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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08. 2024

바람속을 걷는 일

                            바람 속을 걷는 일          

해운대 바닷가에 왔다. 달맞이길엔 벚꽃이 유명하다고 해서 며칠 전부터 검색한 것은 ‘벚꽃’ ‘달맞이길’ 이런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부산까지 운전해서 내려오는 다섯 시간 내내 흐리고, 비가 흩뿌렸다. 작은 나라라고 말하지만, 어느 구간은 제법 비가 쏟아져서 와이퍼를 부지런히 돌려야 했고, 또 어느 구간은 빗방울은 찾아볼 수도 없이 바싹하게 말라 있었다. 이럴 땐 말한다. 작은 땅덩이는 아니야.     


부산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여행지다. 아빠의 근무지가 김해이던 시절 태어나 잠깐 살았던 곳이 부산이며, 지금은 돌아가신 이모가 일생 사신 곳이 부산이다. 엄마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이모는 ‘이모’라고 할 때의 친근함보다는 한참 위 연배의 어르신에게 느껴지는 어려움과 조심스러움이 먼저여서인지 우리는 늘 ‘이모’ 대신 ‘부산 이모’라고 불렀다. 부산에 사는 그 이모 말고 또 다른 이모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처럼 내가 태어난 곳이라는 무조건적인 친근함에, 이모가 살던 곳이라는 막연한 익숙함도 있지만 그와 함께 부산에서는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낯섦도 있다. 그 이유라면 역시 관광지로서의 부산일 터이다. 내 고향이며, 일생을 살아온 수원에서 보는 부산은 언제나 멀고 막연했다.     

이렇듯 마음으로는 가깝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육지의 제일 아래쪽에 있는 부산을 자주 찾기는 어려웠다. 십 년에 한 번 와보지도 않고 지나간 시절도 있었는데 근래 부산을 한 해에 한두 번은 찾는다. 남편의 출장길에 한두 번씩 따라나서면서부터다. 


출장길의 동행이므로 하루 이틀을 머물러 있다 갈 뿐이라 매번 벡스코 주변이거나 부산역 주변을 돌아봤다. 남편이 거래업체와 미팅을 하거나 세미나에 참석하는 동안 나는 혼자 부산을 만났다.      

이번 행선지는 해운대라고 했다. 해운대라면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마치 푸른 바다 위를 달려가는 느낌이 드는 광안대교가 떠오르고, 어린 시절 해운대에서 놀던 추억도 함께 따라온다. 몇 해 전 남편 출장길에 광안대교를 건너 해운대에 왔다가 나가는 길이었다. 들어올 때는 그 감흥이 없었는데 해운대에서 부산역 방향으로 나갈 때 광안대교는 장관이었다. 난간 바로 옆은 푸른 바다였다. 마치 바다 위를 운전해 가는 듯한 (물론 바다 위 다리를 건너는 것이니 맞는 말이겠지만) 착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때 마침 플레이리스트에서 재생되는 곡이 ‘수궁가’였다.      


그때의 부산을 생각하며, 지금 시기의 부산은 어떨까 궁금했다. 연초에는 다들 말했다. 올해 꽃은 일찍 필 것이라고. 하지만 자연은 참 알 수 없다. 일찍 필 거라는 꽃은 오히려 예년보다 늦게 핀다. 꽃이 없는 축제를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사람이 꽃의 때를 맞추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러고 보면 자연이란 사람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가뜩이나 꽃이 늦게 핀다는 소식이 사방에서 날아드는데, 날씨마저 집에서부터 오는 내내 비가 흩뿌리고 흐렸으므로 달맞이길의 벚꽃 구경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런 봄비라면 꽃을 피울까, 아니면 봉오리도 채 열지 못한 꽃망울들이 모두 떨어져 나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바닷가 날씨는 말 그대로 비바람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요란스럽고 두서없이 불어대던지 비의 양은 많지 않았어도 사방으로 빗방울이 궁중에서 흩뿌렸다. 바닷가의 바람이라는 것이 빌딩풍처럼 위력이 대단한 것이기도 해서 바다 가까이 갈수록 바람은 더욱 거세어졌다.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우산이 뒤로 꺾어졌다. 그 바람 속을 겨우 뚫다시피 걸어 카페에 들어와 앉아서 사방으로 날린 머리를 정리하며 창밖 풍경을 봤다. 


잠시 전의 그 난리 통과 달리 창밖은 평온하게만 보였다. 흰 파도가 높게 밀려와 부서졌고, 바닷가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잔뜩 흐린 하늘, 그리고 똑같이 흐린 바다. 그런데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렇게 평온하게만 보였다. 신기한 일이다. 바람 하나 빠졌을 뿐인데 모든 것은 풍경이 되고, 그 풍경은 평온하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바람이 그런 것일지 모른다. 땀을 식혀주는 소슬바람이 불거나 우산이 뒤집히는 광풍이 몰아치거나 간에 그 바람이 없다면 삶은 이렇게 순식간에 풍경이 되는 것이다. 잠시 앉아 풍경을 봤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흐린 하늘과 바다를 봤다. 


이제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다시 바람속으로 들어가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잠깐 바람을 피해 쉬었으면 되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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