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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배우 Jan 19. 2022

자가 격리

단편 소설 

 봄부터 초여름까지 승재는 오랫동안 작품에 매진했었다. 기획을 하고, 대본을 쓰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장장 4개월의 긴 시간이었다. 제작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돼서 제작을 한 건 아니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승재는 배우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기획, 각본, 연출, 출연까지 했다. 4개월 동안 온전히 하나의 작품에 몰입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에너지가 남아 있질 않았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선 리플레쉬가 필요했다.   

   

 ‘여행’

     

 승재의 머릿 속에 올라 온 두 글자 ‘여행’ 그런데 코로나 시국에 어디로 가야 하나? 늘 여행에 대한 갈망이 있었지만, 많이 다녀보지는 못한 승재였다. 대전에 있는 친구가 떠올랐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군산도 다녀와야겠다 생각했다. 승재는 일상에서의 부담감과 무게감을 다 내려놓고 온전히 지금을 누리며 여행에 집중했다.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먹었다. ‘역시 리플레쉬에는 여행만 한 게 없다.’ 생각하며, 다시 시작하잔 마음으로 집으로 올라오는 길 차 안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감독님이었다.     


“승재야. 민준이 코로나 확진이래.”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코로나는 티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 감독님과 민준이는 영화팀 소속이었다. 더군다나 대전을 내려오는 날, 영화팀 모임이 있었고, 함께 후시 녹음을 진행했었다. 영화팀 모임에 모인 멤버만 십여 명이 되었었다. 얼마 전, 이 영화팀에서 찍은 영화 “5월 푸른 날” 후시녹음을 하는 날이었다. 5.18을 소재로 한 영화였고, 광주시위대의 음성을 녹음했다.     


“군사 독재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목이 터지라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더 소리를 질러댔다. 

 전화를 받은 승재는 순간 우리가 마스크를 꼈는지 끼지 않았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승재는 영화팀의 리더다. 감독님의 목소리에도 당황스러운 느낌이 감돌았다. 우리의 영화를 출품하기로 한 날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시간 내에 편집을 마쳐야 하는데, 사무실이 셧다운 된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웠지만 멤버들에게 이 사실을 얼른 알리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첫 번째 전화. 멤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연결되지 않는 통화연결음이 마치 승재의 속과 같았다. 차 안에서 승재는 다른 멤버에게 전화를 건다.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받았다.’     


“여보세요. 형님. 어떻게 주말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영화팀의 맏형인 영광이었다.     


 “어.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냐? 너 나한테 전화 안 하잖아. 나 어머님 생일이라 가족들이랑 밥 먹고 이제 들어가는 길이야.”     


“네? 사실..”     


 승재는 잘못한 건 없지만,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큰 죄를 짓는 거 같아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응? 뭔데? 이번에 또 영화 들어가냐? 촬영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에도 내가 주인공이야?”     


영광은 평소처럼 승재에게 장난을 쳤다.     


“형님. 민준이가 코로나 확진이래요.”     


“에이 ~ 장난치지 마. 무슨 소리야?”     


“진짜예요. 방금 감독님한테 연락 받고, 연락 드리는 거예요. 아 홍석이한테 연락 왔어요. 제가 지금 운전 중이라 좀 더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승재는 집에 도착해서 먼저 컴퓨터를 켰다. 검색창에 “확진자 접촉자”라고 쳤다. 질병 관리청에 전화를 하라고 나왔다. 질병 관리청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방금 제가 전화를 받았는데요. 보건소는 아니고요. 같이 있었던 사람에게 연락을 받았는데요. 수요일에 같이 녹음을 해서요. 아.. 우리가 영화팀이라서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검사는 받을 수 있나요?”     


“네. 담당 보건소에 먼저 연락하시면 될 거 같아요.”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     


“아직 승재님의 명단이 저희 관할 지역으로 넘어오지 않아서요. 코로나 검사를 즉시 할 수가 없으세요.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연락이 따로 갈 거예요.”     


승재는 속이 타들어 갔다. 갑자기 지금까지 멀쩡하던 몸이 미열이 있는 거 같이 느껴졌고, 두통이 심하게 왔다. 불안감이 급습했다. 승재는 여행하며 대전에서 친구에게 대접을 받고 왔었다. 게다가 친구 여자친구와도 계속해서 밥을 먹었었다. ‘나는 좀 아픈 건 상관이 없는데, 이게 무슨 피해인가? 나 때문에 다들 일상이 멈추는 것이 아닌가?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승재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올라왔다.          


 승재는 정확히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집에서 대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멤버들의 단톡방이 울리기 시작

했다. 가족과 함께 식사한 멤버, 오랜만에 고향을 내려간 멤버, 공연을 보러 갔다가 다행히 극장 앞에서 전화를 받은 멤버. 다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리더인 승재는 먼저 이들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했다.      


 단톡방에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아니. 나 지금 어머니 생신이라 함께 밥 먹었는데, 이게 뭐야?     

- 그런데 민준이는 왜 오늘 말했어? 미리 알았던 거 아니야?”     

- 언제 알았는데, 이제야 말해?     

- 나 고향 내려와 있는데, 큰일이네..     

- 거짓말한 거 아니야?     

- 어떻게 된 건데?”     


 승재는 이 혼란을 잠잠히 지켜보기만 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잘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서로의 목표인 영화 만드는 것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감내하면서 해낼 수 있었다. 막상 일이 터지니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멤버들을 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조치가 필요했다.     


 “저도 정확히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일단 물은 엎질러졌으니 문제를 문제 삼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이걸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에 초점을 맞추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코로나 검사를 받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고요. 검사를 받고 나서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 같아요. 결과에 따라서 또 다르게 대응하면 어떨까요?”     


승재는 침착하지 않았지만 침착하게 톡을 써 내려갔다.     


- 아니, 코로나 걸리면 어쩔 건데? 리더 너가 책임질 거야? 내가 지금 만난 수 많은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냐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깐요. 일단, 감정 추스르고 기다려보는 게 어떨까요? 그런다고 지금 달라질 건 없잖아요.”     


 확진자인 민준이는 단톡방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민준이가 걱정되었다. 물론, 승재도 불안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확진되면 자신과 접촉한 사람들에게 피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만약에 자신이 확진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민준이도 똑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했다. 민준이에게 연락을 했다.     


“민준아. 몸은 괜찮아? 마음고생이 심하겠다. 다른 멤버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본의 아니게 그런 말들을 했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너 몸 회복하는데만 신경 써.”     


 단톡방에는 몇몇 멤버의 검사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승재는 아직 관할보건소에서 연락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일단, 오늘은 집에 있으면서 연락을 기다려야겠다. 승재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건, 지금 내가 확진자와 밀접 접촉을 했다는 사실을 함께 여행한 친구에게 말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다. 말을 하면 거기도 수많은 불안감에 휩싸일 것이고, 일상이 멈추게 된다. 아직 검사를 받지 않은 상황이고, 음성이면 모든 것이 평온하게 넘어갈 수 있는데, 말을 하지 않고 양성 판정을 받으면 상황이 더 커지게 된다. 승재의 머릿속은 말하느냐? 하지 않느냐? 로 가득 차 있었다. 불안감으로 가득 찬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 검사를 받은 멤버가 음성이라고 연락을 해왔다. 다행이었다. 다음 날이 되었는데도 승재에게 보건소에서 연락이 가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판단이 되어 보건소로 향했다. 솔직히 화가 났다. 뉴스로는 K-방역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막상 실체를 보니 아무 시스템도 잡히지 않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밀접접촉자를 그냥 이렇게 내버려 둬도 되는 것인가?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확진 판정이 났는데, 조치가 없었다고 하면 땡 아닌가? 란 생각이 들었다.     


 보건소에 도착하니 방역복을 입고 바쁘게 지나다니는 의료진들이 보였다. 이 더운 날, 방역 마스크 안으로 의료진들의 땀이 맺힌 것이 느껴졌다. 승재는 순간 경건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국가 코로나 방역 시스템에 대해 욕을 했던 마음이 의료진들이 방역복을 입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보면서 반성하게 되었다. 이분들에 대한 미안함과 존경심이 생겼다. 이곳은 티비로만 접하던 곳이었다. 전쟁터였다.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이기심으로 승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체를 위해서 행동하지만 각자는 자기들만 사정이 있었다. 승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보건소에서 지나가는 한 의료진을 붙잡고, 자초지종 설명을 했다. 의료진은 알아보고 나오겠다고 하면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5분쯤 기다렸을까? 승재의 명단이 없다고 했다. 아직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보건소에서 관할보건소로 명단이 넘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명단이 없으면 검사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또 좋지 않은 마음이 올라오려고 했다. 그런데 승재에게 설명을 해줬던 의료진이 윗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오더니, 검사를 해주겠다고 했다. 이름을 쓰고, 전화번호를 쓰고, 신원을 확인하고, 얇은 투명 통을 받았다. 그 안에는 면봉이 있었다.     


 코로나 검사는 큰 유리통에 팔만 나올 수 있게 되어있는 곳에서 진행이 되었다. 의료진은 안에서 방역복을 입었지만, 밖으로 팔을 꺼낼 수 있었다. 거기서 승재가 가져다준 통을 열어 기나긴 면봉을 승재의 콧속 깊숙이 찔러넣었다. 뇌까지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검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의료진들은 집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밀접 접촉자이기 때문에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마음이 더 불안해지고, 갈팔질팡이 되었다. 밀접접촉한 모든 멤버가 검사를 했다고 연락을 받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냥 기도하는 것이다. 제발 음성이 나오길 말이다. 아직 함께 여행한 친구에게 연락을 하지 못 했다. 미안해서 도저히 연락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속으로 외쳐도 만약에라는 공포가 승재를 덮쳤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존재가 이렇게 사람을 공포스럽게 만들 수가 있는 것인가? 아직 코로나의 원인도 그리고 어떻게 되는 건지도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언론에서는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만 더욱 부추겼다. 코로나에 대해서 검색을 해봐도 다 다른 이야기들을 해댔다. 무엇이 맞는 것인가? 무얼 생각해야 하고, 무얼 믿어야 하는 것인가? 누군가에게는 코로나가 목숨을 앗아갈 정도가 무서운 것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감기만도 못한 존재로 넘어갔다고 한다.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폐의 기능이 손실되고, 미각이 사라진다는 내용도 있었다.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혼자 살고 있는 승재는 오로지 코로나의 공포를 ‘아닐 거야.’라는 미약한 믿음으로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문자가 왔다. 문자가 온 것은 음성이라는 내용이다. 양성이었으면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우리 멤버 중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민준이도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아서 말이다. 승재는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음성이란 결과를 받고 함께 여행했던 친구에게 사실을 말했다.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승재는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일단, 확진이 아닌 것이기에 자가 격리는 하나의 경험이라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배우인 승재는 평소에 상상을 많이 한다. 자신이 사는 동네를 거닐면서 이 동네로 여행을 온 여행객의 시선으로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려고 노력해왔다. 자가격리를 하면서 어떤 놀이를 할까? 이렇게 집에만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을 했다.      


 집을 좋아하는 승재이지만, 최근에는 작업들로 인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이 없었다. 일단은 쉬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뒤, 나라에서 주는 식료품들이 도착했다. 즉석요리들이 대부분이었다. 혼자 사는 승재에게는 큰 양식이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했던가? 평소에 잘 쉬지 못하는 승재에게는 자가격리가 오히려 꿀 같은 시간이었다. 쉬면서 이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단 마음이 올라왔다.     


 승재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늘 부족함에 한계를 맛보아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핑계되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부터 다른 삶을 살고 싶으면 다른 반응을 하며 살아야겠다 생각을 하고, 실천하면서 사는 중이었다. 이렇게 상황이 터졌을 때, 다른 반응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오면서 세운 계획에 유튜브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참에 유튜브를 기획하고, 촬영을 하고,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승재는 자가격리 하는 동안 쉬면서 다른 반응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자가격리 시간은 채워졌다.     


 모두들 두려움에 떨게 했던 코로나와 동행이 끝나고, 처음으로 영화팀 모임이 있는 날이다. 다행이지만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     


 승재는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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