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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록 Oct 28. 2020

김희애의 그토록 푸른빛의 그리움

윤희에게(2019)

이토록 푸른빛의 영화라니, 이 글을 시작할 때에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본 적도 없으면서 떠올렸다. 우연이겠지만 남녀의 사랑이 붉은색, 성소수자의 사랑은 푸른색으로 묘사되는 일이 왕왕 있다.


상반기, 드라마계를 강타했던 <부부의 세계>의 히로인 김희애. 비단 그 작품만 주목받았던 것은 아니다.


검붉은 분노를 그렸던 부부의 세계 속 지선우, 고급스러운 아이보리 빛을 띠던 밀회의 오혜원을 그리던 이 배우.  김희애의 필모그래피를 더듬다 보니 그녀는 실크 빛을 띠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급스러운 아우리가 늘 따라다니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추운 겨울의 푸른색을 닮은, 차디찬 새벽의 겨울을 닮은 푸른빛을 그린 이 작품에서의 그녀는 새로웠다. 사람을 원단에 대자면, 실크였던 사람이 아주 두꺼운 면 원단이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실크는 먼지도 내려앉으려다 미끄러질 것 같은 아우라가 있는데 텁텁한 면 원단은 모든 먼지들이 다 달라붙어서는 얼룩져 보이게 한다.


남은 인생을 벌이라고 생각하며 옆 사람을, 그리고 자신을 외롭게 하며 살아가던 윤희. <윤희에게>는 벌서듯 살던 한 사람의 성장기를 보여줬다. 

영화관에 시간 맞춰 찾아간 이후에 기록을 위해 다시 한번 내 방 책상에서 재생한 순간, 프레임을 가로로 계속해서 보내며 눈 내린 바다가 옆으로 한없이 옆으로 지나가는 장면이 펼쳐졌다.

눈이 언제나 그치려나.

고모의 혼잣말에, "고모, 왜 그런 쓸 데 없는 말을 해. 여기서 산지 몇 년 짼데."라고 쥰은 핀잔을 주듯이 이야기한다. 눈이 매년 키만큼 쏟아지는 지역에서 곱게 세월을 접은 주름을 더하며 살아온 고모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막막하니까. 일종의 주문이랄까.


이 말은 어쩌면, 이제는 항상 옆에 두고 살아가서 당연한 것이 된 그리움이 가끔씩 아주 사무칠 때 겨울의 푸른 어둠을 향해 외는 주문 같다. 그 앞에선 막막하고 무력해지는. 아마 쥰에게 푸른 겨울 어둠은 윤희일 것이다. 

그리고 고모에게도 소싯적 사랑했던 그 젊은 교사가 눈 오는 날의 '푸른 겨울 어둠'일 것이고.


쥰은 윤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고모를 길에서 다시 만나서 말한다. 


눈이 언제 그치려나.

당연한 것도, 그러니까 당연한 그리움도 기꺼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된 쥰의 마음을 대사로 녹여낸 것 이 아닐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이곳은 너와도 잘 어울리는 곳이라고.

쥰이 윤희에게 쓴 편지에 쥰은 이미 적었다. 눈이 많이 오는 그곳이 윤희와 어울리는 곳이라고.

널 언제나 생각한다고, 자기가 몸 담은 그 지역에 대해 말한다. 쥰의 마음은 윤희를 담았다. 

쥰은 종종 윤희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써내린다. 어느 날 고모는 조카의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버리고, 그 편지는 윤희의 딸에 의해 읽힌다. 


마음의 지속을 한 번쯤 의심해보기 마련이지만, 둘은 언제나 서로를 그리워하고 짙은 그리움을 일상에 숨기고 살고 있었다. 20년 즈음이나 서로를 생각하고 애틋해할 수 있다는 게 요즘 사람으로서는 이입이 잘 되지 않지만 사랑은 어떤 시대에서든 지속되어 온 것 같다. 


달이 예쁘네요.

대문호 나스메 소세키의 언어로, 이 말 뜻이 무엇이었는가.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고양이에게 달이란 이름을 말하던 쥰이었다. 이 작품의 절반 정도 아니 그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의 색이 곱게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쥰에게 윤희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너를 만나고 나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

누군가를 좋아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나는 또 어떤 사람인지를 정말 불안정하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인지를 막론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을 퀴어영화에 가두어두기는 너무 아쉽다. 

그냥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임을 흰 따뜻함으로 보여주었기에 이 영화를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퀴어 영화로 분류되는 '사람 간의 사랑 이야기'를 어떤 선입견도 생성하지 않고 사랑의 본질인 그리움으로 잘 그려내었다. 간만에 보는 '찐' 서정서사였다. 


결국에는 성소수자라 일컬어지는 사랑도 구분 없이 사랑의 범주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는 사회로 아마 우리는 건너가고 있겠지. 

이 사랑스러운 커플.


처음에는 저 날라리들은 뭔가 싶었는데 갈수록 저 작은 고양이 같은 커플이 궈여웠다.

그리고 주된 사랑 서사의 두 인물 윤희와 쥰에게 시선과 마음을 너무 빼앗겼지만, '경수'(이름도 예쁘네)의 풋내 나는 사랑도 조명해보고 싶었다. 


나이보다 빨리 영근 것 같은 담담하고 예쁜 사랑이, 목 끝이 텁텁한 요즘 날씨에 너무나 그리운 '무공해', '청정지역'으로 보였다. 



messenger

편지는 집배원을 통해 배달된다. 

그리고 윤희와 쥰의 묵은 그리움은 쥰의 고모와 윤희의 딸을 통해 전달된다. 


마음을 잇는 데에도 사람의 마음과 도움이 필요하다. 


발단 단계에서 전개와 절정을 잇는 것은 이 메신저이다. 전할 수 없는 마음으로 외로운 두 사람을 연결해준 것은 그 둘을 오롯이 이해해주고, 또 두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존중해주는 두 인물의 지지와 응원, 그리고 조금조금의 열심이 모인 노력이었다. 

그리고 모녀.


너네 엄마는 뭐랄까, 사람을 좀 외롭게 하는 사람이야.

새봄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엄마와 살던 지역에서의 삶을 정리하며 하나씩 더듬는다. 서울 가기 전에 늘 벌서는 얼굴의 엄마가 신경 쓰였던 걸까. 


아빠에게도 엄마에 대해 묻고, 삼촌에게도 묻는다. 

아빠는 전부인 윤희를 두고 옆사람으로서 외로웠다 넌지시 말한다. 


아마, 죄를 지었기에 벌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삶을 흘려보내던 윤희의 옆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외로웠을 것이다. 



엄마 윤희

윤희는 새봄의 엄마이다. 오래 묵힌 마음으로 찾은 쥰의 집 앞에 찾아갔다가 울컥해서 움직이는 택시 안에서 눈물을 흘리지만, 숙소에 돌아와 딸이 방에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껏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엄마 마음이다.


딸 새봄

사람 사진은 안 찍는다며, 자기는 아름다운 것들만 찍는다던 새봄은 담배 피우는 엄마를 찍는다.

새봄의 눈에 엄마는 아름답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참을 수 없어지는 때가.

여담이지만 배우의 쪽진 머리가 너무 예쁘다.

두 사람의 만남. 

상세하지 않아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오며, 눈물을 머금고 나오던 중 너무 좋았던 장면.


희망을 품고 자기의 삶을, 벌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으로 살아나가기로 한 윤희와 새 학교에서 새 출발하는 새 봄의 투 샷. 


온전하고, 또 완전했다.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영화의 메시지다. 직설적이고 담대하고, 떳떳한. 

20년 만에 '전달된 메시지'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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