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토마토 키우기

by 김서울

구청에서 받은 상자텃밭에 방울토마토를 키우고 있다. 물만 줘도 알아서 잘 자라고 빨간 토마토가 올망졸망 열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 토마토를 키우겠다고 했을 때 가지치기를 잘해주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열매를 맺는 가지만 남기고 근처 가지들을 정리해주지 않으면 영양분이 분산되어 잘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겨우 모종 두 개라 부담 없이 내키는 대로 정리해 주곤 했는데,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오가는 동안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더니 잎이 무성한 작은 정글이 되었다. 제때 못 땄더니 너무 익어 터져 버린 알들을 떼어주고 꽃이 필 것 같지 않은 가지들도 잘라내는데, 문득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기회 없이 스러진 가지들도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스친다. 흔히 사람들이 사용하는 표현 중에 싹이 보인다거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아마 수세기에 걸친 농사의 경험에 빗대어 쓰이기 시작한 관용구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싹은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고 싹수가 노랗던 잎도 어쩌면 잘 자랄 수 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농사꾼도 아니면서 그걸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방울토마토가 아니라 나의 아이라고 생각하면 더구나 그렇다.


며칠 전 좋아하는 작가님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해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날의 영화는 CODA(2021)로 농인 가족에서 유일한 청인으로 자란 자녀의 이야기였는데, 장애라는 특수한 상황을 배제하고서도 우리는 모두 부모와의 미묘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 공통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자녀로 태어나 부모가 되어 나의 부모와 나의 자녀 사이에 끼어있는 입장이 되었다. 인간의 부모자식 간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자생할 능력이 생기는 즉시 각각 분리하여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야생의 동물들과는 분명 다르다. 내가 낳았지만 나와는 온전히 구분되는 어떤 타인인 자식. 그러나 세상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며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어떤 존재. 그러나 우리는 그토록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수많은 희생을 할 각오가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자식을 어디까지 받아주고 어디까지 보낼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날 들었던 작가님의 코멘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었다.


어릴 때는 사랑하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혀 별개의 영역이라는 걸 알게 된 지금은 나의 아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수시로 고민하게 된다. 이해와 사랑이 다른 것임을 알게 된 나는 내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와도 아마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구분하기에 아직 어린 내 아이는 부모가 나를 덜 사랑하여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길 확률이 높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부모로서 나는 아이가 더 넓고 먼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과 너무 멀리 떠나가 돌아오지 않게 될지도 모르는 그날에 대한 걱정 사이에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부모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런 마음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아무튼 당장은 내가 이 아이의 어떤 가능성이나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가장 우려되는 점인데, 그런 마음이 방울토마토 가지 사이로 비집고 나온 것 같다. 나는 숙련된 농부도 아니고 준비된 부모인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다만 토마토나 아이 모두 열심히 지켜볼 작정이다. 모두가 서툴고 어색하겠지만 함께 살아가는 동안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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