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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선 Feb 18. 2021

왜 갑자기 비건을 지향하게 되었나요?

"왜 갑자기 비건을 지향하게 되었나요?"

비건 지향을 결심한지 4일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사실 계기가 뭔지 생각해 보면 갑자기는 아니다. 축적이 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머릿 속 한구석, 마음속 한구석에 차곡차곡 모아 두다가 이제는 들여다볼 용기가 생겼다고 하는 편이 맞다.


축적의 시작은 나의 회사 동기로부터이다. 인스턴트 음식과 혼맥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리던 동기. 늘 건강이 걱정되던 동기였다. 그런 친구가 어느 순간 비건의 삶을 시작했다고 했다.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속으로 더 걱정됐다. 영양실조로 쓰러지진 않을지 말이다. 페미니즘에서 시작해서 동물 복지에 대해서도 꽤나 진지했고, 그 이후 비건의 삶을 시작하고 환경에까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그 친구는 SNS 활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나에게만큼은 인플루언서였고,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동물이  어떤 식으로 길러지는 지에 대한 내용이나, 유제품을 만들기 위해 동물에게 가해지는 인간의 폭력에 대한 내용 등을 간접적으로 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이 당황스럽게 느껴졌고,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었다. 그리고 반대를 위한 반대도 하고 싶었다. 그 기저에는 기본적으로 내가 가공 식품을 다루는 식품공학과 출신인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소 웃긴 이유지만 고기를 못 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그 친구 덕분에 고기를 먹을 때마다 가슴 한 켠 어느 곳에 찜찜함이 항상 남아있었다. 그리고 SNS에 내 앞의 먹음직스런 고기를 자랑 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나의 건강이다. 나는 한동안 역류성 식도염으로 크게 고생했다. 대학 병원도 여러 번 가서 진료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완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치료는 불가능하지만 워낙 오래되다 보니, 이제는 어떤 경우에 통증이 느껴지는지 예상이 가능하다. 불편한 것을 바라볼 때 느끼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붉은 고기를 한 번에 많이 먹거나, 이틀에서 삼일 연속으로 먹게 되면 통증이 나타난다. 그래서 내가 컨트롤이 가능한 붉은 고기를 줄이는 계기가 됐다.


세 번째는 아버지의 건강이다. 최근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대학 병원 중환자실에 들어갔고, 긴박하게 그 상황이 진행되면서 수술을 하게 됐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심장 혈관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으셨다. 심장 아래쪽으로는 아예 피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심혈관질환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평소 아버지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담배도 끊으신지 30년이 넘었다. 더구나 어머니와 함께 간간이 등산도 다니고, 집 앞 공원을 자주 산책도 하셨는데 말이다. 원인은 아마 식단이 아닐까 싶다. 어찌 됐든 나로서는 가족력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앞선 글처럼 나의 브랜드에 대한 진정성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이게 가장 최근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 모르겠다. 기존의 비건 브랜드들은 순하고 피부에 좋다고 말한다. 고객을 속이는 광고를 하고 있다. 비건과 순함. 그건 별개의 문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고객이 비건 화장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순함 때문이 아니라, 이 브랜드를 통해 본인의 가치관을 지킬 수 있다는 것 때문이어야 한다. 그런데 직접 운영해보니 생각보다 고객은 전자의 광고에 익숙해져서 여전히 순한 것을 원해서 비건 화장품을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유통사에서도 그런 마케팅을 기대한다. 이것을 해결할 방법은 결국 고객의 비건에 대한 인식과 인지의 수준이 올라가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내가 동기에게 영향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비건지향이 되어서 체험하고, 공부하고, 탐색해보고 싶다. 막상 시작하니 마음이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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