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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14. 2024

비대면의 얼굴

                                

목이 따끔따끔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이물감이 느껴졌다. 혹시나 싶었지만 열은 없고, 키트검사를 하니 코로나도 아니었다. 목감기인듯했다.

돌아가신 아빠는 약을 참 좋아했다. 아빠뿐 아니라 친가 쪽 어른들이 대부분 약을 좋아하셨는데, 뭔가 알 수 없는 약을 참 여러 종류 드시곤 했다. 약만 드셔도 배부르겠어. 엄마는 옆에서 약을 드시는 아빠를 놀리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반대로 약을 멀리했다. 내가 아프고 말지, 약은 되도록 먹지 않겠다는 게 엄마의 신조라면 신조였다. 부모님이 이렇듯 약에 관해서라면 극과 극의 성향이었다.

나는 굳이 구분하자면 중간쯤 되는 사람 같다. 영양제나 몸에 좋다는 음식을 챙겨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디 통증이 있다면 참기보다는 약 한 알을 먹고 빨리 낫는 쪽을 택한다.      


서두가 길었다. 지난주 목감기 증세가 시작되자 나는 바로 집 근처 내과에 갔다. 의대 정원 문제로 병원에 의사가 없다고 하는데 개인병원이어서인지 평소와 같이 진료했다. 신기한 건 환자도 없다는 것이었다. 다들 의사 파업이라니 참고 병원을 안 다니는 걸까, 아니면 그간 너무 쉽게 참지 않고 병원에 다녔던 것일까.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대기 환자도 없이 텅 빈 병원에 바로 호명이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 목이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다. 옆에서 간호사가 열을 쟀다.

“열은 없네요. 목감기약 처방해드릴게요. 뜨거운 거 말고 찬 거 드세요.”

의사는 거짓말처럼 이 세 마디가 전부였다. 당연히 목구멍을 확인할 줄 알고 입을 열 준비를 하던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이 아프다는데, 목구멍은 보지도 않는다니 좀 어이가 없는 기분이었다.     


처방전을 들고나와 약국에서 약을 받아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뭔가 찜찜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안 봐도 안다는 것인가?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인가? 내 목구멍을 굳이 보여준다고 해서 금방 나을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의사에게 가는 건 그 처방전 한 장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지 않나 하는 맘이 들었다.      

3일치 약을 먹고 목감기는 다소 가라앉았다. 이대로 나으려나 싶어서 다시 약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아지던 목감기가 다시 심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목에 무언가 끼워 넣은 것처럼 불편했다. 병원에 다시 가야 하나, 하다가 문득 얼마 전 의사 파업이 시작되며 비상용으로 깔아두었던 비대면 진료 앱이 생각났다. 어차피 병원에 가도 의사는 내 증세를 듣고 목감기약만을 지어주었을 뿐이다. 얼마나 부었는지, 목구멍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아예 보지도 않았던 생각이 났다.      


결국 나는 처음으로 그 비대면 진료라는 것에 도전했다.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낯설었다. 목이 아프니 이비인후과를 검색해서 진료 신청을 했다. 예약한 오전 8시 40분에 정확하게 의사의 전화를 받았다. 의사는 꼼꼼하게 물었다. 열을 있는지, 목이 어떻게 아픈지, 언제부터 아팠는지 확인했다. 다른 증세 여부도 하나하나 체크했다. 먹고 있는 약의 여부와 행여라도 약 부작용이 있었는지도 확인하고서야 약 처방을 주었다. 의사와 통화한 시간은 십 분 정도였다. 잠시 후 앱에 처방전이 떴다. 그리고 병원 직원이 다시 전화 와서 혹시 동네약국에 조제약이 없을 수도 있어 대체 약 조제 가능으로 처방전을 냈지만, 만약 그도 없다고 하면 다시 처방해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앱에 뜬 처방전은 집 근처 약국을 선택해서 팩스송부했다. 물론 이 역시도 앱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집 앞 약국에 가서 조제한 약을 받아왔다.   

   

신기하고 편리한 세상이다. 모든 것은 물 흐르는 듯 진행됐다. 스마트폰 하나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니 스마트폰을 찬양하고 싶다가, 이런 시스템이 놀랍기도 했고, 또 한편 앱에 등록한 내 개인정보와 신용카드 결제정보들을 생각하면 살짝 무섭기도 했다. 

알면 편한 세상이다. 모른다면 어떤 쪽일까. 모르니 불편함도 못 느끼는 걸까, 아니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삶인 걸까. 

아무튼 비대면은 이제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어쩌면 이미 부분이 아니라 전체의 많은 축을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느끼거나, 혹은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 체온을 나누지 않고, 호흡을 서로 느끼지 않고도 삶이 굴러간다. 편하고 좋다가, 어쩐지 씁쓸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것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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