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모임자리에서 봤지만 긴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선배가 있었는데 지나가다 마주쳐 인사를 했다.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준 선배의 그 표정에서 나는 충격을 먹었다.
‘충격’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나는 소심 그 자체였다. 특히 사람관계에서. 그 선배는 유난히 활달하고 재미있는 캐릭터여서 무대 중심에 서는 사람이었고 내가 생각한 선배의 이미지는 웃으며 인사를 받아줄 거라 기대했었나 보다. 그런데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그 선배의 모습에서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그 시기즈음에 심리학을 전공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마침 나에게 과제로 상담해 주는 일을 제안했다. ‘딱히 고민은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만난 친구와의 자리에서 지금 내 머리와 마음과 무의식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지 바라볼 수 있었다.
선배와의 인사사건(!)에서 다양한 성격과 캐릭터의 사람들과 모두 어울리기를 바라는 나를 알 수 있었다. 활달한 사람, 조용한 사람, 이런 취향 저런 취향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맞추려 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내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때 깨달았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나는 약속을 주도하고 계획하고 챙기는 위치였다. 각각 연락해 약속시간을 잡고 제안하고 행사가 있으면 챙기는. 별로 어렵거나 힘든 일은 아니었다. 내가 재밌어서 했던 일이었다.
거절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취향을 맞춰주는 일은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만 조금 양보하고 불편하면 됐다. 지금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이젠 날 닮은 아이가 둘이나 있다.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 시간과 정성과 사랑을 더 쏟아야 하는 존재들이 생겼다.
나를 참아가며 바꿔가며 애쓰지 않는다.
자연스럽고 감사하고 위로할 줄 아는 그런 관계에 정성을 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