바람에 실려가 쌓여 만들어진다고 한다. 감히 짐작도 할수 없는 오랜 세월이 모래언덕에 담긴 것이다. 

파도에 밀려온 모래알갱이가 쌓이고 쌓여 모래언덕이 되는 것처럼, 살면서 우리 마음에도 크고 작은 모래언덕이 생긴다. 많은 인연들이 모래바람처럼 스쳐지나가기도하고, 커다란 모래언덕을 이루며 쌓여 머무르기도 한다.      


햇살이 화사했다. 이렇게 갑자기 온 봄은, 아마도 어느날엔가 또 훌쩍 떠나겠지만 오늘은 모래언덕과 그 너머 푸른 바다를 좀더 오래 바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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