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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배우 Dec 25. 2021

100만 원 Flex, 한을 풀다.


2015년. 1월. 공연을 올리기 약 한 달 전, 공연 제작비가 부족했다. 작게 하려던 공연은 극장을 대관하게 되고, 극장 대관료, 무대 제작비 등 지출이 예상보다 더 커졌다. 단원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꾸러 다니기 시작했고, 나도 난생처음으로 대출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단원들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았고, 나머지 백만 원 정도가 부족했던 거 같다. 


그 시절, 나는 고향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계에 총무를 맡고 있었다. 돈을 내가 관리하고 있었기에 계모임의 대표인 친구에게 곗돈에서 100만 원 정도 빌릴 수 있을까? 물어봤다. 친구는 단체 돈이기 때문에 그건 좀 힘들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주겠다 이야기했다. 뭔가 친구에게 돈을 빌리기는 마음의 어려움이 있었기에 일단은 좀 더 알아보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연극을 할 때, 연기적으로 심리적으로 모든 게 불안한 상태였고, 매일같이 울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연기한다고 현실적인 건 내팽개치고, 내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 앞 바라지를 제대로 하지도 못 했다. 부모님께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30살이 되기까지 돈을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었고, 100만 원이라는 돈은 나에게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떻게 나의 마음을 아셨는지, "돈 필요하나?"란 말씀을 하셨고, 너무나 멋지게 "남자가 100만 원 가지고 울면 안 돼."라고 하시면서 다음 날 나에게 연극 제작비 100만 원과 생활비를 쓰라고 100만 원을 보내주셨다. 


돈을 무시하면 돈이 내 인생을 무시하는구나. 깨닫고 2016년 1월에 처음으로 적금을 들었다. 한 달에 50만 원씩 저축을 했다. 스케줄 관리를 하며 알바를 하던 시절이다. 연극동아리 강사, 배달, 행사, 경비, 대리 등등 스케줄 조절이 가능한 알바는 다 했다. 그렇게 해도 연기 스터디를 하면서 내가 할 걸 하면서 해야 했기 때문에 한 달에 버는 돈은 150만 원 남짓이었다. 월에 1/3을 저축하며 1년 동안 모은 돈은 600만 원이었다. 


 31살. 600만 원을 처음으로 만져본 것이다. 언제나 좋은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큰돈이 있으니 100만 원 정도야 좋은 일에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나에게 있어서 600만 원도 큰돈이지만 500만 원도 큰돈이니 말이다. 100만 원을 세 군대에 기부를 했다. 예전에 잠깐 알바로 있었던 NGO단체와 폐지 줍는 노인들을 돕는 곳. 그리고 멀리 있는 곳보다 가까운 곳에 도움을 주자 마음을 먹고, 가까운 곳에 어려움이 있는 곳에 돈을 흘려보냈다. 


 나의 삶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계속해서 그렇게 미친 듯이 알바를 해나갔다. 마음의 여유가 없고, 힘들 때마다 그 100만 원이 생각났다. 기쁨은 하나도 없었고, 심지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이렇게 미친 듯이 하는데도 늘 쪼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먹을 때마다, 살 때마다 몇 번씩, 몇십 번씩 고민하며 구매를 하면서 그 돈이 생각났다. 


 삶이 조금씩 나아졌다. 기부를 하고, 기쁨이 없고, 아까워하는 나의 마음이 참 미안했다. 그 한을 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100만 원은 나에게 큰돈이다. 목표를 잡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 말을 뱉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빠르면 올해, 늦으면 내 년에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 같았다. 


 다만, 내가 조금이라도 아까워하거나, 기쁨이나 감사가 없다면 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목표도 세웠다. 그런 나의 마음을 신이 이쁘게 봐주셨는지, 코로나 예술로 19라는 지원사업공고가 떴고, 기획서를 작성하고 제출했는데, 내가 선정이 되었다. 막상 돈이 들어오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뱉어놓은 말들이 있었기에 기도를 하고, 기쁨과 감사로 예전부터 봐왔던 NGO단체에 기부를 하게 되었다.


 감사와 기쁨으로 내어놓을 수 있었다. 한을 풀 수 있게 되었다. 원래 내 돈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물론, 내 통장을 거쳐갔지만 말이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나아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삶은 가치가 있다.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했다. 내가 자랑하기 위해서 기부를 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100만 원짜리 T를 샀다고 자랑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란 생각도 했다. 시계자랑, 차자랑, 옷자랑도 하는데 기부자랑은 어떤가? 하고 말이다. 내가 기부한 곳은 러빙핸즈라는 곳이다. 우리나라 1018의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이다. 마땅히 사랑받아야 하고, 관심받아야 할 나이에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이다. 세상은 나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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