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라는 말

내 몸에서 벌어진 일을 내가 가장 늦게 알았다

by 봄날

“난소에 혹이 있네요. 이렇게 커지도록 뭐 하셨어요?”

의사의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린다. 그러게, 나는 뭘 하느라 매해 반복되는 건강 검진도 건너뛰고, 산부인과 진료는 그토록 회피하며 살았을까? 바쁘다는 말,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까?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한 걸까? 놀람과 분노와 슬픔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열 두 살 때부터 생리통은 늘 내 몸을 지배해 왔다. 주기적으로 울컥 울컥 몸 안에서 내뱉는 혈 덩어리들을 마주할 때마다 겁이 났다. 잔뜩 웅크린 채 배를 부여잡고 버티는 시간이 많았다. 결혼 후 바로 이어진 임신으로 힘들었지만, 열 달 동안 생리가 없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출산 후에는 생리통도 좀 잦아드는 것 같아 안심하기도 잠시, 어느 날 갑자기 옆구리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찾아왔다. 의사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요즘은 의술이 발전해서 비교적 간단한 기술로 혹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하루 이틀이면 퇴원할 수 있으니 서둘러 수술 일정을 잡자고 했다.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막둥이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참이었다. 무섭고 서러운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걱정부터 떠올랐다. 아이들은 당장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 직장에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머릿속이 바빠졌다. 결국 지방에 계신 부모님이 상경하시기로 했다. 관리자를 비롯한 여러 동료에게 머리 굽혀 부탁했다. 어렵게 시간표를 조정하고 휴가를 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휴가는 허락을 구해야 할 사항이 아니라 나의 권리지만, 그 시절에는 그렇게 눈치가 보였다.


차가운 수술실에서 잠이 들었고, 다시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다. 날카로운 통증이 무겁게 배를 눌렀다. 그래도 무사히 끝이 났구나, 싶어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가족들의 표정이 복잡 미묘했다. 난 괜찮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가족들은 희미하게 억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수술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다. 수술 중간, 부모님은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는 동의서에 다시 사인을 하셔야 했다. 악성 종양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내 몸에서 벌어진 일을, 내가 제일 늦게 알았다.


내 몸속 장기 하나가 이미 제거된 뒤였다. 매달 주기적으로 나를 괴롭혔던, 그러나 내게 가장 큰 선물인 아이들을 만나게 해준, 자궁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내게, 그래도 다행이라고 했다. 난소암은 병이 한참 진행된 뒤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도 일찍 발견한 덕에, 종양이 다른 기관으로 번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에 하나 암이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가족들의 위로가 남의 일처럼 들렸다.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 이야기.


어떤 이들은 대놓고 쯧쯧 혀를 찼다. 그 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몰랐냐, 진단을 받았으면 몇 군데 다른 병원에도 확인은 안 해봤냐, 좀 더 알아보고 더 공신력 있는 병원에서 수술하지, 겁도 없이 첫 병원에서 덜컥 수술받았냐로 이어지는 조언, 내지 참견의 말들을 듣고 견뎠다. 별일 아니라는 듯, 암 그거 뭐 대수냐는 듯, 의연하게 그들을 대했다.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제일 먼저 들어야 했던 부모님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철딱서니 아이들 앞에서, 나는 누구보다 씩씩해야 했다.


속으로는 겁도 나고 화도 났다. 그저 가벼운 수술이라는 의사의 말을 믿었고, 직장에도 가족들에게도 길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집 가까운 병원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몸 안에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을 줄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항변하고 싶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바람대로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자랐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열심히 일하고, 번듯한 가정을 이루어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내 몸과 마음을 갈아 넣었던 결과가 이거였나, 내 성장 과정을 스쳐 간 모든 이에게 악다구니 치며 따지고 싶기도 했다.


자신을 아끼는 것이 우선이라고, 스스로 몸과 마음부터 지키라고,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온몸과 마음을 바쳐 가족을 돌봄과 직장 일에 나 자신을 혹사하지는 않았으리라. 내 몸의 작은 신호에도 병원을 찾아 진료 받았으리라. 적어도 병 진단을 받고 난 즉시, 직장과 가족에게 끼칠 피해부터 생각하고 걱정하진 않았으리라. 소중한 나 자신을 위해 더 많이 시간을 들이고 발품을 팔아, 더 신중하게 치료 방법을, 병원을 선택했으리라.


그래도, 다행이라는 말은 맞았다. 이후의 지난한 항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나를 둘러싼 많은 이들의 진면목을 보았다. 초기에 암을 발견한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덕분에 아이들이 이만큼 자라는 것을 보았다.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도 계속하고 있다. 그간의 고통과 눈물이 있었기에, 웬만한 좌절에 굴하지 않을 맷집을 키웠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누군가에게 쉽게 말하지는 말기 바란다. 다행이라는 말은 타인에게 쓰는 말이 아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쓰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